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듬어주는 애틋한 식물
조지아 오키프라는 미국의 화가가 있다. 그녀는 주로 자연에서 영감 받은 작품을 선보였고 강렬한 색채로 군더더기 없이 표현해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중에서도 극락조화 그림은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가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조지아 오키프 특별전을 통해 그녀의 작품을 감상했다. 화면으로 봐왔던 작품 속 강렬한 색채는 내게 익숙한 극락조화의 모습과 대비되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꽃의 전체가 아닌 일부분에 집중한 그녀의 관점 또한 내게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여러모로 의미가 남달랐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꽃을 살펴볼 시간도 없다”는 그녀의 말에 담긴 꽃과 자연에 대한 애정, 그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알
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그녀가 안타까워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지금의 나는 식물을 키우며 지나가는 길에 꽃을 만나면 가볍게 인사하고 종종 구입한다. 극락조화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극락조화는 내가 처음으로 구입한 식물이다. 꽃집을 연 친구를 위한 축하 선물이자 조금 허전했던 신혼집에 활력이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소비였다. 극락조화를 집에 들이고 나서 한 일이라곤 열흘에 한 번 물을 주는 게 전부. 그때만 해도 극락조화에 대한 애정보다는 죽이면 안 된다는 강박이 커서 식물 돌보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극락조화를 키운 지 수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잎 사이에 뿔처럼 뾰족한 게 올라왔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새잎
이란다.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새잎을 틔우다니!
극락조화를 들이고 난 후, 처음 맞이하는 변화 덕분에 강박은 차츰 줄어들고 애정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새잎은 키가 어느 정도 자라니 꽁꽁 감싸져 있던 부분부터 슬금슬금 풀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넓적한 잎의 형태로 나는 게 아니었다. 잎이 돌돌 말려 있다가 점점 풀리면서 모양을 갖춰갔다. 아침마다 밤새 잎이 풀린 정도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날의 성장량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막바지 단계에선 감싸져 있는 부분이 3~4시간 간격으로 풀렸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갑자기 ‘스르륵’ 하는 소리가 나거나 극락조화 몸이 휘청이면 새잎이 풀렸다는 신호다.
한 달쯤 지나자 극락조화는 새잎의 형태를 온전하게 갖췄다. 나는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는, 고작 해봐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게 전부였다. 힘들고 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극락조화가 대견했다. 나도 뿌듯했다. 동시에 이전에는 극락조화에게 물 주기, 바람 쐬어주기 같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해주다가 변화가 생기자 갑작스레 관심을 보이는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근사한 무언가를 보여주니 그제서야 마음을 여는 게 알량하달까. 어쨌든 이를 계기로 극락조화에게 이름도 지어주며 애정을 쏟게 됐다.
그래서일까? 극락조화를 못 보면 뭔가 불안하다. 잘 있는 걸 확인하고 나왔는데도 말이다. 집을 오래 비우는 여행 중에도 그랬다. 하노이 길거리에서 만난 바나나잎을 보며 집에 혼자 있을 극락조화를 떠올리고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아, 식물학적으로 극락조화와 바나나나무는 한때 같은 파초과에 속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특히 넓적하고 기다란 잎이 닮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물들의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며 함께 생활하니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극락조화의 새잎이 내가 예상한 기간보다 느리게 펴지고, 그걸 지켜보다 지쳤다며 손으로 잡아당겨서 멀쩡한 잎을 ‘주욱’ 찢어버렸을 땐 식물도, 사람도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고지에 가까워질수록 조바심을 버려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새잎이 금방 나지 않아서 불안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가 보다. 언젠가는 나겠지’라며 의연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일이 불안해서 생각이 많아진다면 그에 맞설 수 있도록 꿋꿋이 견고한 힘을 키우면 될 일이다. ‘새잎이 왜 안 날까?’ 하는 나의 쓸데없는 걱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실을 다지는 극락조화처럼.
“아무도 꽃을 보지 않는다. 꽃이 너무 작아서 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고 무언가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앞서 자연을 돌볼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삶을 안타까워했던 조지아 오키프의 말이다. 어쩌면 그녀도 꽃을 통해 나와 비슷한 걸 느끼고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식물을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식물이 사람을 보살피고 있었다. 서로를 챙기며 의지하는 친구가 있어 오늘도 든든하다.
극락조화 | 극락조화과 극락조화속 / Strelitzia reginae Banks
넓적하고 큼직한 잎이 특징이며 화려한 꽃이 ‘극락조’라는 새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