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갈망하는 이유(2)
주택은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땅을 디디고 설 수 있다. 40층 정도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을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이 사실이 너무 좋다. 큰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집에서 바로 땅을 디딜 수 있다는 것은 큰 안정감을 준다. 땅에 붙어서 살기에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땅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을 때,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소리에 대한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아쉽게도 우리 집은 정원이 없지만 이웃집에서 굴러온 감열매나 나뭇잎들을 비질할 때도 가을이 온 것을 느낀다. 함박눈이 내릴 때 집 앞 도로의 눈을 치워내면서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아파트에 산다면 직접 할 필요가 없는 귀찮은 일들이기는 하다. 때로는 나도 귀찮아하면서 비질을 하고 있지만 몸을 직접 움직여 집을 관리하고 있으면 나도 그 계절 속으로 들어가 같이 움직여가는 것 같다. 정원이 없는 우리 집도 이런 느낌을 주는데,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은 어떤 느낌일까 자꾸 상상하게 된다. 콘크리트가 아닌 흙을 발로 밟고 식물들을 계절에 따라 관리하면 계절의 움직임을 더 친밀하고 내밀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택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규범과 질서를 지키고 큰 책임을 부여받는 어른에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해방감을 준다. 밤 열 두시에 세탁기를 돌리고, 아이들이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마구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며 야생미를 뿜어내도 된다는 것은 엄청난 자유임이 틀림없다. 예상되는 똑같은 구조가 아닌 다른 구조로 집을 만들고 내 상상력을 마구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도(비용이라는 제한이 있지만) 현대인에게 커다란 특권이기도 하다.
주택은 실리라는 면에서 평가한다면 점수가 턱 없이 낮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자유에 대한 비용지불에 대한 가치는 인정받지 못할까?라는 고민을 해본다. 요즘 빠져 있는 유튜브 채널인 <the modern house uk>에 소개되었던 한 집주인의 멘트로 그 답을 해보고 싶다. Which is completely unnecessary, but joyful!
https://youtu.be/2rGqUFg5Npg?si=OttoGfzSGMicx4g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