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예술가
지난여름은 장마가 유난히 길어 습했다.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오면 물세례를 맞은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럴 때면 SNS에 ‘요즘 날씨’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물이 가득 담긴 수영장 풀에 사람이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보자마자 그 습한 기운이 바로 느껴져 ‘맞아, 맞아’ 하며 공감했다. 동시에 회자되는 아주 귀여운 사진도 봤다. 물을 받아놓은 대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강아지다. 온몸이 긴 털로 뒤덮여 있어 ‘얼마나 더웠으면 그랬을까?’ 싶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얌전히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귀엽다.
여름이면 이런저런 이유로 물이 자주 생각나니 물에서 살아가는 수련도 궁금해졌다. 수생식물의 대표 격인 수련은 6~8월 물 위에서 꽃을 피운다. 여기서 잠깐! 수련이라는 이름이 물에서 지내는 특성에서 비롯돼 ‘물 수(水)’자를 쓸 것 같지만 사실은 ‘잠잘 수(睡)’다. 이유는 이렇다. 수련은 오전 11시~오후 4시에 피고 이후에는 꽃잎을 닫는다. 이때 꽃잎이 닫힌 모습이 마치 잠자는 것처럼 보여서 ‘잠잘 수(睡)’를 써서 이름을 지었단다. 참고로 줄기는 물 위에서 잘 뜰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구조다.
물에서 산다는 이유로 수련은 연꽃과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수련은 수련속 식물, 연꽃은 연꽃속 식물로 계통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잎의 모양. 온전한 피자 한 판 같은 형태면 연꽃, 여기에서 한 조각 떼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면 수련이다. 이 둘은 수면으로부터 뻗어 나온 꽃의 높이도 조금 다르다. 꽃이 수면에 둥둥 떠 있다면 수련, 꽃이 달린 줄기가 서너 뼘 물 위로 나와 있다면 연꽃이다.
수련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꽃이기도 하다. 클로드 모네도 그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빛에 따라 변하는 대상의 색감에 주목했고 그걸 소재로 독보적인 미술 세계를 펼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빛에 의해 미묘하게 달라지는 수련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모델이었을 터. 그는 수면에 무리 지어 빛에 반응하는 수련에 매혹되었다. 지베르니에 있는 집에 엡트강의 물을 끌어다가 연못을 만들어 이집트,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수련을 대량으로 들여와 심었다. 그리고 여섯 명의 정원사를 고용해 수련을 관리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나는 운이 좋게 2021년 운영 기간 마지막 날에 지베르니 정원에 갈 수 있었다. 가을 막바지라 만개한 수련은 보지 못했지만 다채로운 식물과 나무, 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쭉 눌러앉아 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러한 조화를 염두에 두고 정원을 가꾼 모네의 섬세한 감성도 놀라웠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정원사가 연못 위에 떨어진 낙엽을 치우고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이토록 환상적인 곳에서 그는 수련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지베르니 정원에서는 못 봤지만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모네의 예술 혼이 담긴 작품으로 수련을 볼 수 있었다.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모네의 <수련>이 있는 전시실은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가장 보고 싶었고 명성이 자자한 가로 91미터, 세로 2미터에 달하는 대형 <수련>이 있는 공간은 관람객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드디어 <수련>과 마주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도 후끈 달아올랐다. 너무 흥분돼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걸작을 보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꿈꾸는 것 같았다. 파리에 오기 전, 오랑주리 미술관 홈페이지의 VR 감상 서비스로 몇 번이고 봐서 크게 동요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어마어마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림을 먼 발치에서 보기도 하고, 따라 걸으며 붓의 세밀한 움직임을 살피고, 비치된 의자에 앉아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그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이며 훑어봤다. 며칠 전에 갔던 지베르니 정원도 떠올랐다. 그림 속 꽃과 나무들이 빛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른 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듯했다. 솔솔 부는 바람 따라 코끝에 닿았던 풀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1차원의 그림에서 3차원의 입체감이 느껴졌다.
전시실을 왔다 갔다 하며 <수련>을 수차례 반복해 감상하고 나니 이 미술관에 얽힌 일화가 생각났다. 모네는 <수련>을 오랑주리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이 미술관 건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수련>을 최상의 상태에서 감상하려면 하얀 벽에 자연광이 들어와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그림을 곡선으로 걸어야 한다고 했다. <수련>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빛과 색채, 철학의 결정체였기에 신경이 쓰였나 보다. 미술관은 그의 뜻을 반영하여 세워졌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정작 모네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모네가 자신이 죽은 뒤에 전시할 것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그가 말한 대로 아무 장식 없는 새하얀 벽에 자연광을 받으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그림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림을 보며 감탄하고 깊게 감명받은 관객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자신의 그림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리에서 돌아온 지금, 나도 모네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대상을 보고 또 보며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빛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를 감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때의 내 감정과 생각도 곱씹으면서. 볕이 잘 드는 창을 지키는 여인초가 그 대상이다. 이른 아침, 오전, 점심, 해 질 녘 그리고 사계절에 볕이 드는 양과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여인초의 매력을 발견하고 있다. 잎은 강렬한 볕에서는 형광에 가까운 연두색을, 장마철 습기를 머금었을 땐 채도가 높은 녹색을 띠기도 했다. 환경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렇게 아끼는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수련>을 그리던 모네의 감정 그리고 더 나아가 그의 예술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헤아릴 수 있겠지.
수련 | 수련과 수련속 / Nymphaea tetragona Georgi
물 위에 떠서 생활하며 낮에 꽃잎이 피고 오후 늦게 꽃잎이 닫힌다.
연꽃 | 연꽃과 연꽃속 / Nelumbo nucifera Gaertn.
연못, 저수지 등 물에서 생활하며 여름에 꽃을 피운다. 온전하게 둥근 잎, 수면으로부터 줄기가 튀어나와 있는 구조가 수련과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