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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May 12. 2022

엄마도 금쪽같은 내 새끼예요.

요즘 육아, 쉽지 않다.


농 채소에 무항생제 고기만 찾아 먹이는 것뿐만 아니라, 참 많은 엄마 아빠들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심어주기 위해 배우고 또 배운다.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님이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 방송만 봐도 그렇다.

"잠깐만요-!"

아이의 일상을 화면으로 보던 박사님이 불현듯 외치며 부모를 지적할 시동을 걸면,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엄마 아빠는 이내 긴장한다.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대한 언행은 박사님의 따끔한 충고를 받고 코칭의 대상이 된다.

"좋은 것을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나쁜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박사님이 방송뿐 아니라 저서에서도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이 참 많다. 의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무심코 튀어나와 아이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들. 그리고 내 또래의 엄마 아빠들은 그 많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부모들의 헌신과 사랑이 존경스럽게만 느껴졌다.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다. 다만 매일매일 24시간 아이와 붙어 있으며 고된 육아에 지쳐있는 이 순간, 내 머릿속엔 이 말이 계속 맴돈다.


"아이 앞에서는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아이한테 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데 왜 엄마한테도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걸까?"


엄마의 주변 사람들을 오은영 박사님 앞에 앉혀두고 엄마의 일상을 화면으로 보여준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엄마를 대하는 말과 행동에 박사님의 따끔한 지적이 꽂히는 방송이 있다면,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애청자가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육아란 참 어렵다.

쉽지 않다는 건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굳이 겪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 등을 통해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한 지인은 아기가 태어나면 길게 10년 동안은 내 맘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무시무시한 실전 육아의 경험담으로 잔뜩 긴장이 들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이미 내 뱃속엔 예쁜 아기가 자라고 있었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내 얘기 같지 않은 괴담 같은 육아를 직접 맞닥트리게 되었다.

 

글을 쓰는 오늘, 우리 아기는 태어난 지 237일째다. 이제 곧 8개월 차를 앞두고 있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엄마'로서의 삶만 살아보니, 육아가 왜 힘든지 그 무서운 실타래의 실오라기 하나하나를 직접 겪어보며 알게 되었다.


아기를 낳고 너덜너덜해진 것은 몸뿐만이 아니었다.

회복이 덜 된 몸뚱이를 이끌고 24시간 아기와 붙어 있는다는 것은 극기훈련을 방불케 하는 초고난이도의 노동이다. 팔목과 발목, 손가락 마디마디 어느 곳 하나 성한 곳 없이 시큰거린다. 쉴 틈 없이 혹사당하는 엄마의 몸은 이내 마음의 병을 키운다. 나 혼자 최전방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싸우는 것 같은 억울함과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고, 그 와중에 이렇게 슬픈 것조차 아기에게 미안해지는 죄책감이 마음을 후벼 판다.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까지 엉키면 엄마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컴컴한 색으로 물든다.


그렇게 마음의 병이 든 엄마에게 너무 많은 비수가 꽂힌다. 비수인지 모르고 무심코 던진 물줄기가 지치고 예민해진 엄마의 마음속에선 바위를 뚫을 듯이 날카롭게 꽂힌다. 처음부터 '너 한번 상처받아봐라.'하고 던진 사람은 없지만 엄마는 상처를 받는다. 상처를 준 사람은 없는데 혼자 상처를 받고 있으니 더 예민해지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듣는 사람은 들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육아라는 게 참 야속하게도, 말할 사람들은 넘치고 넘친다. 본인의 경험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은 경험담은 화자의 입맛에 맞게 뭉치고 뭉쳐서 못난이 조언이 되어버린다. 구하지 않은 조언들이 쉴 새 없이 융단폭격처럼 내리친다.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좋은 조언들일지라도 듣는 이가 먼저 구하지 않은 조언들은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어 엄마의 약해진 마음만 더 갉아먹는다.


'요즘 육아'는 아이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신중할 것을 강조한다. 마치 아이를 한 번도 칠하지 않은 백 도화지처럼 여기기 때문에 한 획과 획을 긋는데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칠할 대로 칠해서 새까맣게 변한 먹지로 보이는 걸까? '이 정도쯤이야' 하고 던지는 굵고 날카로운 획들이 가슴을 긋는다.

아이처럼 새하얀 도화지는 아니어도, 엄마도 소중하다. '이미 버린 몸', '이번 생은 망했다'가 아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고,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와 함께할 날들도 많다. 때문에 아이에게만큼 엄마에게도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태도'가 절실하다.




'별 것도 아닌 거에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누군가 나를 바라보며 하는 얘기가 아니다. 예전 같았음 그냥 웃고 넘어갈 일들에 하나하나 생채기를 새기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살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속상했던 일들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게 참 많은데, 지금의 나는 마치 부드러운 봄바람에도 상처받을 만발의 준비를 하고 서 있는 허수아비 같았다.


나는 궁금했다.

뭐 때문에 나는 이렇게 나약해졌을까?

이렇게 느끼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까?

많은 엄마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함께 공감할만한 일들이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래서 힘들어요.'를 전달할 수 있다면, 우리 주변 사람들도 우리를 '금쪽같은 내 새끼'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사려 깊은 태도로 대하지 않을까?


이해와 공감은 아주 강력한 치유제가 되기도 한다. 번뜩이는 해결책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며 내 마음이 받아들여질 때, 잔뜩 생채기가 났던 마음 위에도 단단한 딱지가 굳는다. 이런 건 네가 더 잘못했네, 마네 하는 잘잘못을 따지는 건 교통사고가 났을 때 출동한 보험사가 하는 일이지 육아에 지친 엄마를 대하는 좋은 태도가 아니다.

누군가에겐 금쪽같은 내 새끼였던 엄마에게 '이런 일들 때문에 힘들고 서럽고 슬펐구나.' 하는 따뜻한 위로를 받기 위해, 그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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