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책장을 넘기다 보니, 페이지 곳곳에 내가 남긴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많은 밑줄들, 여백에 적힌 짧은 메모들, 접어 놓은 페이지 구석구석마다 저마다의 이유로 남겨진 표시들이었습니다. 책을 읽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무엇을 알고 싶었고, 어떤 답을 찾고자 했을까요?
그 흔적들 속에는 참 많은 질문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마주한 고민, 몰랐던 나의 모습들, 그리고 이루고 싶었던 꿈들이 모두 그 밑줄 아래, 그 짧은 글귀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동안 읽은 책 속의 문장들이 내가 정말 바라던 나의 모습, 내가 진정으로 꿈꾸던 삶의 단서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나에 대한 답은 이미 내가 남긴 밑줄들에 녹아 있었다는 사실을요.
그러나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나는 그토록 많은 책을 읽고도, 그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쉽게 실천하지 못했을까? 왜 책이 대신해 내 마음을 표현해야만 했을까? 그저 한 번의 밑줄로 지나가고, 메모로 남긴 채로 마음 한편에 묻어둔 채 살아왔을까?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을 때면, 그 순간의 나의 마음은 그 문장 속에서 진실로 자신을 발견하고, 꿈꾸고, 때로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마치 마음속에 조각조각 쌓여 있는 퍼즐처럼, 책 속의 수많은 문장들이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끝나면 또 다른 책으로,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지는 나의 독서는 끝이 없는 여정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밑줄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제가 진정 바라는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요. 그동안 읽은 책들과 남겨진 흔적들은, 제가 원하는 나를 찾아가는 작은 발자국이었고, 언젠가 완성될 나의 큰 그림의 일부였습니다. 이제는 그 밑줄들을 하나씩 다시 짚어가며 나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이, 나 자신이 놓여 있음을 압니다.
이제는 그 흔적들을 따라 다시 걸어보려 합니다. 잊고 있던 밑줄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나를 어떻게 완성시킬지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며 나의 모습을 온전히 마주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