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시대가 만들고, 시대는 백수가 바꾼다!

백수의 사회학 #8

by 낭만박사 채희태

얼마 전에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이다.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열광했고, 소위 기성세대의 꼰대들은 끌끌 혀를 찼다. 한 보수신문의 논설위원은 책 제목을 보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며 ‘어떤 정권이 젊은이에게 이마에 땀을 흘리라고 요구하기보다는 현금을 살포하듯이 나눠주고, 세금으로 잠시라도 채용해서 무작정 달달한 일자리 숫자를 늘려 가며 묻지 마 복지의 폭을 자꾸만 확대하다 보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 제목을 오해하면서 맥이 탁 풀리게 된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우려하는 마음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이 열심히 일을 해야 은퇴 후 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대놓고 열심히 살지 않겠다니 기가 차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사정이나 부탁을 해야지 혀를 차서야 되겠는가? 지금이 농경 시대도 아니고... 끌끌...

누가 귀신 씨나락을 까 먹는지 한 번 들어 보시라!

고백하자면 지금 백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개인적으로 하완의 명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감히 그만큼 주목을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글을 통해서라도 헬조선을 물려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산 게 아니라, 필자는 시대에 묻어 있는 단물을 쪽쪽 빨아먹으며 대충대충 살아왔다. 중,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입시경쟁이 아닌 농구에 더 몰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운 좋게도 지금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는 인서울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생 때도 강의실보다는 캠퍼스에서 족구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학점도 4.5 만점에 2점대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직장을 잡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잠깐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필자는 사실 졸업 후 취업을 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사업을 하고 있는 한 선배가 필자를 불렀다.


선배 : 너 이제 뭐 하고 살끼고? (선배 고향이 부산이다.)

필자 : 글쎄요... 음악 공부나 할까 생각 중인데요?

선배 : 그러지 말고 나랑 함께 하자.

필자 : ...

선배 : 내는 니를 통해 내 꿈을 이루고 싶다. 니는 내를 통해 꿈을 한 번 이뤄보면 어떻겠냐? 내 니가 하고 싶은 음악 공부 지원해 줄끄마.


만약 지금의 아이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가 기성세대의 학창 시절을 본다면, 세대 갈등이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비슷한 설정의 영화가 있다. 바로 윤제문과 정소민이 주연한 “아빠는 딸”이라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죽어라 공부만 해도 꼴등을 면치 못하는 딸의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이렇게 충고한다.

야, 솔직히 지금보다 어떻게 더 열심히 하냐? 야, 안경미 공부하지 마. 뭐 적성이 아닌가 보지.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해 봤자 뭐하냐? 아차피 인생의 종착역은 치킨집인데… 인문계, 경영대학, 대기업, 치킨집! 자연계, 공대, 대기업, 치킨집!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거 실컷 하다가 우리 집 치킨 가게나 물려받으려고~
흙수저에게 경쟁의 종착역은 고통스러운 자영업이다!

하완 작가가 마치 혼자 삐죽 튀어나온 못처럼 제목을 기가 막히게 뽑아 괜히 정을 맞았지만, 최근에 필자가 읽어본 대부분의 책에서는 성공이 ‘노오력’이 아니라 그거 우연의 결과이며, 자기 계발은 구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매우 비겁한 채찍질이라고 지적한다.


IMF 이후의 출판 시장은 학습지와 자기 계발서가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사이를 학습만화가 슬쩍 비집고 들어왔다. 일반적인 자기 계발서가 성인을 대상으로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을 했다면, 학습지는 중, 고등학생들에게, 학습만화는 유, 초등학생에게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먼저 달려야 한다며 채찍질한다. ‘조엘 오스틴’은 2005년, 『긍정의 힘』으로 무한경쟁의 시대를 긍정했고, ‘론다 번’은 2007년 세계 1% 부자들의 성공 『시크릿』을 공개해 세계를 점령했다.

보다 못한 미국의 사회 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자본주의와 철저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에 담아 자기 계발이라는 채찍질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실 더 이상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달릴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제자리에 멈춰 서고 나니 보인다. 열심히 달리고 있으면 자전거가 추월하고,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자가용이 추월하고, 빚을 내 자가용을 사고 나면 비행기가 추월하고, 비행기는 다시 로켓이 추월한다는 사실을... 한 마디로 아무리 뛰어봐야 결국 나는 놈을 잡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백수도 백수 나름이다. 달리다 지쳐 멈춘 중년 백수도 있겠지만, 달릴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청년 백수가 태반이다. 무한경쟁의 수레바퀴에서 삐져나온 중년 백수 하완은 자신의 경험을 담아 경쟁의 수레바퀴에 올라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청년들에게 이야기한다. 무작정 경쟁의 대열에 합류하지 말고 왜 달리려고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시대는 늘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럴듯한 영웅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해 왔다. 하지만 영웅은 시대의 잘못된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아니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만든 시대에 충성한다. 고담시의 우울한 영웅, 배트맨은 그저 자본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도시를 지킬 뿐이다. 슈퍼맨의 부모는 결국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인해 몰락한 크립톤 행성의 멸망을 막지 못한 채 자신의 아이를 지구로 빼돌렸다. 스파이더맨의 활동 배경이 높은 빌딩이 솟아 있는 뉴욕이 아니라 작은 농촌이었어도 영웅 대접을 받았을까? 영화, 조커를 보신 분들은 느꼈을 것이다. 악당이야말로 불평등한 시대가 만든 진정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한낱 영웅은 시대의 산물일 뿐이지만 백수는 그 대단한 시대에서 비켜나 있는 사람들이다. 만약 누군가 수레 안에서 문제를 제기를 한다면? 그 사람은 시대가 만든 영웅들에 의해 다구리를 당할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수레를 굴리고 있는 에너지는 경쟁이다. 자본주의가 갱년기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멈춰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오히려 무한대의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나, 둘 무한경쟁의 수레에서 내려야 의미 없는 채찍질을 멈출 수 있다. 빈수레에 채찍질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벼랑으로 향하고 있는 시대의 수레바퀴를 멈추기 위해서라도 만국의 백수들에게 부탁하노니... 절대 기 죽지 마시라! 영웅은 시대가 만들고, 그 시대를 만들어 온 것은 시대에서 벗어나 있는 백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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