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어두웠던 밤(1)

나 혼자뿐이라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은 있다.

by 무정인

부모님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해서 온 몸이 아팠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날이었다. 병원에 가서 영양제라도 맞으려고 어제 같은 동네로 이사 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상황을 설명하고 와줄 수 있는지 묻고 어렵다면 아이돌보미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조금 곤란한 듯 아직 집이 엉망이고 밭에서 뽑아 온 알타리도 오늘 김치를 담그지 않으면 시든다며 아이돌보미 도움을 받는 게 어떠냐고 했다. 순간 나는 알타리보다도 못한 딸이 된 것 같았다. 알타리가 시드는 것보다 덜 중요한 나의 아픔이란. 나의 상황보다 늘 자신의 상황이 먼저인 혹은 자신이 주고자 하는 방식의 사랑만 주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한 내가 바보 같았다.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엄마가 담근 알타리 김치를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울었다.


엄마도 마음이 불편했는지 다시 전화를 해서 대충 정리하고 올 테니 아이돌보미를 부르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뒤늦게라도 뭐가 중요한지는 알게 되셨구나 싶었다. 전화를 끊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내가 엄마라면 나의 딸이 이렇게 아프다는데 그깟 집 청소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달려올 텐데 나의 엄마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에 화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통화한 지 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전화를 하니 아직 출발하지도 않았었다. 울면서 너무 아프니 지금 당장 와달라고 말했다. 차로 10분이면 오는 거리인데 40분이 지나서야 부모님은 집에 도착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지나온 일들의

서러움까지 다 떠오르며 화가 불타올랐다. ‘이럴 거면 왜 도와준다고 말해서 나를 더 힘들게 하냐. 아이돌보미분 오셨으면 지금 병원 다녀오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다시는 도와준다는 말 하지 마시라. 나도 이제 엄마 아빠한테 도움 같은 거 안 바란다. 도와달라고 얘기하고 기대한 내가 바보다.’ 이런 말들을 소리치며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소리치고 방에 들어가도 화가 풀리지 않아 아아아악-! 하고 한바탕 소리를 지른 뒤에 집을 뛰쳐나왔다.


가슴이 터질 듯이 화가 났다. 온몸이 끓어오르는 용암 같았다. 분기탱천.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눌러 줄 시원한 것이 필요했다. 한 낯에 맥주를 사서 마시며 걸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중얼중얼 욕을 하며 술을 마시며 걸어갔다. 그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며 날 보던 한 여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위험한 것을 경계하는 눈빛. 나는 그렇게나 위험한 상태였던 것이다. 미친 사람이었다. 다 떄려부수고 싶었다. 갈기갈기 찢고 싶었다. 그때 화단에 피어있는 빨간 맨드라미가 보였다. 누군가가 정성 들여 키웠을 그 맨드라미를 손으로 훽 낚아채 꺾어버렸다. 그리고는 손으로 짓이겨 빨간 그것을 뭉게 버리곤 풀밭에 버렸다. 버려진 그것들은 흡사 몸에서 떨어져 나간 상처 입은 살덩이들 같았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한참을 걷고 걸었다. 가을 낮의 쏟아지는 햇빛에 빛나는 풍경마저 원망스러웠다. 타는 내 속도 모르고 너무 평온하고 따뜻한 풍경이어서. 남편과 막냇동생에게 전화해서 다시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지 않을 것이라 거듭 다짐했다. 그동안의 역사를 알고 있는 남편은 그렇게 큰 소리도 낼 수 있다며 괜찮다고 말해줬다. 엄마에게 아기를 오래 맡기고 싶지 않아서 정작 병원은 가지도 못하고 화만 좀 누그러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엄마 아빠를 내보내고는 다시는 보지 않고 살겠다는 다짐도 했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 처음 화를 내보고 처음에는 시원했다. 내가 화 내야 마땅한 상황에서 제대로 화내지 못하고 삼켜온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화가 많이 난 것도 이해가 됐다. 씩씩 거리며 이번에는 제대로 사과받겠다고 벼렀다.


그런데 밤이 되고 미친듯한 화가 가라앉고 몸이 지치자 내가 너무 잘 못한 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올라왔다. 별거 아닌 일로 화를 낸 것 같고 엄마 아빠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준 것 같았다. 무서워서 몸이 벌벌 떨렸다. 이불 밑으로 들어가 아기처럼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고 다시는 엄마 아빠를 못 볼 것 같아 두려웠다. 무조건 내가 다 잘못한 것 같았고 만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몸의 감각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를 만져도 느낌이 없었고 팔을 만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자해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이 들었다. 일단은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상태를 셧다운 하는 게 필요했다.


오래 자지 못하고 일어났지만 몸의 감각은 살아났고 극도의 공포는 사라졌다. 따뜻한 것으로 나를 감싸주고 싶었다. 우선 깨어있던 남편에게 꼬옥 안아달라고 했다. 그의 온기와 체취가 두려운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도 먹지 않아 허기진 상태라 라면을 뜨끈하게 끓여먹었다. 그러고 나자 몸안에 있는 공포와 두려움이 조금 더 빠져나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맡고 싶어서 베란다로 가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맑아서 달과 별이 참 잘 보이던 밤이었다.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어졌다. 남편, 엄마, 아빠, 동생들, 친구들, 동료들, 선생님들. 한 명, 한 명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이 해준 말들과 사랑하는 마음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의 행복을 빌고 사랑하는 나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렀다.


방 안으로 들어와 따뜻한 이불로 다시 몸을 감쌌다. 잔뜩 웅크렸던 몸이 조금 펴졌다. 책상 위에 켜 둔 향초도 온기를 더해주었다. 그러자 어떤 자신감이 생겨났다. 모두가 나를 떠난다고 해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더 나아가 나를 아끼고 보살피며 건사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구나. 부모가 나를 버려도, 남편이 나를 떠나더라도.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혼자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사랑받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도 서슴지 않고 행했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면 된다는 밑바닥이 없어서 늘 불안했다. 칭찬을 받아도 충족되는 것은 그때 잠시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면 모두가 떠나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마치 계란을 세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도 계속 실패하다가 계란을 깨서 세운 것과 같은 혁신적 깨달음이었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오뚝이처럼 밑바닥에 단단한 무엇이 조금 생겨난 기분이었다. 수면제 없이 다시 잠들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생에 가장 어두운 밤이 무사히 지나갔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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