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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 이야기

by 이종민



‘구석 귀신’, 어쩌면 ‘구석 만들기’가 내 일인지 모릅니다. 혹 가구나 도구를 만드는 장인들이 그러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건축가인 나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구석을 만들어 놓곤 합니다. 소위 도면이라는 것의 기본이 선이고, 그 선들이 치수와 각도라는 무기를 등에 업으면 간단히 구석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구석들의 집합을 공간이라 부릅니다.

예를 들어, 방 하나만 하더라도 이미 여덟 개의 구석으로 완성되었으며, 그 방에는 또 무수한 다른 구석들이 숨어 존재합니다. 방 안의 가구와 도구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방과 다름없이 여러 개의 구석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반대로 방이 확장되면 집이 되고 더 크게는 도시가 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은 온통 구석들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 구석구석에 사람들이 살고, 우리는 그걸 세상이라 이름 붙입니다.


구석의 반대말로 뿔(角)이란 말을 쓰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기하학적으로 설명해보면 그 이유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애초에 점(点)이 있었습니다. 점이 연장되면 선(線)이 되고 선은 면(面)을 만듭니다. 면과 면이 모이면 그 접선에 모서리가 생기고 거기에 면 하나를 더 보태면 구석이 됩니다. 문제는 만들어진 구석은 반드시 반대편에 새로운 기하 요소를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뿔이라 부릅니다. 구석과 뿔은 동체이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이름을 달리합니다. 이 세상에는 구석만큼이나 뿔 또한 많습니다. 구석과 뿔은 숙명적으로 동체입니다만 서로 부정하려 합니다.


뿔이라면 생각나는 ‘꼬깔콘’이라는 과자가 있습니다. 과자의 구멍에 손가락에 끼우면 내 손은 구석으로 숨어들고 과자와 손가락이 일체가 된 손가락 고깔이 또 하나의 뾰족한 뿔로 재탄생 됩니다. 무심코 이것저것 찔러 봅니다. 예상대로 날카롭고 예리합니다. 이처럼 뿔은 공격의 속성을 지니며 후퇴가 없습니다. 반면 늘 찔리고 마는 구석은 항시 수세인 후퇴자의 자리에 있습니다. 물러날 곳이 없고 적극적이지도 않아 늘 불안합니다. 사람들은 뿔과자로 찌르기 놀이를 하면서 뿔의 위세를 배우기도 하고, 힘없는 구석이 또다시 구석으로 몰리고 마는 비극을 목도하기도 합니다.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야.”라고 쉬이 말은 합니다만.


그러고 보면 세상은 온통 잘난 뿔들의 세계입니다. 말했듯이 뿔의 속성은 찌르는 데에 있어서, 애써 예리함을 숨기고 찌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하물며 생긴 모습에 비추어 스스로 양(陽)이라 부르며 음(陰)의 존재를 업신여기고 무시합니다. 그러한 지배력과 공격성은 모두에게 탐닉할만한 유혹입니다. 그러기에 너도나도 뿔이 되려 합니다. 공부와 체력과 미모와 재산. 저마다 뿔의 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누군가는 구석으로 존재해야 함에도 너도나도 뿔이 되라고 외칩니다. 스승도 친구도 심지어는 부모까지도 채찍질에 여념이 없습니다.


반면, 불쌍한 구석은 이미 자리를 잃었습니다. 때론 구석에서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는 설이 있기는 합니다. 왜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대든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성적이며 불가사의한 상태는 결국 이성적이고 조직된 뿔의 세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 게 뻔함을 모두 압니다. 그러므로 일설은 별 위안이 못 됩니다. 아시다시피 속수무책은 모든 구석의 최대 약점입니다.


이즈음에 구석을 생각함에 사람의 목숨을 떠올리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입니다. 수년 전으로부터 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던 유명인들의 자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고 난 직후라는 등, 그 전날 그가 뿔을 마주하고 대처했던 사각의 방은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의 최후의 구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 한때 뿔의 세계에 취해 놀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그들이 견디지 못했던 것이 범죄 사실에 대한 반성이기보다는 그로 인하여 뿔의 세계에서 버림받을 낭패에 대한 공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석이 될 바에는 목숨조차 초개같이 버리라는 뿔의 지침은 누가 가르쳤을까요? 죽음이란 슬프고 억울한 것이지만, 뿔에 대한 중독이란 그저 불가해한 것입니다.

아~ 뿔이 없는 세상의 편안함이여. 목숨을 버린 사람들을 포함하여 구석이 된 모든 사람의 푸념과 바람을 들어 보면 슬픔과 희망이 교차합니다.


“우리는 모두 점(点)이라는 아이로 탄생하였다. 하나의 선(線)에 같이 소속되었고 마치 가족과 같았다. 자라나서 동시에 사회라는 면(面)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더냐. 하지만 아뿔싸~ 면들의 투쟁은 끝내 화합하지 않고 대립함으로써 모서리가 생기고, 사태를 구석으로 몰아 상대를 찌를 수 있는 뿔을 지녀야만 편입될 수 있는 못된 세상이었더라. ”

“그리하여 세상의 뿔들아! 들어라. 어느 건축가의 설에 의하면, 공간이 사람을 지배하는 반면 공간을 만드는 것은 사람이라 하더라. 마음속의 공간이라 하여 다를 게 있겠느냐? 우리는 한마음으로 잉태되고 여전히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숙명의 동체. 하나가 될 수 없겠느냐?”


구석과 뿔이 대립하여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 태초로부터 기하학의 비극이라면, 애초부터 인간은 모서리를 만들어 가지 말았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구석이 모서리 없이 만들어진다면 반대편은 뿔이 되지 아니하고 둥글게 될 것이니, 찌르지 않음에 상처받지 아니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을 법도 합니다.

하여, 나는 지금부터 새로운 꿈을 꾸겠습니다. 나의 건축에서도 모가 나지 않은 공간을 만듦으로써 구석이 생겨나지 않기를. 그리하여 드디어 ‘구석 귀신’의 오명을 벗어 버리겠습니다. 또한, 나는 지금부터라도 뿔이 되기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 대신 속이 공글러진 구석답지 않은 구석을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끔 힘이 부치는 사람이 뜬금없이 부딪혀 오더라도 그이의 가슴에 상처를 만들지 않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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