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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터 Jan 05. 2021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1년을 맞이하며

작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차가 되어가는 시점에, 지난 1년간의 근무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에 관한 몇 가지 소회, 주제넘은 주장을 기록한다.


1. 우선 스타트업이라면 구체적인 산업과 직무를 막론하고 직원, 팀원으로서 아래의 역량이 요구된다. 


-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이 사업의 모델은? 타깃은? 등 고전 경영학을 바탕으로 한 분석, 이해

- 커뮤니케이션 능력. 요청하고, 피드백하고, 전달하고, 협업하는데 필요한 모든 스킬

- 무엇이 되었든 빠른 학습력과 모드 전환능력.  

- 위 세 개는 공통 스킬. 결국 자기만의 한 방 무기에 대한 학습.

- 이를 위한 1) 구조적 사고 2) 연역적 사고. 즉 논리력. 



2. 위의 자질이 필요한 이유는?


- 결국 이건 비즈니스다. 아무리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어떤 대의를 내놓는다해도, 고전 경영학 논리를 벗어날 순 없다. 그러나 우리 회사만의 새로운 모델, 차이점 역시 분명 있다. 결국 비즈니스로서의 현실과 방향성을 둘 다 이해해야, 귀납적이거나 엉뚱한 소리 (소위 모래알 그러모으는 소리 대신) 조금 더 기획자로서 생각하고, 중요 직책으로의 가능성이 있다.


- 스타트업은 대개 기존 회사들처럼 연차, 직급별로 나뉘지 않는다. 수평 구조.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사수고 부사수다. 요청할 때, 전달할 때, 피드백할 때 등등 때마다 본인이 팀원이고 팀장이다. '말 잘 듣는' 또는 '시킬 줄만 아는' 건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 회사가 크게 성장하고, 자기의 팀/직무/역할이 짧은 주기로 바뀐다. 그때 그때 새로 배우고, 새로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초창기라면 어차피 전문가는 없다. 본인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임자다.


-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과 환경이 급변하고 종으로 횡으로 넓어지는 탓에 '이해하기 어려운 덩어리'로 와 닿는다. 이걸 나름대로 이해하려면 결국 구조화하고, 연역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3. 그러나 실제 환경은 (특히 회사가 초기라면)


- 회사/법인으로서의 구실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온갖 궂은일을 할 수도 있다.


- 그러다 보면 노력은 잔뜩 하고, 고생도 했는데 이 가운데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 커뮤니케이션, 핵심 스킬, 구조화 등은 엄두도 못 낸다. 그냥 고생만 한다. 뭐 했다고 생각했는데, '경험'만 남을 뿐, 정리된 건 없다. 


- 얼마 후 운이 좋아 회사가 투자를 받으면, 이제는 조금 더 제대로 해보자며, 경력직 또는 중고 신입을 데려온다. 


- 그리고 기껏 본인이 닦아 놓은 터에 이런 경력직 또는 중고 신입들이 들어와 이런저런 '보기 좋은' 시도를 한다. 잘하면 성과까지 낸다. 결국 자신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자리를 만들지 못한 채 이직도 애매한 상황으로 도태된다.


- 그나마도 위 시나리오는 투자가 되었을 때 이야기고, 투자조차 받지 못하면 그냥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서 노동하다(or 그저 재미난거 하다가) 온 셈이 되는 수가 있다. 


4. 그래서 중요한 건


- 학습, 무조건 학습이다. 회사 성장보다 본인 성장이 떨어지면, 결국 회사가 커갈수록 내 위로 사람이 꽂힌다. 배울만한 사람이면 다행이나, 각자 배우고 동료로서 일하는 스타트업에서, 위로 들어온 경력직이 사수가 되어줄 리는 없다.


- 회사의 성장 추이를 기민하게 파악하면서, 일종의 '정치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번 투자가 끝나면 내 위로 사람이 들어올까? 누가 내 자리 경쟁자이지? 나는 어딜 파고들어서 성장해야 하지? 이건 정치싸움을 하라는 게 아니다.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기 위한 파악을 하란 것.


- 동시에 자기 파악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자리를 만들어간다는 건 1) 내 관심사에 부합하며 2) 내 강점을 살리는 방향인 동시에 3) 회사의 단기 수요가 있는 교집합을 직무, 포폴로 가져가는 것. 


관심사도 아닌 걸 하려면 할 수 없고(군대도 보직 골라 가는 시대에...), 단점 보완 방식은 효율이 떨어지고, 회사의 수요가 없다면 당연히 안 쓰려하고, 너무 장기적이거나 원론적인 건 굳이 지금 그런 역할로 쓰려고 하지 않는다. 


- 다만 회사의 단기 수요에 맞춰 역량을 키워가며, 중장기적인 부분까지 추측은 해야 한다. 단기에만 맞추면 어느새 그 중장기적이고 원론적인, 결과적으로는 제일 중요한 자리에 또다시 경력직이 들어온다. 내 자리는 없다. 


5. 그래서 위의 이유로 스타트업은 결코 신입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단, 본인이 굉장히 성장 지향적이고, 학습력이 빠르고, 구조적/연역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면 해봄직 하다.


왜냐면 중간에 꽂힌 경력자는 결국 1) 핏이 다르거나 2) 회사의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DNA가 없다. 이들 역시 자칫하면 '전문 기술인'만 되는 수도 있으니까. 회사 내의 인하우스 외주 업체 같은. (물론 그게 이것저것 없는 신입보다야 당연히 낫지만)


반면 초창기부터 함께 해오며 회사의 DNA를 가진 초기 멤버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학습하고, 구조적으로 사고하며 회사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가운데 협업하고, 자기 무기까지 만들어가면 대체 불가능이 될 거다. 그렇게 임원이 될지도 모른다. 


6.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게 일하지 못할 거다.


그래서 투자가 끝나고 회사가 커질수록, 초기 멤버는 로켓의 1단 추진체, 2단 추진체처럼 연료와 기타 장비처럼 소진되고, 남는 건 탄두에 남은 임원과, 그때까지 버티고 남은 극소수의 직원일 것이다.


물론 추진체로 도태되고 소진되어도 커리어나 삶이 망가지진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동일 조직' 내에서의 흐름일 뿐, 추진체로 활동하는 기간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자기 포폴로 무엇을 쌓고, 어떤 강점과 가능성을 확인해서 개발해왔느냐에 따라 이번에는 본인이 '경력직'으로 성장하는 초기 스타트업에 들어가 3단 추진체 너머 탄두가 될 지도.


여담이지만, 그래서 첫 스타트업에서 성공하고 오래 남기란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실패하듯이.


7. 그래서 본인 이야기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비전에 맞는 회사에 들어왔기에, 경력직에게 지지 않고 내 자리를 만들어가려 부단히도 발버둥 중이다. 


다행인 건 이러한 버둥거림이 싫지가 않다. 가끔은 즐겁기까지 하다. 되레, 위 모든 고민 없이 '자리 보존'에만 천착하던 이들 사이 (교직원)으로 돌아가라 한다면 그거야말로 지옥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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