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쫓아다니는 모험
스스로 크게 자각하지 못했지만 디자인과 공간을 계속해서 좋아했던 것 같다. 대학교를 인문계열로 입학해서 2학년 때 인테리어 디자인학과로 전공을 바꾸려고 기웃거렸던 일이 있었다. 학교의 카운슬러에게 전공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듣고, 학과의 전공 설명회도 참석하기는 했지만 결국 전공을 바꾸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두고두고 아쉬운 결정이 되었다. 그동안과는 너무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았고, 열심히 해 온 공부가 아쉽기도 했다. 막상 대학교에 와서는 꿈도 없이 공부도 안 하면서, 수능까지의 공부에 들어간 시간들을 아까워했던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결국 디자인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마케팅 부서이지만 인테리어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기는 했지만,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은 곧 사그라들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책상을 사주지 못할 만큼 가난하고, 언니와 늘 방을 같이 쓰는 등의 부족했던 환경이 더 아름답고 쾌적한 공간을 끊임없이 갈망하게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가 이사를 가는 친척이 버린 식탁을 가져와 내 책상으로 주었을 때, 나는 친척이 역시 버리고 간 것 중 하나인 검은색에 나비들이 그려져 있는 식탁보를 씌워 예쁜 책상이 되었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에도 문구점에서 색지를 사 와서 벽에 모양을 내 붙여보기도 하고 나만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을 꾸몄었다. 대학생 때에도 누리끼리한 벽지가 붙어있는 자취방을 하얀색 페인트로 바르고 에곤 쉴레의 작은 포스터를 붙여놓아서 집을 갤러리처럼 만들기도 했었다. 단열이 전혀 안되지만 월세가 15만 원이었던 자취방에서는 겨울에 추워서 잠을 자다가 깨기도 했지만 동대문 종합시장에 가서 천을 떼 와서 커튼을 만들어 달기도 했었다(지금 보면 너무 촌스러워서 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무늬였다). 스스로 알지 못했지만, 나는 항상 공간의 아름다움을 쫓아다녔던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경기도 외곽의 오래된 빌라를 리모델링해서 신혼집으로 살게 되었다. 빌라의 옆에는 논이 있는 인프라가 좋지 않은 곳이었지만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된 순간이었다. 회사에서 아름다운 공간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고, 미국의 라이프 스타일 잡지 <KINFOLK>의 유행과 네이버 블로그가 성장하던 시기여서 리빙을 주제로 사진도 많이 찍고 포스팅도 하면서 공간에 대한 눈과 관심이 더욱 높아졌던 것 같다. 이후의 짧은 외국생활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주거 공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한국에 돌아와서 촉매제가 되어 건축을 하게 된 것 같다. 자아성찰기를 써보고 나니, 나는 항상 공간의 아름다움을 쫓아다니는 모험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스물한 살 때 전공을 바꿨다면 더욱 빨리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올 수 있겠지만, 결국 좋아하는 것을 쫓아 여전히 모험을 하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