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라멘계의 뉴비-츠케멘과 마제소바
우리나라에서 일본라멘 붐의 시작은 아마도 돈코츠였던 것 같다. 홍대 '하카타분쿄'가 맛집으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은 진하고 걸죽한 국물 맛에 빠져들었다. 망원, 홍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라멘집들이 생겨났는데 이 과정에서 뭔가 비슷한 맛들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장시간 육수를 우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보니 각종 꼼수를 쓰는 가게들도 적지 않다.
어쨌거나 기존의 국물라멘이 식상하다면 대안이 있다. 츠케멘이나 비빔라멘, 즉 마제소바다. 최근 '팝업상륙작전'을 통해 알려진 츠케멘은 찍어먹는 라멘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메밀소바와 비슷하다. 다만 츠케멘 육수는 매우 진하면서 짠맛이 강하다. 일본식 메밀소바 쯔유가 단맛보다 짜게 느껴지는 원리와 같은데, 면을 푹 담가 먹는게 아니라 찍어먹는다. 츠케멘은 원래 라멘가게 점원들이 팔고 남은 면과 수프로 대충 만들어 먹은 스텝밀에서 시작됐다. 파는 곳이 아직 많은 편은 아닌데, 인상적인 가게를 꼽자면 잠원동 멘쇼쿠가 있다.
양념들이 줄을 맞춰 놓여있다. 단무지와 다진마늘 옆에 꼭 화장품 용기처럼 생긴 작은 병에 어간장과 유자소스, 다시마식초 등이 놓였다. 처음 와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면 직원에게 꿀조합을 물어 보는게 좋다. 츠케멘에는 돼지뼈, 닭국물 같은 두세가지 육수를 섞어 쓰는 일이 흔하며 어분(漁粉) 가루 등을 넣어 강한 풍미를 낸다. 추가양념 중 개인적으로는 고추기름과 식초 조합이 좋았음.
고명은 다진 파와 샬롯, 김, 반숙달걀에 돼지고기 차슈와 수비드 닭가슴살이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고기의 풍미를 샬롯이 깔끔하게 해준다. 육수의 농도는 인스턴트 크림수프 정도인데 담그기 귀찮으면 조금씩 면에 부어가며 비벼도 된다. 짭짤+매콤하면서 자꾸 당기는 감칠맛이 매력적이다. 일본에서는 주로 여름 메뉴로 알려졌으며 따로 육수를 추가해 묽게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 남은 소스가 아깝다면 공기밥을 추가 주문한다. 조리되지 않은 면과 수프를 테이크아웃으로도 팔고 있다.
https://place.map.kakao.com/620448120
을지로3가에 자리잡은 '지유켄'은 한국과 다른 일본식 중화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파두부, 차항, 교자, 중화소바 등이 주 메뉴다. 역시 일본화된 중국음식으로는 탄탄면이 있는데 국물이 있는 버전과 약간의 기름양념에 비벼먹는 탄탄면 두 종류다.(원조인 사천 탄탄면은 비빔) 매운양념 베이스라 한국인 입맛에도 꽤 잘 맞는데, 지유켄에서 최근 여름메뉴로 추가한 시루나시 냉탄탄이 딱 취향저격이었다.
우동면보다 살짝 가는 정도의 면발은 식감이 쫀득하다. 알싸하게 화자오로 양념한 고추기름이 깔려 있고 다진고기와 땅콩소스, 다진 쪽파와 갓절임 등이 올라갔다. 아주 차갑지는 않고 서늘한 정도의 온도인데, 칼칼하니 매운 양념과 아작한 식감을 더하는 갓절임이 더운 날 입맛을 잃었을때, 지쳐 있는 미각세포를 바짝~ 긴장시키며 '쨍하니' 입안을 깨워주는 느낌이다. 무겁지 않은 양에 강렬한 풍미가 먹고 나서 뭔가 산뜻함을 안겨준다.
이럴때 차가운 음료 한잔을 안 곁들이면 서운하다. 국내에서 파는 곳을 거의 보기 힘든 바이스사와는 내가 지유켄을 자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붉은 자소잎의 화하면서 독특한 향기에 시큼한 매실, 약간의 사과향이 조합됐다. 얼음잔에 탄산수를 부어 마시면 갈증을 확 씻어주는 음료다. 실제로 자소잎과 매실은 식욕을 깨우고 더위를 이기는 데 좋다.
https://place.map.kakao.com/699901016
이번에는 동네 맛집 한곳을 소개해본다. 츠케멘, 탄탄멘과 비슷한 듯 다른 이번 메뉴는 바로 '마제소바'다. 덮밥도 조금씩 떠서 먹는 일본에서 비벼 먹는 면이란 꽤나 낯선 존재인데, 실제로 마제소바는 라멘 라인업 중 뉴비에 속한다. 아마도 국내에서 처음 유명해진 마제소바 맛집은 송파구에 자리잡은 '멘야하나비'였을 것이다. 다진고기 양념에 각종 고명이 풍부하고 마지막에 올린 노른자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쌍문역 부근에 자리잡은 후타츠는 사장님과 직원들의 연령대가 꽤 젊은데, 그래서인지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하는 가게다.
아부라는 일본어로 기름. 즉 아부라소바는 기름양념으로 비벼낸 중국의 유포면 비슷한 메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짧게 다진 부추가 하나가득 올라가 있는데 밑에는 고기를 비롯한 고명들이 숨어 있다. 기본적으로 매운 양념에 다양한 재료들이 포함된 것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이유라고 생각된다. 구운 스팸 조각을 면에 곁들여 먹으면 가벼운 한끼 식사로 뚝딱이다. 여기에 시원하고 달콤한 멜론소다 한잔 추가.
뉴 아부라소바는 앞서 소개한 메뉴에 비해 훨씬 푸짐하다. 일단 두툼하고 큼직한 차슈 두장이 올라간 모습이 마치 '포뇨'에 나오는 라멘을 보는 듯하다.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초생강에 방울토마토, 다진 파가 올라갔다. 노른자 대신 부드러운 반숙의 온천계란이 감칠맛을 플러스한다. 불맛이 살아있는 차슈가 듬직해 보인다. 보통 아부라소바에 비해 조금 더 맵고 맛이 강하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두 종류 모두 면은 우동면에 가까운 굵은 면발이다. 한끼 점심식사로도 좋고, 저녁에는 하이볼 한잔을 곁들이는 손님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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