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갈망하는 이유
이번 집을 어떻게 임대 혹은 매매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역시 주택은 임대나 매도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복잡하네. 다음에는 꼭 아파트를 선택해야겠다'라고 어제도 생각했지만! 경제적 혹은 실리적 이유를 제외한다면 역시 다음번에도 주택을 선택하고 싶다.
주거 인프라와 정책이 아파트 위주로 돌아가고, 특히 아파트가 경제적인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큰 한국에서 왜 굳이 주택을 갈망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40년 동안 살아오면서 아파트에 거주한 경험이 일 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에서 다양한 주택의 형태에서 부모님과 20년을 살고, 서울에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다가구에서 자취를 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결국 거주하게 된 것은 남편의 부모님이 남편이 초등학교 때 살던 경기도 외곽의 오래된 빌라였다. 그 뒤로 짧은 외국생활(주택)과 지금의 집을 건축하면서 오피스텔에서 임시로 살았었다. 아파트에 거주하게 된 것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대학원 진학으로 외국에 나가기 전에 1년 정도 거주한 것이 다인 것이다.
계속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나를 위한 집인 것 같은 느낌은 아무래도 오랜 시간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아파트의 편리함과 장점을 경험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해본다. 거주했던 아파트는 작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복도식 아파트의 특성상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사람들이 다투는 소리처럼 집안 생활도 같이 공유하는 느낌이었다. 1년 동안의 짧은 아파트 생활동안, 돌쟁이 아기를 독박육아하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옆집의 언니는 김치를 담그면 김치도 갖다주고 시골에서 옥수수가 올라오면 찐 옥수수를 자주 가져다주기도 했다. 아이를 등에 업고 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러 가면, 경비아저씨가 종류가 섞여 있는 봉투를 내 손에서 뺏어 어서 들어가라면서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경비실 옆을 지나가다 보면 경비 아저씨가 나오셔서 아이를 유모차에서 안아서 어르시기도 했다. 내가 듣기로는 아파트 경비아저씨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 의한 피로감 때문에 꽤나 불친절하다고 들었는데 반전이었다. 동네산책을 나섰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아이 유모차에 레인커버를 씌우려는데 아이가 심하게 거부해서 커다란 우산을 아이에게 주고, 나는 레인커버를 쓰고 아파트로 걸어 들어오고 있던 적이 있었다. 나를 발견한 통장님이 가던 길에서 돌아서서 우산을 씌워 아파트 현관까지 데려다주신 적도 있었다. 내 생활이 너무 공유되는 것 같아서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따뜻한 이웃이 있는 커뮤니티를 경험한 긍정적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따로 층간소음에 대한 컴플레인은 없었는데, 옆집 언니와 다른 층 언니는 지독한 컴플레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집의 구조와 창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답답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단체생활(?)에 잘 맞지 않는 내 성격 탓도 있지 않을까 싶다.
부모님과 이십 년간 살던 주택은 좋은 곳이 아니었다. 조악했고, 열악했던 옛날 집들이었다. 생쥐와 눈이 마주쳐서 당황했던 적이 많았고, 춥고 불편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살림을 반들반들하고 정갈하게 가꾸셨다. 특히 정원을 잘 가꾸셨는데 내가 좋아한다며 정원 한가운데에 커다란 수국을 가꾸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주택은 귀찮은 일들이 너무 많고 정원도 가꾸기 싫고 편하게 늘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나는 언니와 남동생과 마구 집안에서 뛰어다니고, 집 밖에서는 하릴없이 땅을 파고 놀았던 기억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불편한 집을 정성스레 가꾸고,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도 길을 지나다가 예쁜 꽃이 있으면 얻어와서 정원에 심던 엄마의 아름다움이 좋았다.
아마도 아파트보다 주택에 그토록 마음이 가는 것은, 유년시절 집을 통해 느꼈던 자유로움과 주택이 <엄마의 집>이라는 기억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