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기일 출판사의 한성훈 기자입니다."
나는 제이를 보며 가볍게 인사했다. 앉은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오늘 앞서 말했다시피 새로 출간된 소설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겠습니다.
"네."
첫 대화는 딱딱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보는 것도, 무언가에 호기심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대면하고 있다는 사실만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표정이랄까. 그 자리에서 피하고 싶어하는 기색도 없이, 동시에 대화에 열려 있는 태도도 아니었다. 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여자로서 꽝이군.’
이런 생각을 한 이유와 내 실제 행동에는 여러 상관 관계가 있었다. 먼저 제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질문 자체에 흥미도 없었다. 굳이 제이 같은 사람을 위해 밖으로 나올 이유를 찾지 못했다. 부서가 달라지면서 전임 담당자가 물러나고 난 뒤 내가 떠안 게 된 사람, 딱 그 정도 의미 밖에 없었다. 전임자가 무슨 이유로 회사를 나갔는지 알 길이 없었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에 말해주는 이도 없었다. 그저 하달된 대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녹취록을 정리해 기사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너무 일에 진지할 필요도 없다.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감정의 총집합인 것처럼 굴었고, 그 과정에서 나만 피곤해졌다.
"먼저, 작가님의 신작인 [end and]를 쓰게 된 계기나 영감은 무엇인가요?"
예의상의 질문이었다. 참고로 나는 [end and]를 읽어본 적이 없다. 제목만 알고 있었을 뿐, 그마저도 출판부서에서 받은 인터뷰 가이드에 적힌 걸 기억했을 뿐이었다. 관심이 생길 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시간 낭비일 것이다. 대체로 ‘예술’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은 어디선가 무언가 대단한 경험을 한 양 포장하고, 독자들에게 사랑받기를 구걸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한때는 그런 글을 쓰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열정’이라는 감정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지금은, 그 젊은 시절에 사랑을 구걸하듯 글을 썼던 작가들, 혹은 작가를 흉내 낸 그저 그런 사람들. 그들의 머리에서 기어나온 질문지를 읽어 내려가며, 그들이 던져준 질문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냥 거울처럼 그들의 질문을 반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던지는 말을 받아쓰기만 하면 되었고, 그 받아쓰기라는 행위는 생각보다 쉬웠다. 받아 적기만 하면 되니까. 창작과 고민의 영역은 전혀 없었다. 인용부호를 붙여 그들의 말들을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봉급은 늘 쥐꼬리였고, 영화도, 책도 더 이상 즐겁게 해주지 않았다. 한때 밤새 글을 쓰는 것이 삶의 중심이었지만, 열정도 악성 종양이 자라는 듯 몸 안에서 아프게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글쓰기 의욕은 사라지고, 하루를 견뎌내는 일상 속에 녹아들었다. 글을 쓸수록 점점 깎아내는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내 글을 기다리는 독자는 없었다. 어느 순간, 손에서 펜을 놓아버렸다.
"죽기 싫어서요."
제이의 말은 갑작스러웠다. 얼핏 들으면 농담처럼 들렸다. 순간 당황해 머뭇거렸다. 적당히 무시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대화의 뉘앙스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순간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눈 앞 에 앉은 제이의 모습은 첫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딱붙은 타이즈, 날카로운 검은 단발, 약간은 헝클어진 뒤쪽 머리카락, 반대로 깔끔하게 정동된 앞머리. 아마 이 만남을 위해 급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아니면, 이것이 평소 그녀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옷차림은 꾸밈이 없었다. 정확히는 꾸미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제이는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이 점에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무도 제이를 맡고 싶어하지 않았고, 특별한 고민 없이 일을 맡겠다고 손을 들었다. 인터뷰를 핑계로 카페에 나가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사실 2만원이라는 추가 수당이 더 끌렸다. 그러나 그녀가 뱉은 말은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죽기 싫어서요."
