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경 Oct 04. 2022

개나리

지구를 아끼라는 경고

겨울의 한기가 채 가시지 않은 초봄에도 ‘봄이 오긴 왔구나’라며 마음에 온기를 지펴주는 개나리. 샛노란 꽃잎은 생명 활동을 잠시 멈춘 겨울의 잿빛 기운을 확 걷어내고 눈마저 즐겁게 해준다. 작은 꽃 여러 송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한 해의 시작을 함께하자며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 같다. 이처럼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겨우내 꽁꽁 언 몸과 마음이 예열된다.


개나리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존재다. 그런데 개나리의 ‘개’자가 질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종종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개’를 물가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개울, 개천의 ‘개’와 어원이 같다는 게 근거다. 그렇게 되면 개나리는 물가에 사는 나리꽃으로 볼 수 있다. 개나리의 어원

에 관해서는 아직까지도 활발히 연구 중이라고 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개나리의 학명은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다. 여기에서 종소명 ‘koreana’는 한국을 뜻한다. 개나리는 한국에서만 발견된 자생식물이다. 몇 해 전에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우리 식물주권 바로잡기’를 통해 영어로 된 식물 이름을 재정리했고, 개나리의 영어 이름을 한글 발음 그대로 적은 ‘Gaenari’로 공식화했다. 한글을 영어로 옮기거나 그와 유사한 외래어로 대체하면서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데서 오는 답답함, 예를 들면 어묵을 ‘Fish cake’라 표기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 뻥 뚫린다. 한국 토종 식물을 한글 그대로 표기하니 편안함, 그 자체다. 영화 홍보 차 한국을 찾은 외국 배우가 어눌하고 부정확해도 “언뇽하세여”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면 없던 호감이 생기고 심지어 한국이 자랑스러웠는데 이제 꽃 이야기를 할 때도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어 기쁘다.


하지만 개나리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은 이 들뜬 기분을 반성하게 만든다. 개나리는 한국 특산 식물이지만 나고 자란 자생지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단다. 1900년 러시아 학자 팔라빈의 기록이 개나리를 학술적으로 인지하고 알린 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 아놀드 수목원 소속 식물학자 윌슨이 개나리를 한국 특산임을 처음 밝혔다. 이때 그는 서울, 진남포, 지리산 등에서 채집한 표본을 기준으로 삼았다. 1926년에는 일본인 식물학자 나카이가 개나리를 한국 특산종으로 인정했다. 맞다, 학명 속 ‘Nakai’의 주인공. 좀 더 설명하자면 ‘Rehder’가 개나리의 학명을 제안했고 이후, 나카이가 학계에 정식 보고했다. 2010년에는 학회지에 개나리 자생지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지만 그곳을 자생지라고 부를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부족했다. 여러 식물학자가 개나리를 한국 특산 식물로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생지를 찾지 못한 게 현실이다.


개나리의 번식 방법은 이러한 상황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개나리는 수술은 퇴화하고 암술이 발달한 장주화, 암술은 퇴화하고 수술이 발달한 단주화 두 종류다. 자연 상태에서 개나리가 번식하려면 이 두 종류의 꽃이 적절한 비율로 분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근처에 있는 대부분의 개나리는 단주화다. 때문에 번식 확률이 굉장히 낮다. 꺾꽂이나 삽목, 즉 인간이 개입되어야만 한다.


식물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면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져서 기후 변화나 질병에 대응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개나리가 멸종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면 촘촘하게 조직된 생태계가 파괴돼 인간의 식량까지 위협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생물을 볼모로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게 돼 결국 인류의 존재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몇 년 전, 12월 한겨울에 개나리가 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봄꽃은 대개 동백과 매화,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서로 핀다. 그런데 개나리가 동백과 매화를 추월했다. 이를 두고 개나리와 벚꽃의 개화 시기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구 온난화와 국지적으로 진행되는 도시화로 인한 기온 변화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봄꽃이 개화 시기를 가늠하는 기준은 달력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하루하루 누적된 온도다. 겨울의 이상 고온과 봄의 이상 저온 현상으로 인해 봄꽃의 생체 리듬이 깨졌고 그 틈에 기온이 일시적으로 상승하자 꽃이 피어버렸다는 분석이다.


‘지구는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개나리와 그 아름다운 풍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면 감상만 해서는 안 되겠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때맞춰 피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탓에 개나리, 그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몰랐다. 잃고 나서 탄식하고 뒤늦게 고마움을 깨닫는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은 다시 구입하면 되겠지만 생명체는 멸종되면 다시 살릴 방법이 없다. 개나리가 이 땅에서 오래오래 뿌리내리며 건강한 생체 리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구를 보호하는 수칙들을 실천해야겠다. 나의 실천이 지구 전체를 살리는 데 큰 힘이 되지 못할 수 있지만 어느 광고 문구처럼 최소한 내가 지나온 길은 바뀔 테니까.




개나리 | 물푸레나무과 개나리속 / Forsythia koreana (Rehder) Nakai

네 갈래로 갈라진 노란색의 꽃잎이 화사하며 봄을 대표하는 꽃이기도 하다. 

이전 05화 동백나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