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오후 2시, 제이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그녀는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도착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문득 제이가 왜 그런 식으로 대답했는지 다시금 궁금해졌다. 그녀의 삶과 그 속에 감춰진 모순들 말이다.
제이는 30분쯤 늦게 도착했다. 여전히 검은 단발에 단순한 옷차림. 겉모습은 전날과 다를 게 없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그녀는 별다른 인사도 없이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마치 나와의 인터뷰가 아닌, 자신의 계획을 다시 점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그날처럼 피로와 함께 묘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사실... 어제 했던 말들 기억하세요?”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네, 기억해요. 꽤나 인상 깊은 대화였죠." 나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밤에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자꾸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이거 하나는 확실해요. 죽음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
그녀의 말에 나는 약간의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그녀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이 여자는 그걸 글로 풀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단순히 감정에 매몰된 사람이 아니라, 그 감정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예술가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주제로 소설을 쓸 계획이신가요?”
제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쓰고 있어요. 그리고 그 소설이 끝나는 날, 나도 끝낼지도 모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