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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기 Feb 22. 2024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다?

외국어 유목민의 자아성찰 9

취업을 하고 일상이 지겨워진 나는 프랑스어 학원을 덜컥 등록해 버렸다. 강남역에 있는 유명한 학원이었다. 우아한 프랑스어 발음을 배울 생각을 하니 설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금방 따라 부를 수 있겠지. 정확히 모르지만 외워버린 그 가사를, 이젠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첫 강의, 뭐랄까 알 수 없는 자유분방한 분위기. 다소 어려운 모음 조합에 헷갈리기 시작했으나 성실히 따라갈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배우길 3개월, 중급 문법에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또 왜?


프랑스 문학도, 음악도 좋아하는데, 게다가 와인도 빵도 다 좋아하는데 왜 공부하지 못하니. 나는 무언가 다른 공부를 원했다. 마치 OO 외국어 대학교에서 배웠던 대학 강의들처럼 내 마음대로 골라 듣는 재미가 있길 바랐다. 학원은 어디까지나 학원에 불과했고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하는 그런 목적성을 띤 학원일 뿐이었다. 문화, 역사 그리고 철학과 관련한 부분은 학원에선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고 언어 외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대학이 그래서 중요했던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프랑스어 통번역 학과의 문학 강의도 몰래 들어가서 공부했을 것이다. 어디서 쉽게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대학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여 제공했던 것이다. 대학교 4년은 너무 짧은 것 아닌가요? 외국어 하나만을 습득하는 데에도 4년이란 너무나 짧은데 문화와 역사, 철학까지 공부하려면 더 많은 시간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공대생이라 그런 건가요?


난 고등학교 때 대학을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으로서, 졸업 프로젝트를 통과했을 시에도 그다지 뿌듯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저 숙제 하나 넘긴 기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 대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다? 아니, 때가 될 때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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