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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들일까, 말까

극락조화를 들이기까지의 고민

by 김현경

지인의 꽃집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화보 촬영 참고용으로 스크랩해둔 플랜테리어 기사를 봤다.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던 사진들인데 지금은 좀 달랐다. ‘우리 집도 이렇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예뻤다. 물론 촬영을 위해 전문가가 특별히 신경 써서 연출한 것도 한몫했겠지만.

집에 도착했다. 잠들기 전까지 식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도, 어떤 자료도 찾지 않기로 했다. 꽃집에서의 분위기에 취한 채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내일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


날이 밝았다. 오전에 재빨리 업무를 마치고 오후에 식물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해보기로 했다. 식물 사는 게 뭐 대수라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당한 근거 없이 구매 결정을 내려서 후회하는 것도,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는 것도 싫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는 걸 막으려면 번거로워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식물을 들일지, 말지에 대한 생각들이 뒤죽박죽이 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에겐 이렇게 무언가를 할지, 말지 망설일 때 쓰는 방법이 있다. 그 일의 장점과 단점을 메모하는 것이다. 종이를 세로로 반 나눈 후 왼쪽에는 장점을, 오른쪽에는 단점을 적고 나서 장·단점의 개수를 비교해본다. 만약 개수가 같다면 각 장·단점의 내용까지 분석해본다. 과학 실험으로 치면 전자는 정량 분석, 후자는 정성 분석에 해당될 것이다. 적는 항목은 시간이 경과해도 지금의 장점이 유지되는지 또는 단점은 개선될 수 있는지, 장점으로 인해 희생하거나 불편해지는 것은 없는지 등 그 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포함한다. 이 방법에 믿음이 생긴 건 결혼 준비를 하면서 커피 머신을 구입할 때였다. 구입 시 장점은 풍미가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관리가 귀찮다는 것, 조리대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 장점과 단점의 차이가 1개뿐이라 그 내용까지 고려했다. 커피 맛이라면 지금 먹고 있는 인스턴트 아메리카노도 나쁘지 않다. 유일한 장점인 ‘맛’ 관련 항목이 상쇄됐다. 커피 머신을 살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사지 않았고, 지금도 후회는 없다.


이번에도 종이를 꺼냈다. 반을 나누고 왼쪽에는 식물을 들여야 하는 이유, 오른쪽에는 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적었다. 식물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예쁘다’, ‘집에 변화가 필요하다’, ‘적적하다’, 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다’, ‘덤벙댄다’, ‘살림살이를 늘리고 싶지 않다’라고 적었다. 절묘하게도 개수가 같다. 하나씩 찬찬히 분석해봐야겠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식물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고 기본적인 의식주 외의 분야이므로 주관적인 견해를 완전히 배제해선 안 된다. 기능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고 객관성으로 판단했던 커피 머신 때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예쁘다’는 건 식물의 생김새에 관한 내용이다. 집에 가는 길에도 꽃집에서 봤던 식물 사진을 계속 봤고 이제 그만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도 그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나면 수그러들 법도 한데 오늘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식물 키우기에 대한 내용부터 찾아봤다. 납득이 가는 이유다. ‘집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블랙, 화이트, 그레이뿐인, 포장해서 말하면 심플하고, 솔직히 말하면 밋밋한 인테리어에 대한 싫증에서 비롯된 이유다. 처음에는 단정해서 좋았는데 1년 가까이 살아보니 조금씩 질리기 시작했다. 색다른 컬러감을 띠고 있어 집 안에 포인트가 될 소품을 찾는 중이었다. 조잡하지 않고 기존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며 너무 튀지 않으면 좋겠는데 식물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적적하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탓에 외부 일정이 없으면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날도 더러 있다.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데 집 안에 생명체가 나뿐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허전하게 만든다. 꽃집에서 느낀 식물의 생명력을 통해 이러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주관적이라서 적지는 않았지만 식물을 본 이후, 적극적으로 변한 태도도 무시할 수 없다. 소심해서 일할 때를 제외한 일상에서는 궁금한 게 있어도 남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혼자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본다. 하지만 식물을 처음 본 그날은 꽃집 주인에게 질문을 마구 쏟아냈다. 식물에 대한 호기심이 타고난 성격을 이긴 셈이다. 이상 식물을 들여야 하는 이유였다.


그다음, 식물을 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봤다.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다’는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식물 키우는 요령이 없고 서툴다. 그렇다고 해서 식물을 기르면 죽일 확률이 더 높은 걸까? 아니다. 오히려 아직 경험치가 없기 때문에 식물을 죽일 확률과 잘 키울 확률 모두 50퍼센트, 반반이다. 지금껏 해왔던 작업들을 떠올려보면 이전과 똑같은 건 없었다. 일이 아니면 전혀 몰랐을 내용도 상당했다. 그렇다면 결과물은? 꽤 괜찮았다. 식물을 기르는 일이 전에 없던 경험을 쌓게 해 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도 괜찮을 수 있다. 이 단점은 장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덤벙댄다’는 건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는 다양한 성격 중의 하나다. 하지만 꼼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엄청 꼼꼼하니 이 단점이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다. ‘살림살이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건 혼수 용품을 살 때 지켰던 나름의 인테리어 원칙이다. 미니멀 인테리어를 염두에 둔 건데 막상 살아보니 그걸 고수하는 게 쉽지 않다. 원래 용도를 세분하여 물건을 다양하게 구입하고 그 많은 걸 눈에 보이는 자리에 늘어놓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니 곤혹스러웠다. 구입 습관을 고치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다. 살림살이를 늘어놓지 않고 수납장에 전부 넣어두는 습관을 몸에 익히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전에는 팔만 뻗으면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쓸 때마다 수납장에서 꺼내 쓰고 다시 넣으려니 귀찮았다. 심지어 이게 성가셔서 물건이 필요해도 쓰지 않고 버틴 적도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반드시’였다면 지금은 ‘되도록이면’ 안 보이게 정리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건 식물을 들이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상 식물을 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였다.


식물을 들여야 하는 이유 세 개는 확고한 반면 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 세 개는 그렇지 않다. 단점의 첫 번째 이유는 장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식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나름대로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판단했지만 어쩌면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극락조화를 구입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서 좋은 건 ‘더 좋게’, 안 좋은 건 ‘좋아질 거야’라는 무의식이 작용하여 편파적으로 판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좋으면 그럴까’ 싶어 식물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꽃집에 연락했다.


"식물, 키우기로 했어요. 꽃집으로 갈게요."



바로 사진 속 식물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게 만든 주인공, 극락조화다.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난 넓적한 잎이 멋지고 올곧은 줄기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덕분에 집안은 활력이 넘치고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극락조화

소개 | 배의 노처럼 생긴 넓적한 잎과 위로 쭉쭉 뻗은 모양새가 특징.

관리 | 7~10일마다 물을 주고 반음지에 둔다.

주의 | 잎이 연약하므로 잦은 접촉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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