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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조화에게 이름을 붙여 보자

극락조화에게 한 걸음 다가가기

by 김현경

극락조화를 가족으로 맞아들인 지 일주일쯤 됐다. 꽃집에서 보내준, 핸드폰 화면 한 가득 분량에 달하는 관리법과 주의 사항을 반복해서 읽었고 인터넷에서 크고 작은 정보들을 틈틈이 찾았다. 그러던 중 이름을 불러주는 행동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면 유대감이 형성되는 등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화보 촬영을 할 때 스태프들과 비슷한 경험을 한다. 스태프들은 포토그래퍼와 스타일리스트로 에디터인 나는 화보 완성을 위해 협업을 진행한다. 전화상으로 사전 작업을 하지만 얼굴은 당일, 현장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촬영의 모든 과정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해서 체력 소모도 크고 현장 상황도 녹록지 않다. 모두들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이때, 같은 부탁도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래야 끝까지 기분 좋게 촬영을 마무리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이렇다. 촬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그들과 급속도로 친해진다. 주로 쓰는 방법은 말의 시작 또는 끝에 빼먹지 않고 호칭을 붙이는 것. “실장님, 이 부분 손봐주세요.”와 “저기요. 이 부분 손봐주세요.”의 차이는 크다. ‘실장님’을 붙인 문장에서는 친근감이 느껴지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도를 포함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장은 부탁하는 본래 의도와 달리 명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경우에도 ‘저기’라고 부르는 스태프보다는 ‘에디터님’이라고 부르는 스태프를 대할 때 마음이 편하다. 호칭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무생물인 자동차에도 ‘붕붕이’, ‘흰둥이’라고 부르는데 하물며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생명체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


‘어떤 이름이 좋을까?’


‘뿅!’ 하고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서 우선 식물명인 ‘극락조화’를 요리조리 변형해봤다. ‘극락조화에서 앞 두 글자만 떼서 만든 극락이?’ “극락아!”라고 불러보았다. 전체를 발음할 땐 몰랐는데 ‘극락’만 놓고 보니 불순한 느낌이다. 예쁜 외모와 어울리지도 않고 반전 매력도 없다. 게다가 성의 없어 보인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신을 부를 때 이름의 마지막 음절만 부른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훈이’라면 ‘훈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그렇다면 ‘조이는 어떨까?’ “조이야!” 어색하다. 입에 붙지 않는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괜스레 오글거린다. 이름이 극락조화의 매력을 온전히 담아내지도 못한다. 다른 이름을 생각해보자. 어릴 적 길렀던 강아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경험이 있어 쉬울 줄 알았는데 어렵다. 그땐 단번에, 그것도 강아지의 성향, 외모와 찰떡궁합인 이름을 지어줬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앞서 시도해본 극락이나 조이가 어색한 건 평소에 자주 쓰는 단어와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 같다. 좀 더 친근한 단어를 찾아봐야겠다. 시들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의미에서 ‘초록이’는 어떨까? 전에 나왔던 이름보다 이질감은 적지만 극락조화처럼 세련되고 큼직한 식물보다는 다육식물처럼 올망졸망한 식물에 더 어울릴 법한 이름이다.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살면서 들어본 거의 모든 생명체의 이름을 끄집어내 봤다. 하지만 ‘바로 이거다!’ 싶은 이름은 없었다. 이름 짓기 폭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찰나, 남편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 메시지 창을 열었다.

‘나왔네. 이거네, 이거!’

핸드폰에 저장된 남편 이름인 ‘우리 OO’(OO은 남편 이름)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극락조화 앞에도 ‘우리’를 붙여보자. ‘우리 극락조화’. 개성 넘치는 이름은 아니지만 상대와 나를 하나로 묶어주는 ‘우리’라는 단어의 힘 덕분인지 극락조화와 심리적으로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다. ‘우리’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와 가깝고 정을 나눈 사람에게 붙이지 않나. 가족을 소개할 때도 엄마, 아빠라고 하지 않고 굳이 ‘우리’라는 단어를 붙여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우리’를 붙여 말을 걸어보았다.


“우리 극락조화, 목마르지?”


신기하게도 “오, 어떻게 알았어?”라는 대답이 들리는 것 같다. 앞으로 물을 주거나, 아침에 환기시킬 때처럼 극락조화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는 상황에는 꼭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강아지를 조련할 때 이름을 부른 후 칭찬하거나 간식을 주는 것 같은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줘야 이름에 적응한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이름이 불리면 유쾌한 일이 일어난다는 걸 우리 극락조화도 알면 좋겠다. 그 마음을 바로 확인할 방법이 아직은 뚜렷하지 않지만 시간이 흘러 아프지 않고 쑥쑥 잘 크는 모습으로 보답해줄 것만 같다. 지금껏 이름 없이 지내온 시간을 보상해주고 선물 받은 이름으로 지낼 앞으로의 모든 시간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며.


“우리 극락조화, 앞으로 자주 불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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