그 말은 아무렇게나 내뱉은 것 같았지만, 나의 신경을 거슬렀다. 단순한 의도가 담긴 말일 수도 있었지만, 그 말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어떤 말인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이 여자는 이상한 말을 한다. 정겨운 말들이다. 참 많이도 들어왔고, 풀썩 떠오른 작가는 많았다. 천재처럼 굴고, 누군갈 평가하고.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며, 속으론 장사를 한다. 글을 쓴다는 것들은 원래 이렇다. 혐오의 감정이 피어오르는 원숭이들이다. 깨우친 악성들이다. 음흉하고 우울증 환자에 자신을 투영한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장사를 한다고 해야하나. 진짜 미친 것들은 사회에 돌아다닐 수 없다. 적당히 관리되다, 어딘가에 묶여버린다. 천천히 말라 죽고, 잎새 끝이 다 떨어지기 직전에 물을 주며 캐시 카우 노릇을 하고 있다. 좋은 돈벌이다.
"아니에요, 장난 한 번 쳐봣어요."
목소리는 작았고, 웃음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느꼈다.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표면적으로는 가볍게 던진 말 같았지만,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실 어제 너무 죽고 싶었어요. 그런데 손톱을 깎는 걸 까먹었죠. 바로 손톱을 깎고, 이제는 세탁기에 넣어둔 빨래를 까먹었어요. 그렇게 별별 핑계로 죽지 않았죠."
제이의 말은 그 자체로 어딘가 엉성했다.
"사는 약을 놓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러다 먼지 쌓인 노트북 마냥 아무도 써주질 않을 것 같아서요. 정말 죽고 싶을 때면 매듭 묶는 법을 찾아보잖아요. 다른 선택지로 건물 밖으로 떨어지면 피자 도우처럼 퍼져서, 나중에 치우는 사람이 껌칼로 긁어내야 할 테니 귀찮겠죠?"
"아, 네."
난 단답으로 답했다. 그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로 글을 쓴 건가요?"
제이는 잠깐 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너무 이상한 말만 했나요?" 그녀는 잠시 멈칫하며 옷소매 끝을 만지작 거렸다. 눈은 살짝 흔들리는 듯하면서도 집중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네, 충분히 이상한 말이었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불편해하죠."
"오히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글에 담긴 깊이가 어디서 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당히 기계처럼 말씀하시네요.”
제이는 내 말을 듣고선, 한숨을 쉬듯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가요?”
내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걸 깨달았다. 그냥 습관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
“일단 다른 질문으로 넘어갈까요?”
“질문지에 어떤 게 있나요.”
제이가 물었다.
나는 재빨리 손에 쥔 종이를 이리저리 넘겼다. 회사에서 만들어준 질문지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표면적으로 뻔해 보이는 질문들만 눈에 들어왔다. 하나하나 살펴보았지만, 그 안에는 알맹이 없는 말들뿐이었다. '신작에 대한 영감', '작가님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같은 천편일률적인 질문들. 그런 질문을 제이에게 던지는 게 맞는 건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때 문득,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깊은 곳으로 빠지면... 더 어두운 걸 생각하게 돼요."
나는 그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한참 동안 침묵 후 되물었다.
“더 어두운 거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게 어떤 건데요?”
제이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때로는 아주 엉뚱한 것들까지 떠오르죠. 마약을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거요.”
나는 그녀의 말을 흘려듣는 척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이 결국 글로 나오는 건가요?"
제이가 또 웃었다.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어 나는 불편해졌다.
이후의 질답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내 평범한 질문에 제이는 예측불가한 답변을 이어갔다. 가끔 쓸만한 말이 나오긴 했지만, 정말 일부에 불과했다.
집으로 돌아와 녹취를 몇 번이고 정리해 봤다. 이대로라면 내일 마감까지 기사를 퇴고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머리를 굴리는 일을 하니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특히 한 가지 질답에서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럼 제가 가벼운 질문을 해볼게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계속 마약과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들의 종류를 3가지만 말해볼까요?”
이 멍청한 인성검사지 같은 질문에 제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코카인’, ‘필로폰’, ‘마르크스’, ‘체게바라’ 요.”
“왜 4가지죠? 나는 되물었다.
“아, 마지막은 개인적인 팬심으로 그냥 한 번 불러보고 싶었어요. 갑자기 식탁에 놓인 사과를 한입 베어 물고 싶은 것처럼 말이죠.”
녹취를 정리하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인터뷰로 과연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을지, 그리고 제이라는 작가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새벽 2시. 아직도 쓰지 못했다.
나는 제이에게 문자를 한 통 남겼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혹시 내일 오후 2시에 추가 인터뷰 괜찮으실까요?]
잠시 후 문자가 한통 왔다.
[네.]
소설 : leeAjean
사진 : hanbin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