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 스타트업과 애자일의 진짜 핵심은 리스크 관리에 있다
가끔 업계 안팎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린 스타트업이나 애자일에 관한 이야기만 꺼내면 고개부터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거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방식 아냐?" 혹은 반대로 "우리 회사는 JIRA 쓰고 있어요", "저희는 2주 간격으로 스프린트를 돌리고 있어요"라며 도구나 프레임워크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에겐 린과 애자일이 IT 업계 속 그들만의 ‘유행어’ 혹은 속된 말로 '판교 사투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혹은 또 어떤 이들에겐 문화나 철학이 아닌 도구, 방법론, 프레임워크가 되어버린 것 같고. 왜 이런 오해나 착오가 생기는 걸까 생각해 보다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대부분 실패를 감내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다 정확히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환경, 즉 대기업이나 공공조직처럼 모든 것을 계획하고 검토하고 승인받은 후에야 움직일 수 있는 구조 속에서 일해온 이들. 이런 곳에서는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이 명확하다.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리소스를 투입해서 정확도를 높이는 것. 따라서 ‘리스크를 줄인다’는 말이 곧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로 변질된다.
하지만 린 스타트업과 애자일의 핵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작게, 빠르게 시도하고 배우는 것’. 일에서도 인생에서도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리스크를 ‘관리’하고 ‘감소’시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편리한 도구나 방법론, 혹은 프레임워크로서 칸반 보드, JIRA, 스프린트, 스크럼 등이 등장했을 뿐이다.
린 스타트업과 애자일의 본질은 사고방식에 있다.
리스크란 무엇일까? 리스크는 불확실성, 즉 변수가 많아지고 결과를 확답할 수 없는 상태 혹은 상황이다. 그리고 대개의 일은 그 범위가 커질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리소스의 투입이 많아질수록 리스크가 커진다. 통제할 수 없는, 심지어는 인지조차 못하는 변수가 많아지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아래의 방식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1. 더 적은 비용으로 실험하기
어차피 결과를 확답할 수 없다면, 손실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도에 투입하는 노력과 비용, 인풋을 줄이는 방법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반대로 같은 다홍치마를 얻을 거라면 더 적은 비용을 들이는 게 낫다. 심지어는 다홍치마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2. 더 빠르게 실험하기
확답할 수 없는 일에 굳이 오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할까? 최소한의, 그러나 딱 필요한 수준만큼의 고민과 노력, 준비가 되었다면 해봐도 되는 것 아닐까? 그래야 뭐라도 하나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다시 교훈으로 삼아 다음번엔 조금 더 잘해볼 방도가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이는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야근으로 빨리 하라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하면서 일의 범위와 깊이를 관리하는 개념이다.
3.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지금 당겨서 하기
전통적인 워터폴 방식에서는 일이 ‘기능 단위’로 잘게 나뉘고,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기획이 끝나야 개발이 시작되고, 개발이 끝나야 테스트를 할 수 있으며, 테스트가 끝나야 비로소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문제가 늘 ‘나중에’ 드러난다. 기획할 때 보지 못했던 이슈가 개발 단계에서, 개발할 때 몰랐던 문제가 릴리즈 직전에, 심지어는 서비스가 나온 다음에야 '우리가 풀고자 했던 문제가 맞았는지'를 깨닫기도 한다.
반면 애자일은 이 순서를 과감히 비튼다. ‘목적 단위’로 팀이 함께 움직이며,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 심지어 마케터까지 초반부터 같은 문제를 놓고 함께 고민한다. 그러니 나중에야 해야 할 고민들을, 훨씬 더 앞 단계에서 다룰 수 있다. 즉, 나중에 할 일을 더 먼저 앞으로 당겨오는 것이 애자일의 핵심이다.
4. 나중에나 알 수 있는 걸 더 빨리 알게 만들기
워터폴이 리스크를 ‘통제’하려고 한다면, 애자일은 리스크를 ‘노출’시키려 한다. 워터폴은 양파 껍질을 한 겹씩 걷어가며 점점 결과에 다가가는 구조에 가깝다. 각 단계가 완벽하게 끝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만큼 신중하고, 완벽을 추구하고, 리스크를 통제하려 든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기에, 그만큼 잘못된 가정이나 오류를 늦게서야 발견하는 일이 많다. 문제를 결과물이 완성된 뒤에야 발견하게 된다.
반면 애자일은 목적 중심으로 팀이 함께 보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용자, 시장, 기술 모두를 놓고 논의한다. 기능 하나를 만들기 전에, ‘왜 만드는가’를 먼저 묻고 그 의도를 바탕으로 더 빠르게, 더 작은 단위로 실험을 설계한다.
“이 기능, 진짜 필요한 거 맞나요?”
“지금 이 타이밍에 굳이 중요한가요?”
“이 방향이 맞는지 검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런 질문이 프로젝트 중반이 아니라, 초반부터 터져 나온다. 어쩌면 이게 바로 ‘검증’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등장한 방법론이 바로 애자일이고, 린이다.
결국 린과 애자일을 풀어서 쓰면 다음과 같이 된다.
1. 작은 단위로 일을 쪼개서 진행한다.
2. 한 번에 크게 하는 대신, 작고 세밀한 단위로 시작한다.
3.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4. 전체 과정에서 분절 또는 병목 없이 함께 협업한다.
5. 다음 단계를 더 잘하기 위해, 지금 배우고 기록한다.
사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모의고사도 안 보고 수능을 본다고 생각해 보자. 소수의 천재를 제외하면 잘 볼 리가 없다. 비슷한 예로 원데이 클래스도 안 듣고 몇 개월치 수강권을 덜컥 결제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후회한다. 스스로의 의지 혹은 서비스의 품질을 작고 빠르게 테스트해보지 않았으니까. 결국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작게 시작하고, 더 빠르게 실험하며, 더 빨리 배우는 것이다.
린도, 애자일도, 어느 스타트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간다. 단지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손에 쥐고 마주하는 방법이자 철학, 사고방식이자 태도가 바로 린이고, 애자일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우리가 어쩌면 유일하게 불확실성을 제대로 대하고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