신경정신과에 가다.(1)
불면증과 수면과다의 반복 때문에 여러 병원들을 찾아다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신경정신과에 갔다. 상담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신경정신과에 대해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나의 일이 되자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선입견과 전문분야에서 실패(?)했다는 자괴감으로 병원 방문을 미루다가 출산 후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야 찾아가게 되었다.
병원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돌아서는데 주차요원이 어디를 방문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때 반사적으로 이비인후과(신경정신과와 같은 건물)에 간다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대답을 하고 돌아서면서 작아진 가슴에 깊은숨을 불어넣었다. 병원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놀랐다. 연령과 성별도 다양했다. 병원 문을 열기 전까지가 어려웠지 안쪽은 여느 다른 병원과 다를 바 없었다.
50대로 보이는 여자 의사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병원에 오게 된 계기를 물으셨다. 담담하게 증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번의 질의응답이 더 이어지고 난 뒤 선생님이 물으셨다.
"첫 기억이 무엇인가요?"
내 생의 첫 기억은 2-3살 정도에 육교 위에서의 일이다. 실제 그 기억이 나는 것인지 엄마에게 들어서 기억에 남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진처럼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자동차가 없어서 할머니 댁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보통은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버스를 타고 가곤 했는데 그날은 아빠가 없이 엄마, 나, 동생 이렇게 셋만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이었다. 터미널에 가려면 육교를 건너가야 했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 높고 긴 육교였다. 연년생인 동생은 엄마가 업고 나는 걸어가고 있었는데 다리가 아파서 엄마에게 업어달라고 했다. 엄마는 동생을 업고 있으니 안아줄 수 없고 너는 언니니까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나도 아기인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담담하게 기억을 말하다가 '나도 아기인데'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는 이런 표현이라도 했었구나. 나는 언제부터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고 삼켜버리는 사람이 되었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눈물이 나는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자 선생님이 이야기하셨다.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었겠지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말하지 않게 되었을 거예요."
내가 18개월일 때 태어난 동생은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약했다. 그런데다 구내염이 악화되어 잘 먹지도 못했고 구내염을 치료하던 약 때문에 장이 약해져서 거의 피똥을 싸며 지냈다고 한다. 아픈 동생이 엄마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엄마는 밤에도 동생을 업고 앉아서 자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몸이 약하고 까다롭던 동생과 달리 건강하고 낯가림도 없던 나는 자주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이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내가 마음껏 응석을 부리고 요구를 하기에 엄마는 너무 바쁘고 힘든 사람이었을 것 같다.
몇 번의 상담을 더 한 어느 날. 커다란 기와집에서 방문을 열 때마다 방 안의 사람이 아프다던지 파티 중이라던지 하는 곤란한 상황이 펼쳐져서 계속 문을 여닫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을 계속 여닫는 것에서 어떤 연상이 되는지 물으셨다.
"나는 필요한 게 있는데 상황이 계속 여의치 않아서 찾아다니는 게 연상돼요."
"의존하고 싶은데 엄마의 상황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고 눌러온 것이 생각나네요."
"네. 그렇네요. 아기처럼 마음대로 해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어요. 잠만 자도 예뻐하고 잘 먹는다고도 예뻐하잖아요. 그리고 내가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게 그 사람이 건강하고 좋은 상태였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 상황을 살피느라 내걸 표현하지 못하는 일이 없게요."
말하면서 눈물이 흘렀고 선생님의 눈시울도 붉어지며 말씀하셨다.
"어릴 때 충분히 의존하고 받아어야할 것을 받지 못해서 그럴 수 있죠. 아기처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몇 퍼센트 정도나 돼요?"
"40%요. 그런데 이러면 안 되는 것도 알고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아니까 괴로워요. 지금 와서 그런 걸 바라는 제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원하는 마음이 40%나 되지만 이성적인 마음도 60%가 있으니 참 어렵겠어요. 그래도 그런 욕구를 무조건 참고 누르는 것은 좋지 않아요. 스스로가 알아차리고 올라오는 감정을 잘 살펴주는 게 중요해요."
의존 욕구가 올라오면 내가 아이 같고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표현은 커녕 누르기에 바빴다. 게다가 그 반작용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베푸는데 최선을 다했다. 내가 받고 싶었던 것들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야 내가 스스로의 욕구를 모른 채 하고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모른 척했던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말로 표현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 효과로 반사적으로 남을 돌보려고 하던 행동을 멈출 수 있었고 내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주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병원 치료와 많은 노력들을 통해 충족되지 못한 나의 의존 욕구를 잘 살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