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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경 Oct 04. 2022

목화

환경에 이로운 실천

식물 덕분에 우리의 삶은 놀라울 만큼 윤택해졌다. 특히 주목할만한 건 의복으로, 그 중심에는 목화가 있었다. 물론 목화가 등장하기 전에도 옷은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삼과인 대마를 주로 썼다. 볏짚이나 참억새를 엮어 비옷을 만들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비단옷도 입었다. 동물의 가죽과 털로도 옷을 만들었다. 하지만 각각의 소재에는 단점이 있었다. 마는 겨울철에 보온 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웠고 비단은 너무 비쌌다. 동물의 가죽과 털에서 얻은 소재는 무거웠으며 용도에 알맞게 가공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다면 목화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식물에서 섬유를 얻으려면 줄기를 곧게 세우기 위해 단단해진 부분을 활용하지만 목화는 씨앗을 감싸는 부위를 쓴다. 이 부위는 솜털처럼 부드럽고 폭신해 씨앗을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한다. 그뿐만 아니라 씨앗이 멀리 퍼질 수 있도록 해주며 물에 쉽게 젖지 않게 한다. 씨앗을 위해 발달된 구조 덕분에 우리가 내구성 좋고 따뜻한 옷을 만들어 입게 된 셈이다.


목화의 원산지는 인도로 알려져 있고 페루, 이집트에서 그보다 먼저 목화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더스 문명 후 목화 섬유 산업은 인도의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중세 유럽인은 면직물을 발견하고 품질에 깜짝 놀랐다. 심지어 목화를 직접 보기 전에는 과실수처럼 나무에 양이 주렁주렁 열리고 거기에서 면을 얻는 줄 알았단다. 주로 양털을 활용하는 그들에게 동물이 아닌 식물에서 섬유를 얻는 게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한국에는 고려시대 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그는 장인과 목화 재배에 뛰어들어 3년 만에 크게 성공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면직물 옷을 입게 돼 기본적인 의생활은 물론 의복 문화까지 눈에 띄게 발전했다. 세탁도 용이해 위생도 개선되었다. 옷의 소재만 바뀌었을 뿐인데 전체적인 삶의 질까지 향상됐다.


면은 유럽, 아메리카 등지에서도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17세기 무렵 영국은 인도산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면직물 소비가 늘자 자국의 모직물 산업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에게 면직물이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뒤였다. 


면직물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자 정부는 결국 면직물의 원료인 목화만 수입하기로 했다. 자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면직물 생산만큼은 직접 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생산 속도가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따라잡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직조 효율을 높이는 방적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금세 한계에 도달했다. 면직물 생산 공장 규모는 훨씬 커졌고 작업은 갈수록 세분화되었다.


18세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증기기관의 출현 즉, 산업혁명이다. 이를 계기로 면직물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면직물의 원료인 목화가 대량으로 필요했다. 유럽의 한랭한 기후를 피해 미국의 드넓은 땅에 새로운 목화 경작지를 조성했다. 생산량이 늘어 이제 좀 안정되나 싶었는데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목화솜 분리에 필요한 일손이 부족해진 것이다. 솜을 씨앗에서 분리하는 작업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결국 영국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인을 노예로 동원했다. 얼마 뒤에는 위트니라는 미국인이 씨앗과 솜을 분리하는 조면기를 발명해 작업 효율이 올라갔다. 경작지는 확장됐고 더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으로 끌려가 혹독한 노예 생활을 했다. 이렇게 남부는 목화 산업에 열을 올렸지만 북부는 노예제도에 회의적이었다. 이 두 지역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결국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 준 면직물 그리고 목화의 이면에 수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만 했다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진다.


애석하게도 이런 씁쓸한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남부에서 목화 재배가 어려워지자 면직물을 수입하던 각국은 자국에서 목화 재배를 시도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러시아는 목화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세계 4위 규모의 아랄해에 관개시설을 정비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펑펑 써도 줄어들 것 같지 않던 아랄해였지만 인간의 탐욕에 물은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20세기 초 아랄해는 두 개로 분할됐고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까지 가세해 약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아랄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던 생명체도 멸종돼 생물 다양성도 위협받는 상황. 전문가들은 아랄해가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라며 무분별한 개발을 경고했다.


최근 제로 웨이스트가 대두되면서 면 소재 에코백이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이 에코백도 환경 파괴에 일조한다는 사실, 알고 있는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목화 1킬로그램을 얻는 데 물 2만 리터가 필요하다. 재배 과정에선 석유에서 추출된 다량의 비료와 농약이 쓰이는데 이는 지력을 약하게 만들고 토양을 오염시킨다. 목화를 가공하거나 원단의 주름을 펴고 각종 냄새를 제거하는 데에도 여러 화학 물질이 쓰인다. 게다가 이러한 가공 과정의 대부분이 안전에 대한 인식이 미비한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인권 문제도 산재한다. 합성섬유에 비해 자연 분해가 빠르다는 이유로 친환경적이라고 여긴 에코백의 충격적인 반전이다.


심지어 나는 에코백 (재사용이 아닌) 구입이 곧 환경 보호라고 여겼다. 에코백을 수집하듯 종류별로 사고 이미 많은데도 넙죽넙죽 받아왔다.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행동이었다. 면직물은 자연 분해는 되지만 재활용률이 낮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갖고 있는 에코백을 충분히 사용하고 쓸데없이 모으는 습관도 고쳐야겠다.


가격과 브랜드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철학에 기반해 소비하는 행위를 ‘가치 소비(또는 미닝 아웃, Meaning out)’라고 한다. ‘신념’, ‘철학’이라는 단어가 다소 거창해 보여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구입하려는 제품의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소비가 환경, 사회에 미칠 영향을 헤아리면 된다. 그러면 지출 여부가 결정된다. 대표적으로는 생분해성 패키지에 담긴 화장품 구입하기, 푸드 마일리지가 적은 지역 농작물 먹기 등이 있겠다. 소비 말고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 많다. 배달 음식 주문할 때 일회용 수저 거절하기, 플라스틱 빨대 사용 줄이기 등이다.


나처럼 알고 있는 깊이가 얕아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헤아릴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 주변,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는 일상이 익숙해질 거라 기대한다.




목화 | 아욱과 목화속 / Gossypium hirsutum Lam.

씨앗을 감싸는 보송보송한 섬유가 특징으로 이 부분으로 면직물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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