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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민 Sep 16. 2024

파초도


예나 지금이나 이국풍의 파초나무는 정원의 중심이 되기 일쑤다. 젊은 연인이 큰 파초를 올려다 보는 그림을 상상으로 그린다. 배경으로는 고즈넉한 한옥이 한 채 있거나, 작은 사찰의 요사체 쯤이었으면 했다. 한때 내 꿈의 한 자락도 저러했던 적이 있었을 테다.


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파초나무의 실체가 있기는 하다. 열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일 관계로 잠시 계시던 통영의 어느 여관. 그 집의 앞 마당에서 나는 파초나무를 처음 보았다. 바나나 나무로 착각하여, 내년에 다시 오면 바나나 한 송이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파초의 열매가 실로 볼품 없다는 것은 상상치도 못하고.


오늘 문득 그 여름, 통영 어느집 나무 아래에서의 서늘한 가운과 왕성한 시절의 멋쟁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서 온 것이다. 어쩌면 그런 그리움으로, 나는 파초 앞에만 서면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는가 보다. 지난번 성주 한개마을에서 오랜만에 파초를 보았고, 엊그제 민락동 어느 식당에서도 파초나무를 얼른 사진찍어 두었다. 대체로 식물을 좋아하지만, 가히 파초에 대해서 만큼은 특별하다고 할까?


어디 나 뿐일까? 파초는 옛 선비들이 그림으로 즐겨 그렸다. 자신의 사랑채 마당에 심어 둔 것이었거나, 나처럼 상상의 나무이거나. 정조대왕의 그림이 있고, 심사정의 그림도 전한다. 그리고 민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오늘 내가 기꺼이 파초를 그려보는 것은. 세파를 잊고 초록 그늘에 뭍혀 드는 옛 선비의 여유를 잠시 닮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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