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나무
소나무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고 해도 반박의 여지가 없을 듯한 국민 나무다. ‘소나무 가지를 꺾어 출생을 알리고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면서 소나무 장작을 태워 지은 밥을 먹고 살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는 말이 전해질만큼 예로부터 한국인의 삶과 밀접했다. 또한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위기 앞에서도 강인한 우리 국민을 닮았다.
<2021 산림임업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의 침엽수 면적은 약 230만 헥타르이고, 그중에서 강원도는 약 43만 헥타르로 20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면적에는 소나무 및 해송이 심어져 있을 정도로 우리는 소나무를 좋아하고 많이 심는다.
그런데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재패니즈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이다. 왜 하필 ‘재팬’이 붙었을까? 알아보니 ‘재패니즈’가 붙은 이유는 일본에서 소나무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한 거란다. 그리고 이 이름이 식물지에 발표됐다. 우리 국민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나무 이름에 재팬이 붙어서 심기가 불편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산림청과 국립수목원이 추진한 ‘우리 식물주권 바로잡기 사업’의 결과, 소나무의 영어 이름을 ‘코리안 레드 파인(Korean red pine)’으로 고쳤다. 체한 것 같던 속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재패니즈로 불리는 게 더 우세하다.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기회가 있을 때면 코리안 레드 파인으로 불러야겠다.
솔잎은 바늘처럼 뾰족한데 잣나무 잎과 비슷하다. 멀리서 보면 구분이 잘 안 된다. 하지만 잎의 개수를 자세히 세보면 소나무는 2개, 잣나무는 5개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종종 3개나 4개인 소나무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리기다소나무’나 ‘테다소나무’일 수 있다. 이 또한 예외가 있지만 거의 높은 확률로 맞아 떨어
진다고. 뾰족뾰족한 잎을 보면 그 개수를 세보고 누군지 가늠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소나무는 적송 또는 육송이라고도 불린다. 적송은 나무의 껍질이 붉은색을 띠어서 붙여진 별명이며 인기가 많아 개량 품종이 다양한 편. 육송은 육지에 분포하는 소나무를 부른다.
여느 때처럼 금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을 보려고 TV를 틀었는데 갑자기 뉴스 특보가 떴다. 강원도 고성에 산불이 났다는 소식이다. 최근 며칠 동안 건조주의보를 알리는 재난 문자가 왔어도 올해는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결국 불이 났다. 산과 바다, 둘 다 좋아해 강원도로 자주 여행을 갔다. 불과 수개월 전에도 친구들과 강릉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여행 마지막 날에는 숙소 앞 강문해변에 조성된 소나무 숲길을 거닐며 ‘숲에서 차분하게 여정을 마무리해서 좋다’며 여유를 만끽했다.
지난 2005년 봄,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화재 때도 그랬다. 낙산사는 화재가 일어나기 바로 1년 전에 갔던 고등학생 시절의 수학여행지다. 당시에는 아름다운 소나무 숲과 그림 같은 낙산사의 풍경이 영원할 줄 알았다. 화마가 이 모든 걸 집어삼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뉴스를 보면서도 그곳이 내가 갔다 온 낙산사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긴급 속보로 접한 고성 산불은 참혹, 그 자체였다. 불길이 너무 매섭고 활활 치솟아 화면을 뚫고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진행 속도 역시 빨랐다. 나무들이 불에 타버리고 맥없이 쓰러졌다. 안타까웠다. 밤이 늦어 헬기를 띄울 수도 없는 상황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처지도. 악조건을 무릅쓰고 불길을 막기 위해 애쓰는 소방관들의 모습에 마음이 더 아팠다. 하늘이 도와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불길을 단숨에 제압하면 좋으련만. 다음 날 아침, 화재는 소방관과 관계 부처의 노력으로 약 12시간 만에 진화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강원도에서 산불이 반복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건조한 날씨, 지형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양간지풍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양간지풍은 강원도 양양에서 고성에 이르는 구간에 부는 바람이다. 봄철, 영서 지방에서 영동 지방으로 향하는 바람이 경사가 급한 태백산맥을 내려오며 속도가 붙는데 이는 산불의 진행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불씨를 멀리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강원도 산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소나무는 ‘테레핀’이라는 기름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불이 더 잘 붙는다고. 종합해 보면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대규모 산불이 반복되는 셈이다.
나무 자체적으로 물을 많이 머금어 불을 조금이라도 더 잘 버티는 활엽수를 심어 침엽수 위주인 숲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숲을 조성하는 건 30~4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현재 토양 조건에서 활엽수가 잘 자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사유림에 대한 정책적 대비나 송이버섯 재배 등 소나무로 경제 활동을 하는 농가에 대한 지원을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도 산재되어 있다. 지금 당장 명쾌한 해답이 나오고 바로 실행하면 좋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나 역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며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지혜를 발휘하고 힘을 모으면 소나무에 대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대대로 이어갈 방법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소나무 | 소나무과 소나무속 /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바늘잎이 2개 나 있고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해 한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