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어디에서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푸념을 늘어놓으며 사뭇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그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삶이란 게 내가 선택한 건 아니잖아. 죽음 정도는 내가 스스로 선택해도 된다고 생각해.” 다소 냉소적인 그의 한마디에 시끌벅적했던 자리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국적도, 부모도, 심지어 이름조차도 스스로 정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내게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결정들을 요구한다. 필요한 자원과 돈은 한정돼 있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매번 신중해야 했고 다른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의미에서 괴로웠다.
고정적이지 않은 것은 불규칙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그 자체로 스스로가 얼마나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 일을 결정하며 날마다 다른 무언가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속박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선택권을 타인에게 맡기는 이는 결코 남길 수 없는 흔적들을 남기며.
내던져진 인생이라 슬퍼하기엔 기쁜 순간이 많았다. 지나간 선택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기억들이다. 혹여 그 시작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삶은 스스로가 채워가는 것이기에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다할 것이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게 많은 걸 보면 앞으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수도 없이 남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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