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8일.
14시간의 진통 끝에 또래보다 머리가 제법 큰 남자아이를 낳았어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처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엄마로서의 출산의 감동을 느끼려던 찰나, 제 가슴에 태변을 뿌지직 싸 버린 저희 집 아들.
시작부터 출산과 육아의 환상을 와장창 깨버린 그 아이가 태어났던 그날. 저도 다시 태어났습니다.
결혼 전 저는 매일이 피곤한 사람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을 치고, 교사가 되었던 해.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약간의 우울증과 남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흐느적흐느적 집과 학교만 오갔습니다.
그리고 퇴근 후엔 그냥 널브러지는 그런 연체동물의 삶을 사는 그런 날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남들 따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순식간에 저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꼈어요.
그리고 바뀐 세상 속에서 엄마로서 살아가려면 더 이상 연체동물 같은 삶을 살아선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급격한 삶의 변화 속에서 사춘기 때도 하지 않았던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나는 누구지?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늘 시간에 끌려다니며 남들이 짜놓은 인생 과업대로 살던 제가 육아휴직 동안 하루종일 말 못 하는 아이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육아는 고되었지만 덕분에 제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그 시간 속에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어요.
“내 품에 안겨있는 이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새로 태어난 나도 잘 크고 싶다.”
하지만 30대가 되어서야 제대로 된 진로 찾기가 시작된 저의 옆구리엔 사은품이 하나 딸려 있었어요.
저의 꿈을 찾아준 계기이자 저의 꿈을 붙잡는 모순적인 존재인 저희 집 아이.
뭘 해보려고 해도 저에게 찰싹 달라붙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의존하는 아이를 보며 제가 먹은 마음은 우선 이 아이를 잘 키워야 저도 잘 클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그때부터 제 육아의 목표는 “우리 아이 독립 만세”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아이가 꿈을 좇는 저의 발목을 붙잡지 않으려면 이 아이부터 세상에 오롯이 혼자서 설 수 있어야 했어요.
“우리 아이 독립 만세”를 되도록 빨리 외치기 위해 일단, 정보를 무작위로 수집했어요.
책도 보고, 영상도 보고, 강연도 들으러 다니고, 주변 선배 엄마들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애바애’.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헤매다 문득 주변을 되돌아보니 저는 고등학교에서 10여 년 동안 아이들을 지켜봤더라고요.
그 속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 인성이 바른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이야기를 잘하는 아이,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는 아이, 사교성이 좋은 아이 등등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저희 집 아이의 자질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며 아이의 독립을 도왔어요.
아이의 초등 입학을 앞두고는 본격적으로 아이의 공부에 관심을 집중했어요.
누가 뭐래도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잘한 경험은 아이의 독립에 큰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때마침 학군지에 근무할 때라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아이들의 공부 머리, 공부 습관, 마음 가짐 등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 결과 공부 잘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비법을 알아냈어요.
내신 공부도, 수능 공부도 잘 해내는 아이들에게는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가진 아이들을 지켜보며 얻은 비법은 큰 게 아니었어요.
그건 바로 초등 저학년 때부터 루틴과 습관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우리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는 첫 단추를 꿰는 초등 입학.
마지막 단추에서 꿰었던 단추를 모조리 풀어헤치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골든 타임입니다.
주변 선배 엄마들 중 은근하게 뿜어져 나오는 여유가 느껴지는 분들이 있죠?
그 여유의 근원은 잘 진행되고 있는 자녀들의 독립이더라고요.
저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하루 빨리 “우리 아이 독립 만세!”를 외치길, 은근하게 뿜어져 나오는 여유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엄마가 되길 소망하며 그 비법의 핵심을 차곡차곡 쌓아 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