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이 '엄마'인 아이

신경정신과에 가다(2)

by 무정인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별명이 엄마(혹은 아줌마) 또는 천사였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챙기는 일은 내게 너무나 익숙했다. 연년생인 동생을 아주 어릴 때부터 챙겼다고 들었다. 장남의 장녀로 태어나 사촌동생들이 내 밑으로 줄줄이인데 명절에 애들과 놀아주고 돌보느라고 몸살이 날 정도였다. 명절증후군을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달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학 온 아이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를 잘 챙겨주라고 부탁을 자주 들었다. 반장일 때든 아닐 때든.


나는 집이 편안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힘들 때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갔다. 살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집에서도 푹 쉬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이 없고 언제 화가 날지 모르는 아빠, 예민하고 바쁜 엄마, 자기주장이 강해 아빠와 잘 부딪히는 둘째, 너무 어린 막내.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기분을 살피기 바빴다. 표정이 안 좋은 사람이 있거나 사이가 안 좋으면 내가 나서서 달래거나 사이를 중재했다. 먹을 때가 가장 화목했기 때문에 밥을 먹고 나면 얼른 과일을 챙겨 와서 늘 깎은 덕분에 과일을 정말 잘 깎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너무 피곤한 날에는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서 잠시 쉬다가 들어가곤 했다. '현관문 옆방은 K-장녀 방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공감했다.


가족을 넘어 대인관계에서도 누군가를 돌보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나를 포지셔닝했다. 이 포지션은 '의젓하다, 착하다'는 칭찬도 받을 수 있고 '봉사상' 같은 보상도 주어졌다. 그런 칭찬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내가 이타심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욕심 없는 무던한 사람인 줄 알았다. 봉사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칭찬을 받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억지로 하게 되었다. 혹은 어떤 일을 하고 칭찬을 받지 못하면 크게 속상해했다. 칭찬은 나에게 너무 큰 동기였고 사람들은 나를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용당한 일들도 꽤 있었다. 칭찬받고 싶어서 하고 싶은 일은 참고하기 싫은 일들을 꾸역꾸역 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가 계속 이런 패턴을 지속했던 것은 관계에서 이 역할을 하지 않고 관계 맺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고정된 역할로만 나를 몰아갔다. 원할 때는 양보하고 보살필 수 있는 것이고 원하지 않을 때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어떤 때는 나도 보살핌 받을 수 있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양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물으셨다. 양보하고 보살피고 참아야 칭찬받고 그래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내가 착해서 좋아하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착하지 않은 나는 받아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에게 이런 점들이 힘들었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 엄마는 많이 놀라셨다. 내가 철이 일찍 들어서 그리고 그냥 착한 애라서 그러는 거라고만 생각했지 힘들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한다. 엄마 이야기도 그냥 잘 들어주니까 힘들지 않다고 생각해서 계속했다고 한다. 나 조차도 내가 힘든지를 잘 몰랐으니까 엄마도 그랬을 것 같다.


내가 제일 공을 들여서 돌본 사람은 엄마였다. 구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엄마의 한스런 이야기를 졸음을 참아가며 들었고 반복되는 이야기에도 싫은 내색 없이 들었다. 엄마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토록 사랑했던 할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고부사이에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아빠를 원망했다. 육체적으로 엄마를 돌본 것은 아니다. 엄마는 완벽한 전업주부였고 우리에게 너무나 희생적으로 잘해주셨다.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정서적 책임을 담당했다. 엄마는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았고 이모들이 들으면 속상해한다며 말하지 않고 딸들에게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딸들의 심정은 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감정을 받아내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쓰게 하죠.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야 내가 힘든 일을 참 오랫동안 해왔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나의 아이가 너무 착한 일만 하려고 한다면 꼭 말해줄 것이다. “너도 아이니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온전히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가는데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여 내가 불행해 보여서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도록 내가 잘 살아야겠다. 그때 듣지 못했던 말을 요즘 나에게 자주 해주고 있다. “예전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버려서 지금 힘든 거야.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괜찮아. 다 괜찮아. 나만의 속도대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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