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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진 leeAjean Sep 06. 2024

[소설] 01 -
그녀, 제이.








"제이는 자신이 '제이'로 불리길 원했다."












 기성에 파묻혀 날을 갈아보지만, 날선 작대기는 어느 곳에서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휘두를수록 녹이 슬고, 녹 슨 날은 무뎌진다. 있는 힘을 다 해 여러 허공을 찔러보지만, 허공에 부딪친 작대기는 튕겨난다. 칼잡이들이 이르길 남을 찌를 땐 스스로도 찔린다고 하였다. 날이 배를 뚫고 내장을 파버리길 바라지만, 신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칼은 비틀려 손목이 자연스레 꺾이고 찰나의 줄다리기에 벽 같은 몸뚱이가 이겨버려 내 몸을 찌른다.






 제이의 칼은 끝내 스스로를 찔렀다. 피가 튀기고, 살이 흩어진다. 그 살을 제물 삼아 믹서기에 갈아버렸다. 피가 튀기고 흰 옷은 아무리 빨아도 되돌아가지지 않는다. 제이의 이야기는 이랬다. 






 제이의 칼은 끝내 스스로를 찔렀다. 피가 튀기고, 살이 흩어진다. 그 살을 제물 삼아 믹서기에 갈아버렸다. 피가 튀기고 흰 옷은 아무리 빨아도 되돌아가지 않는다. 제이는 그 모든 흔적을 지우려 애썼지만, 언제나 칼자국은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흰 옷은 더 이상 흰색이 아니었고, 그녀의 글에는 그 얼룩이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제이는 이야기는 이랬다. 자신의 글처럼 꽤나 진지한 사람을 살았다. 글을 쓰는 것은 마치 그 상처들을 다시 꺼내어 바라보는 일과 같았다.





 여러 모습도 스쳐온다.





 처녀같이, 때론 소녀같이. 





 혹은 자신의 젊은 날을 보는 할머니의 모습을 했다.





 어쩔 땐 웃는다. 이 갓난아이 같은 웃음을 보라, 주름이 펴지며, 하늘 길이 펼쳐져 생각해 보지만, 그 안에는 제이, 자신이 원하는 결말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상상한다. 다시, 다시 아기의 모습이다. 꼭지를 물고 있는 모습. 멋대로 울어버리고, 또 멋대로 웃어버린다.





 밥은 잘 먹지 않는다. 제이의 식사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 그녀는 음식 먹는 행위 자체를 고통스러워했다. 배고픔을 느껴도 음식을 먹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냥 날을 잡고 끊임없이 밀어 넣는 행위다. 포만감에 도달하면 손가락을 집어넣어 먹은 걸 뱉어내려 한다. 다른 사람의 손가락인양 뱉어냄에는 제이의 의지가 없었다. 구역질이 올라오고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가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게 변기 커버가 열려있지 않았다. 변기 커버 위로 먹은 게 게걸스럽게 쏟아내려 진다. 오물은 온몸에 튀겨버렸다. 가래를 연신 뱉어버리고, 손을 뻗어 샤워기의 물을 튼다. 온도는 가장 차가운 상태로, 그리고 입을 향해 분사한다. 물이 입안 가득 차오르고, 찬 물이 머리카락을 적시며 몸 전체로 흘러내렸다. 오물 또한 피부를 따라 흘러내렸다. 오물이 다 씻겨내려갔다는 착각이 들 때쯤 화장실을 나와 약상자를 찾는다. 축축한 손으로 소화제와 진통제를 뜯고, 입 안의 물과 함께 삼켜 버린다. 약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얼굴은 무표정이다. 약의 쓴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위액이 대부분의 食과 관련한 부위로 상하게 만들었다. 





 이제, 화장실 문을 등 뒤에 두고 기둥처럼 서 있는 그녀. 벽에 등을 대고 서면, 벽의 차가움이 몸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축축한 옷이 피부에 들러붙어 몸은 더욱 차가워졌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몸을 감쌌고, 손끝은 조금씩 저려왔다. 허리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은 척추를 타고 올라와 손가락 끝까지 이어졌다. 표정은 없었다. 투박한 표정을 짓는 법 조차 까먹어버렸다. 볼이 떨려온다. 입술을 괜히 물어뜯는다. 입술에 피가 터지면 따뜻한 핏방울이 느껴진다. 피는 따뜻하고 진득하다. 





