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애써 건축한 집을 떠나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이사를 결심하게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 집이 3인용 집이라는 것이다. 둘째가 몇 년 전에 태어나기 전까지는 세 가족이 쓰기에는 크게 느껴지던 집이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4층의 절반과 5층 다락을 내 브랜드의 사무실로 쓰는 있는 것도 한몫하겠지만 말이다. 여섯 살 위인 첫째를 키울 때와는 다르게 최소한으로 둘째를 위한 짐을 들였지만, 한 작은 인간을 위한 가장 필요한 물건들마저 우리 집에게는 많았다. 아름다운 구석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던 집은 어느새 짐에 뒤덮인 집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집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통해 수납공간을 많이 마련하고 둘째를 위한 방을 새로 공사할까도 많이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공사를 통해 우리 집의 독특한 구성과 아름다움을 잃어버린다면, 공사를 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 공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 가족 대신, 이 공간에 맞는 다른 사람이 아름답게 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집의 목적에 더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한 가지는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지이자,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지만 동네 자체의 커뮤니티가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이웃 간의 끈끈한 정을 기대하면서 이사를 온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보다도 이웃 간의 교류가 없는 동네는 예상하지 못한 점이었다. 부산에서 비즈니스를 서울로 옮겨온 사장님과 얘기하게 된 적이 있는데, 우리 동네가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집과 상가를 꼭 이곳에 얻으려고 했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 또한 이 의견에 동의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계속해서 살아가기에 좋은 곳은 아니라는 의견을 드린 적이 있다. 늘 차량 통행이 많은 골목길과 놀이터의 부재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구심점이 동네에 없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단절된 커뮤니티에서 성장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신기하게 발견한 것은 이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동네로 이사가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새로 지어지는 소수의 주택을 제외하고는 낙후된 집들이 많은 동네의 특성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파트가 개발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동네의 아름다움과 정취는 사라졌겠지만, 역설적으로 아파트가 개발되지 않아서 인프라와 주거생활이 노후화되었다. 사람들이 마음의 적을 두지 않는 동네라서 그런지 이사 와서 지금까지 동네에서 자주 썩은 과일이나 야채를 산다. 서울 외곽의 동네에 살았을 적에는 항상 싱싱한 채소와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과일을 살 수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여러 가게를 다녀봐도 싱싱한 야채를 사기가 어렵다. 내가 사회학자라면 '동네에 대한 애정도와 썩은 야채와의 상관관계'라는 사회학 이론을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
이 집에 이사 올 때는 이십 년은 거뜬히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 일은 앞을 내다볼 수가 없는 것 같다. 집을 건축하던 시기에 사촌 오빠와 이야기를 하다가 사촌 오빠가 '너는 앞으로도 집 다섯 개는 더 짓겠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또다시 집을 짓겠다고 하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