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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들 잘 있었어?

초록빛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

by 김현경

1년에 두세 번은 지방 출장을 간다. 대부분 첫날 아침 5~6시에 집을 나서서 다음 날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하는 꽉 찬 1박 2일 일정이다. 이때 식물들에게 물 주는 날짜가 겹치면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하루 정도 앞당기거나 미루지 못할 때 특히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부탁한다. 평소에는 믿음직스러운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이때만큼은 조금 못 미덥다. 식물마다 물주는 방식이나 물주는 양을 메모해두고 신경을 써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시원치 않다. 지난 부산 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 밤 10시쯤 남편에게 연락했다.


"식물에 물 줬어?"


“응, 조금 전에 줬어.” 답장이 왔지만 내가 메모해둔 대로, 극락조화는 식물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이 골고루 물을 줬는지, 몬스테라는 한차례 물을 준 후 그 물이 빠진 걸 확인하고 나서 물을 추가로 한 번 더 줬는지, 귀찮다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들이부은 건 아닌지, 테이블 야자는 무성하게 난 잎을 들춰가며 물뿌리개로 구석구석 흠뻑 줬는지 그리고 타들어간 잎은 정리했는지 등 마음에 걸리는 사항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주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 식물을 살펴보니 다행히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혼자 일주일 동안 여행을 떠난 봄이었다. 그때도 물 주는 방법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붙여놨다. 여행 3~4일 차까지 물을 제대로 줬는지 매일 확인했는데 ‘잔소리가 너무 심한가?’ 싶어서 일부러 그 말만 빼고 식사는 잘 챙겨 먹었는지, 별일은 없는지 등의 안부만 전했다. 알려준 대로 잘했겠거니 믿으면서 마음 편히 여행을 즐겼다. 여행의 감동에 취한 채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테이블 야자의 이파리 일부가 손상된 것이다. 남편에게 물을 주고 햇볕을 피해 그늘로 옮겼는지, 물을 충분히 줬는지 등을 물었다. 남편은 알려준 그대로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한동안 남편에게 잔소리하며 온갖 신경질을 내고 책임을 탓하자마자 깨달았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유가 어찌 됐든 보호자인 나의 불찰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금이라도 살릴 수 있는 잎은 살려야 했다.


얼마 전, 어린 자녀가 있는 실장님들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듣다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자니 남의 손에 자녀를 맡기는 게 마음이 썩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성을 다해도 어쨌든 가족만 못하다고. 뉴스에 종종 나오는 어린이집 아동 학대 문제 등을 볼 때마다 내 아이가 걱정되고 심할 때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단다. 남편에게 식물들을 맡기고 못마땅하게 여겼던 나도 일부분 공감했다. 사람과 식물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비교하는 게 우스울 수도 있다.


생명체를 책임진 보호자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다른 점은 없으리라.


식물이 나에게 특별한 거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건 아니다. 나만큼 애정을 쏟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 최대치가 나보다 낮을 수 있다. 어쩌면 남편도 그랬을 거다. 물 주고 가꾸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봤지 직접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을 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남편에게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따진 게 미안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집을 비울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쇼핑몰에서 자동 급수 화분을 판매하긴 하지만 구입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보다는 기간을 길게 잡고 남편을 교육할 계획이다. 식물마다 물 주는 법, 잎 정리하는 법 등 그동안 글로만 설명한 내용을 직접 보여주고 해 보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교육법인 셈이다.


그리고 이건 남편도 식물과 가까워지고 식물이 주는 마음의 여유를 느끼길 바라는

아내의 큰 그림이랄까.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의 저자 김현경입니다.

이번 화를 끝으로 10주 간의 위클리 매거진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의 연재는 막을 내립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오늘부터 식물을 키웁니다>의 글을 통해 식물 초보자의 마음에 공감해주시고 아낌없이 격려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하루도 싱그럽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도 브런치를 통해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꾸준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이라서 놓치기 쉬운 소중한 것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고민하고, 그것을 신중하게 글로 옮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인사드릴 날을 기대합니다.

김현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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