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 영정사진을 찍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에너지를 너무 빨리 다 쓰고 간 그녀의 마지막 모습

by 무정인

나는 지쳐서 완전히 너덜너덜해졌지만 육아는 그런 상황을 고려해주는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4시간마다 정확하게 배고프다고 목청껏 울어대는 100일 아기를 옆에 두고 무기력하다고 마냥 지쳐 쓰러져 있을 수가 없다. 나를 짙게 감싸고 있던 우울과 무기력이 배고픈 아이의 울음 앞에서는 사치가 되고 만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빠릿빠릿하게 우유를 대령하고 있다. 불면의 시기에도 새벽 수유 때문에 수면제를 먹을 수 없었다. 집에서 나갈 수도 없어서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뛰는 심장을 다독이며 집안을 서성이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다가 '시현하다'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획일적인 증명사진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기록한다는 콘셉트가 마음에 들었다. 피폐해져가고 있는 나 자신을 기록하고 싶었다. 너무 화가 많이 나서 욕지기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데 그 화를 누구에게 내야 할지 알 수 없어 나오지 못했다. 주인을 잃어버린 화는 결국 나 자신을 향해서 칼처럼 꽂혔다. 지쳐있지만 화난 34살의 여자를 민낯 그대로 처절하게 직면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록해두고 잊지 말아야지.

‘이걸 잊어버리면 다시 또 예전처럼 빙신으로 살다가 이 꼴을 내가 또 당하고야 말지.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결연한 의지로 새벽에 스튜디오를 예약하고 아침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산후도우미분이 오시는 날이어서 급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초면인 그분이 괜찮은 분인지, 아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인지 30분만 관찰하고 아이를 돌보는데 필요한 사항들을 인계했다. 인상이 좋으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좋은 분일 거라고 믿어야 마음 편히 갈 수 있어서 빨리 믿어버리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정말 좋은 가을날이었다. 가을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뻥 뚫린 고속도로에 있으니 내 마음도 조금은 뚫리는 것 같았다. 결혼과 동시에 지방으로 오고 난 뒤에도 교육이나 약속 등을 핑계로 매주 방문하던 서울이었다. 만삭이 되어 고속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지고서야 나의 서울행은 정지되었다. 창 밖의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몇 년 전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운구차를 타고 장지로 향하던 길이 떠올랐다.


처음 겪는 가까운 이의 죽음이었다. 인자하게 웃으며 반겨주시던 외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평소와 너무 달라서 놀랐었고 아이처럼 엉엉 우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어서 무서웠다. 황망하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속절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날도 날씨가 참 좋았다.

그날의 길이 갑자기 생각나다니 이건 어떤 계시 같았다. 나는 지금 내 안의 어떤 자아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보내주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인색했던 그녀는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빨리 써버리고 가버린 것이다. 무거운 짐들을 덥석 덥석 짊어매다가 그것에 깔려 주저 앉아 버린 그녀. 지치고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주저앉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너무나 화가 나지만 그 화가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녀.


남부터미널에 내려서 꽃집을 찾아갔다. 그녀의 마지막에 꽃 한 송이를 놓아주고 싶었다. 찾아간 꽃집에는 내가 찾던 큰 국화는 없고 하얀 소국 한 다발이 있었다. 가져온 지 오래되어서 꽃이 조금 시들었으니 싸게 가져가라는 사장님의 말에 덥석 들고 나왔다.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인색하다는 생각에 뒷맛이 씁쓸했다.


작가님과 사진 콘셉트에 대한 상담을 마친 후 처음으로 웃지 않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앉았다. 사진은 웃으며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광대뼈가 아프도록 웃었기 때문에 웃지 않는 것이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작가님이 왜 이렇게 화가 났냐며 지친 모습이 안 느껴질 정도로 화가 많이 보인다고 했다. 촬영 후 간단한 보정을 하는데 작가님이 물었다.

“다크서클은 좀 없애드릴까요?”

다른 사진이었다면 당연히 없애달라고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아니라고 그냥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다고 하고 고치지 않았다. 그렇게 민낯의 나를 기록했다. 내 안의 보기 싫은 나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가져간 소국은 사진관에 두고 나왔다.


영정사진을 찍었으니 조촐하게라도 장례식을 치러주고 싶었다. 나를 잘 아는 언니에게 전화해서 급히 약속을 잡았다. 사진을 본 언니는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 애써온 네가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제사음식 대신 케이크 한 조각과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둔 채 언니와 함께 잠시 울었다. 언니는 그동안 많이 애썼다,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보자며 도닥여주었다.


상담수련을 받은 소장님에게도 전화드렸다. 나의 내밀한 부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전화로 오늘의 일을 이야기하자 가만가만 들으시더니 사진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드리니 답장으로 분홍빛이 찬란한 다알리아 사진이 왔다.

“올해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내마. 열심히 살아낸 무정인에게 그러느라 살아내지 못한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무정인에게. 사랑합니다.”

나는 내게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꽃을 선물했었는데 소장님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내주셨다. 이 지점에서 내가 그동안 나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명징하게 깨달았다. 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오며 떠나보낸 그녀를 애도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나를 기대했다. 지쳐서 쪼글쪼글해졌던 마음이 작은 풍선만큼 부풀어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서 좋아하는 꽃집에 들렀다. 가을빛을 담은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가격의 제한 없이. 따뜻한 가을빛이 담뿍 담긴 꽃 바달을 손에 들고서는 해 질 녘의 포근한 기운 속에서 집으로 향했다.

사진관에서 사진을 담아주는 통에 ‘정인님의 앞으로가 행복하길 바라요 :)’라고 적어주셨다. 나를 잘 모르는 이도 나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이제 나 또한 그러하다. 외면하고 싶은 나의 민낯을 똑바로 마주하고 나서야 떠나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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