 10분, 20분, 1시간, 3시간. 물이 마르면 이제는 물 비린내가 올라온다. 머리는 푸석푸석하다. 눈앞에 거울이라도 있었으면 다시 일어나 뜨거운 물로 씻을 생각을 했을 거다. 피 묻고, 오물 투성이의 가죽을 입은 사람은 상상 속에 없다. 하지만 제이는 거울이 있더라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을 거다. 몽롱취한 뇌와 함께 했으니까. 장기가 선명하게 움직이고, 이제는 꿈틀거리기까지 한다. 위액이 속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탓에 배는 쥐어짜듯 아려왔다. 점점 힘이 빠진다. 다리의 근육이 풀리고, 등을 지탱하는 근육도 힘을 다한다. 몸을 바닥에 맡기며 쓰러진다. 머리카락과 먼지 같은 것이 보인다. 이것들을 보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하늘도 보고 싶지 않아. 하늘 따위는 없지만, 좆같은 벽 밖에 없어. 허리가 아프고, 이제야 추위가 느껴진다. 춥다. 좁아터진, 곰팡이 자국 밖에 없는 천장뿐이야. 포크로 뭐라도 쑤시고 싶은데, 쑤실 사람이 나뿐이다. 그냥, 그냥. 누워. 그래 지구를 등지는 거야. 나는 지금 하늘 위에 있는 거야. 둥근, 지구 위에. 오래도록. 자연스레 뒤통수가 아려온다. 바로 이때다.





 제이는 이때 펜을 찾는다. 



 




 제이는 스스로를 ‘제이’라고 부르길 원했다. 왜 하필 그 이름을 고집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제이'라는 이름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 이름에 얽힌 사연이 있는지 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에게 '제이'는 자신을 규정하는 단 하나의 호칭이었고, 그녀가 내게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으니 나도 그대로 따를 뿐이었다.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그녀의 진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나에게도, 그리고 어쩌면 제이 자신에게도 이미 희미해진 것 같았다. 과거의 이름이 있었다면, 그 이름은 이미 사라진 채 오래전에 어디론가 흩어졌을지도 몰랐다. 





 난 이름에 무딘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호칭으로만 기억됐다. 형, 누나, 상사, 가족, 심지어 친구들까지도 이름보다는 그저 관계에 따라붙는 호칭이 더 익숙했다. 그들에게 이름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내겐 그 이름이 별 의미가 없었다. 사람을 역할로만 파악하고, 그 역할 속에 녹아든 이들을 뭉뚱그려 기억하는 게 훨씬 편했다. 익숙한 호칭 안에 사람들을 넣어두고, 그 호칭 속에만 그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나에게 모두 '작가님'이었다. 어떤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든, 막 데뷔한 신인 작가든, 인터뷰해야 할 대상들은 전부 다 '작가님'이라는 하나의 호칭으로만 통용됐다. 처음에는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곧 포기하게 되었다. 매번 새로운 이름들을 기억하고 불러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고,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부르고 만날 수 있었다. 이름을 알고 불러야만 더 가까워지는 건 아니니까.





 제이만큼은 달랐다. 처음부터 '제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받았고, 나 역시 그녀를 자연스럽게 '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호칭이 아니라 이름 그 자체로만 그녀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건 왠지 어색했고, 그녀가 자신을 '제이'라고 불러주길 원한다는 것이 마치 암묵적인 규칙처럼 다가왔다. 어쩌면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 규정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나도 그녀를 '제이'로 기억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이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건, 출판사에서 그녀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어떤 글을 쓰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흐른 후, 제이와 마주쳤다. 직접적으로 그녀와 처음 대면한 건 인터뷰 현장에서였다. 난 기자였다.

















소설 : leeAjean [그녀, 제이.]

사진 1 : pavel boltov

사진 2 : ilyass seddo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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