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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학년 풀어요?

by 알쓸채은



학군지 초등학생, 선행 많이 하나요?



아이 초등 입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학군지로 이사를 했어요. 학군지로 이사하기 전 학군지 아이들은 초등 6학년 때 <수학의 정석>을 들고 다닌다는 말에 살짝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었는데요. 막상 학군지에서 초등 1학년을 보내다 보니 비학군지와 크게 다른 점은 모르겠더라고요. 아이의 친구들이 학원을 2~3개 다니긴 했지만... 저학년이라 대부분 음악, 수영, 태권도 같은 예체능 학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여기가 학군지구나!' 하고 느낀 일이 있었는데요. 주말 저녁, 아이가 아파트 단지에서 줄넘기 과제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이 줄넘기 개수를 신나게 세어 주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와 몇 학년이냐고 묻더라고요. 1학년이라 했더니 자기는 2학년이래요. 그러고는 제게 대뜸 물어요.


“몇 학년 거 풀어요?”


순수한 얼굴의 그 아이 질문에는 분명 선행 학습과 관련된 의미가 담겨 있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최근 저희 집 아이와 저녁을 먹으면서 1월 달에는 1학년 수학 문제집을 마무리하고 2월부터는 2학년 거를 풀자했더니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친구들은 분수를 푼대요!”


3학년 2학기에 나오는 분수를 학군지 아이들은 1학년 2학기에 풀고 있는 것이었어요. 예체능 학원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학군지는 제 생각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답니다.




선행 학습 필요한가요?



고등학교 교사 입장에서, 선행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등학교는 진짜, 정말, 상상초월로 바쁘거든요. 내신도 관리하고, 수행도 관리하고, 생기부도 관리하고, 수능 등급도 관리하려면 미리 좀 하고 와야 해요. 현 입시에서 수시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첫 시험부터 실전이 시작된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좀 이르고요. 고학년이 되면 선행을 준비할 필요가 있어요.


얼마 전 대치동에서 유명하다는 교육 컨설턴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초등 아이의 엄마로서, 지방 공립고등학교의 교사로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학군지인 대치동 사교육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그곳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강의 끝에 강사와 즉문즉답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엄마들의 관심은 역시나 선행 학습이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할 것 없이 얼마나 선행을 해야 하는지를 제일 궁금해하더라고요. 대치동 강사는 선행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아우트라인을 잡아 주고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어요. 강사의 이 마지막 말에 저는 이 강사가 찐이라고 믿게 되었답니다.


"선행보다 중요한 건 현행 100점!"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선행은 필요 해요. 하지만 이 선행에는 전제 요건이 있어요.


바로, 현행에 구멍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선행? 현행에 구멍 나면 말짱 도루묵!



제가 수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갖게 된 개인적인 믿음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들마다 각자의 공부주머니를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에요. 이 공부주머니는 아이들마다 그 크기와 강도가 달라요. 게다가 이 공부주머니는 매우 유연해서 잘 연마할수록 그 크기가 커지고, 그 강도가 질겨진답니다.


아이의 초등시절은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이들 저마다 갖고 있는 공부주머니를 연마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시기예요. 공부에 대한 긍정적 정서를 갖고, 올바른 공부 습관을 기르면서, 성취감을 쌓아가면서 말이죠.


공부주머니를 연마해야 할 중요한 초등 시기에 연마는 제쳐두고 선행을 당기는데 급급하면 아이의 공부주머니에 구멍이 나기 마련입니다. 아직 아이의 공부주머니는 선행의 내용을 담을 만큼 크지도, 질기지도 않은데 선행의 내용을 쑤셔 넣다 보니 선행한 내용이 공부주머니 밖으로 흘러넘치거나 공부주머니에 구멍이 생기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거죠.


현행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선행 학습은 '현행도 실패, 선행도 실패'가 되어 시간 낭비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 아이 초등시절, 공부주머니 연마를 최우선 과제로 두시고 현행 100점을 목표로 잡으세요. 그리고 현행이 잘 다져졌다 싶을 때 선행을 시작하도록 해요.


초등 3~4학년, 아이의 성향을 잘 살펴 한 학기 정도 선행을 시작하다 보면 중학교 갈 즈음에는 1년, 2년 정도 제대로 된 선행이 가능해질 거고요. 아이가 좀 더 여유로운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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