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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27. 2024

[소설]04 - 그녀,제이.






 제이의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대화는 다시 멈췄고, 카페에는 우리 둘만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변에서 커피잔이 놓이는 소리, 사람들의 조용한 대화, 바깥의 차 지나가는 소리 등이 모두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때 나도 글을 썼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뒀다. 제이와 달리, 나는 더 이상 쓰지 않았다. 나는 글에서 벗어나 평범함을 선택했다. 그러나 제이는 그 평범함을 거부하고, 끝까지 쓰는 삶을 택한 사람이었다. 그 차이가 우리 둘 사이에 어떤 벽을 만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제이와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제이는 잠시 나를 보더니 자신이 쓴 책 [and end]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and end]는 한 아이가 가족과의 여행 중에 겪는 사고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이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사고는 우연하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것은 끝으로 향하고 있었던 거죠. 책 속의 주인공은 처음에는 단지 평범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가족들과 차를 타고 이동해요. 하늘은 밝았고,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모든 게 너무 평화로워요."





 "그러다 갑자기 차가 크게 흔들리고, 모두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채요. 주인공은 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창틀에 머리를 부딪혀요.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고, 차가 뒤집혀요. 세상이 뒤집히면서 모든 것이 부서지고 무너져내려요. 그 혼란 속에서 주인공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아빠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걸 보게 돼요." 




"주인공은 아빠를 깨우려 해요. 흔들고 소리치면서 그가 다시 눈을 뜨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아빠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아요. 그 순간, 그 아이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걸 느껴요. 그게 얼마나 낯설고 무서운 감각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마치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자신만이 그 상황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엄마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요." 

 제이는 말을 이었다. 


 "창문이 깨지면서 몸이 튕겨 나가요. 피가 땅에 흩어지고, 내장이 흘러나오고... 그럼에도 엄마는 주인공을 안심시키려고 해요. ‘괜찮다’고 말하면서 아이를 꼭 안아주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떨리고, 아이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요. 그 순간, 주인공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무너짐을 느껴요."




 제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딸을 안심시켜했던 엄마는 뒤늦게 아빠의 죽음을 마주하고..." 

 제이는 한숨을 내쉬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지키려고, 어떻게든 침착하려고 노력하지만, 남편의 시체를 보게 된 순간 엄마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려요. ‘죽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면서 통제할 수 없이 울부짖어요. 숨을 헐떡이며,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흐르는 눈물과 절망 속에서 무너져요. 그리고 그 순간 아이는... 그 절규와 엄마의 고통, 그 모든 것을 마주하게 되는 거죠."





 "엄마의 울음은 점점 더 커져가요.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렇게 소리치며 남편의 죽음을 직면하고, 동시에 자신의 삶이 그 자리에서 끝나버릴 것 같은 절망 속에 빠져들죠. 엄마는 두려움과 비통함에 사로잡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뱉듯 절규해요.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고통,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뒤엉켜있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껴요. 그리고 그게 바로 그날의 기억으로 남아, 그날로부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돼요."



 "그 기억은 내게 글로 적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무언가였어요." 제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글로 그날을 기억하고, 글로 그 모든 두려움과 고통을 붙잡아두는 거죠. 아이에게는 그게 현실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죠."


  나는 제이의 얼굴을 읽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때 저는 아이였고, 모든 걸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어요. 그저 내 앞에 있는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만이 현실이었죠. 저는 어떻게든 엄마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어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저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제이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의 말을 어떻게든 진실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 모든 일이 정말 괜찮았고, 우리가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걸... 그래서 글을 썼어요. 진짜 현실과는 다르더라도, 글 속에서는 우리가 괜찮을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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