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나무
올리브나무는 식물 키우기 내공이 좀 있다는 사람들이라면 키울 법한 식물 중 하나다. 온종일 햇빛이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어야 하며 물을 규칙적으로 잘 주어야 하는 건 기본이거니와 밤낮의 온도, 통풍 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 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식물을 키운 경험이 많아도 살아 있는 생명체라서 녹록지 않은 건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올리브나무에 푹 빠져 기꺼이 험난한 길을 택한다. 왜일까?
올리브나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리브가 열리는 나무다. ‘올리브를 수확하려고 키우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강렬한 태양 볕을 온몸으로 쬐고 있는 올리브나무를 마주했다. 작고 길쭉한 잎에서 은색과 회색, 그 중간의 색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그러다가 바람이 부니 별처럼 반짝였다. 색에도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잎이 큼직하거나 풍성한 것도 아닌데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해 보였다.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일까? 올리브나무는 과거 인상파 화가들의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폴 세잔을 시작으로 반 고흐, 르누아르까지 올리브나무를 작품 세계에 활용한 화가들이 많다. 특히 반 고흐는 그 애정이 남달랐다. 그는 동생에게 쓴 편지에 올리브나무를 두고 ‘마음에 품지도, 감히 그림으로 그려내지도 못할 만큼 아름답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살려 각기 다른 시간대의 올리브나무를 그려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올리브나무를 묘사할 때 나뭇잎은 활활 타오르게, 잎의 밑면은 별처럼 반짝이게 그렸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그의 작품 <올리브나무>에서 약 130년 전에 말라붙은 것으로 보이는 메뚜기가 발견돼 화제가 됐다. 해당 작품은 1889년 그가 생 레미 요양원에서 머물며 그린 것. 박물관 측은 고흐가 건강을 회복하자 올리브나무 사이를 거닐었는데 그때 빛에 따라 달라지는 올리브나무에 감명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밝은 주황색, 노란색으로 표현한 하늘과 짙은 초록색 올리브나무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땅의 고요를 나타낸 <오렌지색 하늘에 올리브나무>, 푸른 하늘 아래에 서있는 올리브나무 잎을 이글거리는 불길처럼 묘사한 <올리브 과수원> 등 다수의 작품에서 올리브나무의 다채로운 매력과 그의 신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그는 이 시기에 올리브나무를 소재로 14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시기에 어떻게 다작이 가능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종교에서 찾는다. 고흐는 목사인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화가로서 그림으로 봉사하려 했다. 초기작인 <누에넨 교회와 신자들>, <펼쳐진 성경과 촛대, 소설책이 있는 정물>이 그 대표작이다. 이러한 배경을 미뤄볼 때, 성경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나무는 그에게 조금 더 특별했겠다. 앞서 언급한 <오렌지색 하늘에 올리브나무> 속 하늘이 붉은색 계열인 것을 두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던 날의 비통함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르누아르도 올리브나무에 매료돼 카네이션 밭이 될 뻔한 올리브나무 숲을 사들였다. 그는 이곳 올리브나무가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했단다. 그래서 나무들이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수 없어 여기에 집을 짓고 시간을 보냈다. 바람이 불면 올리브 잎의 방향이 바뀌는 탓에 색이 달라지고 색채를 고쳐야 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올리브나무가 만드는 빛의 마술’이라며 사랑했다. 르누아르가 좋아했던 이 올리브나무들은 현재 박물관이 된 그의 집을 지키고 있다.
오늘날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인 올리브나무 잎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원산지인 지중해성 기후 즉,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습한 겨울을 나기 위한 적응의 결과다. 시원한 계절에도 광합성할 수 있도록 잎의 표면은 가죽처럼 발달되었다. 특히 잎이 은빛부터 청동빛까지 폭넓은 색감을 뽐낼 수 있는 건 뒷면에 나 있는 촘촘한 솜털 덕분. 잎이 유연하기까지 해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데 이 모습은 마치 별이 반짝이는 듯하다. 와, 당장이라도 올리브나무 숲을 찾아 떠나고 싶다. 비밀을 알고 나면 신비감이 떨어져 매력이 반감되기 마련인데 오히려 올리브나무가 만드는 빛의 마법에 푹 빠져버렸다. 나도 고흐와 르누아르가 그랬던 것처럼 올리브나무를 곁에 가까이 두고 더 자세히, 자주 보고 싶다.
그러던 중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최근 들어 오래된 올리브나무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오래된 올리브나무를 밀어내고 상품성이 좋은 품종을 심는 기업, 부를 과시할 목적으로 지중해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를 무단으로 옮겨 심는 개인이 늘어난 탓이다. 올리브나무는 예민해 오랫동안 뿌리내린 토양에서 옮겨지면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세기를 초월하여 인간의 창작 활동에 원동력이 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올리브나무가 일부 사람의 이기심으로 위기에 처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화가 되어 돌아온 경험, 우린 이미 충분히 했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
올리브나무 | 물푸레나무과 올리브나무속 / Olea europaea L.
작고 좁은 모양에 은빛이 감도는 초록색 잎이 특징이며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