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에 다시 쓰는 일기 (8)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여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정현종의 시 <섬>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이 무언가 매력적인 느낌이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틈'이 되어주는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관점에서 본 '섬'인가 보다.
사람과 사이에 끼이고 보니 섬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친하게 지내는 두 사람이 있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함께 친해졌다. 엄밀히 따지면 둘은 원래 친했고 제일 늦게 알게 된 내가 친해지면서 셋이 되었다. 그런데 이 둘의 성격은 그동안 어떻게 아무 문제가 없었나 싶을 정도로 다르다.
한 명이 정적이라면 다른 한 명은 동적이다.
한 명이 비관적이라면 다른 한 명은 낙관적이다.
한 명이 계획적이라면 다른 한 명은 즉흥적이다.
그 사이에 끼여 있으니 좀처럼 편할 날이 없다. 두 사람도 다투는 일이 많다 보니 함께 어울리기 힘든 경우도 생긴다. 가운데에 있는 '섬' 같은 나는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둘이 싸워서 나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는 날에는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신경 써야 한다.
두 사람 모두 상처받지 않게 반응하면서 공감도 해줘야 하고, 서로의 입장도 이해시켜야 한다.
그야말로 기 빨리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걔는 이래서 그랬을 거야. 쟤는 이런 성향이 좀 있잖아"하고서 서로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런데 이게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정말 서로가 이해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답을 찾고 공감까지 더해서 한 말이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넌 늘 나보다 걔를 더 이해하더라~"
... 였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둘 다 나에게 서운함을 느끼며 내가 다른 상대와 더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인가 싶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듣기만' 했다.
"아, 그래? 그랬어? 아이고, 그랬구나. 속상했겠다. 아이고, 그랬니?"
등등의 리액션만 해주고 입은 닫고 귀만 열었다. 나는 그저 셋이 평화롭게 지내고 싶을 뿐인데 상황이 이러니 생각처럼 쉽지 않다.
가끔은 나도 지칠 때면...
"야! 니들 그러지 말고 그냥 둘이 내 앞에서 치고받고 싸워!"
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로 그러면 차라리 서로 속을 다 뒤집어 보이며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서로 조심하며 서운함과 오해만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소중해도 이 둘은 결국 나에겐 '남'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면 연락조차 되지 않는 스쳐가는 인연일지도 모른다.
인연은 언제나 유효기간이 있고, 변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인연에 매달리고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고 나에게 집중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조금 거리를 두고, 내가 내 마음을 가볍게 하고
둘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니 집중할 때는 미처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너를 통해 그 친구를 이해하고 싶어."
결국 둘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오늘도 두 친구 '틈'에서 노력한다.
그러나 괴롭지 않다.
지금 이 인연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함께하는 인연이 소중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