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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FFEE HISTORY Jul 18. 2022

커피의 기원(2) 최초의 커피는 약재로 사용되었다

커피는 분 또는 분춤으로 불리며 약재로 사용되었다


커피의 기원과 시원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만, 그 시기는 모두 제각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에서는 5세기나 9세기라고 하고, 어디에서는 15세기라고 하고, 어디에서는 칼디의 전설을 이야기 합니다.


다양한 문헌과 기록을 토대로 정리해보면 커피의 역사는 최소 6~8세기 경 고대 아라비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커피 열매에 대한 최초의 연구 기록이 9세기 말(서기 900년 이전)에 나온 것임을 감안하면, 커피나무가 그 이전부터 아라비아 남부(예멘 등)에서 자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료를 볼 때 커피의 시원지는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 또는 아비시니아(Abyssinia, 에티오피아의 현재 이름)로 볼 수 있고, 이곳에서 커피 나무가 발견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최초의 커피가 지금처럼 카페에서 마시는 음료로 소비되지는 않았습니다. 커피의 집약적인 재배가 이루어진 것은 15~16세기 이후입니다. 커피하우스(카페)가 만들어진 것도 14세기 말~ 15세기초로 볼 수 있고, 유럽에 커피가 전해지며 커피가 성행한 것도 15세기 이후입니다.

예멘과 에티오피아는 아덴만을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아주 가깝습니다. 그래서 두 지역이 커피의 기원과 보급을 이야기 할 때 함께 거론됩니다. 특히 예멘은 아라비아반도에 속해 이슬람 성전인 메카와 가까워 이슬람권에 커피를 전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멘의 모카항은 서쪽으로 홍해, 남쪽으로 아덴만, 북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접해 유럽 상인과 아라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아라비아 반도 무역의 중심지 였습니다. 따라서 아라비아 반도를 여행오는 여행자와 의학자들에게 커피를 쉽게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초기의 커피는 약재로 쓰였다


초기의 커피는 그 음용법도, 이름도, 목적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초기의 커피는 유희를 즐기기 위한 음료보다는 약재로 쓰였고, 커피 콩 자체를 생으로 먹거나 빻아서 섭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커피', '카베', '카휘' 등이 아닌 '분' 또는 '분춤'으로 불렸습니다.


분(Bunn)과 분춤(Buncheum), 커피 체리와 원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지만 커피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라도 스치듯 한번 보았을 뿐 왠지 낯선 단어이지요.


잘 알려져 있듯이 커피는 커피콩을 까맣게 볶아 물을 넣어 걸러 마시는 음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이후이고, 고대의 커피는 콩 그 자체로 정신을 맑게 하는 각성제와 위장에 좋은 약재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커피의 역사는 아라비아 의학이 융성했던 시기에 시작되어 이와 관련된 많은 초기의 기록 또한 고대 의학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과 연구는 '라제스'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의학을 배우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이 사람이 왜 커피랑 관련이 있지?' 할 만큼 놀라실 만한 위인일 겁니다.

아랍의 히포크라테스라 불리며 현대에도 임상시험과 실험의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라제스(Rhazes, 또는 알-라지, 865?~925?)는 약학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어 200여 권 이상의 책을 쓴 거인으로 불립니다. 라제스는 최초로 정신의학에 대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 정신의학 분야에 선구자이자, 성인과 어린이의 의학 처방을 체계적으로 구분한 최초의 의사이며, 당시 큰 전염병이던 수두와 홍역을 최초로 구분해 연구하였고, 당대에 모든 의술을 총망라한 <의학 보고(Al-Kitab al-Hawai)>라는 저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이 의학보고는 14세기 유럽권에서 가장 널리 쓰인 의서이자 의대 교재로 쓰였으니, 라제스는 분명 현대 의학에서는 빠질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친 의학자이자 철학자입니다.


그런데 이 명망 높은 고대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제스가 자신도 모르게 큰 영향을 미친 분야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커피’ 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가 아닌 ‘커피 나무의 뿌리’와 ‘원두’에 대해 최초로 문헌을 남긴 것인데요.


15세기 프랑스의 커피 상인으로 커피 교역의 왕으로 불렸던 뒤프르(1622~1687)는 커피에 대한 자신의 유명한 논문인 <커피와 차, 초콜릿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Traitez Nouveaux et Curieux du Café, du The, et du Chocolat, 1684)> 등에서 커피 원두 또는 커피 나무 뿌리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이는 라제스이며, 당시 ‘분춤(Buncheum)’이라고 표현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최상품의 원두는 레몬 빛을 나타내 가볍고 좋은 향이 난다. 그러나 희멀겋고 무거운 것은 최하품에 속한다. 원두 자체의 성질에 관해서는, 한쪽에서는 뜨겁고 건조하며, 다른 쪽에서는 차가운 성질을 띈다고 주장한다. 원두는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정화시키며, 습한 기운을 없앤다. 뿐만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 온 몸에서 굉장히 좋은 체취가 난다”
“분춤(커피)의 성질은 뜨겁고 건조하며 위장에 좋다”


15세기 과거 논문에서 현대의 원두의 등급을 결정 짓는 주요한 특성(향, 색상, 무게 등)이 나타나는 것도 흥미롭지만 과거의 커피가 위장약으로 쓰였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저명한 의학자에 의한 커피에 대한 기록은 또 있습니다. 라제스 이후 의학전범과 약제의 처방집을 집필해 아랍의 히포크라테스라고도 불리는 아비센나(또는 이븐 시나 라고도 불림, 980~1037) 역시 커피 원두를 분(Bun, Bunn) 또는 분춤이라 부르며 효능과 용법에 대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비센나의 기록 속 '분' 이라는 약재가 커피라는 주장은 약 700년 후 프랑스의 동양학자 앙투안 갈랑의 저서에 의해 뒷받침 됩니다.




우리에게는 천일야화, 아라비안나이트로 유명한 앙투안 갈랑(1646~1715)은 커피와 관련한 유명한 책인 <커피의 기원과 발전(De l'origine et du progrès du Café, 1699)> 이라는 저서를 남겼습니다. 앙투안 갈랑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아랍어 등에 능해 커피하우스 문화가 발달했던 콘스탄티노플 대사 비서로도 근무했고, 천일야화를 번역해 간행하기 이전에는 프랑스 동인도회사에 의해 중동으로 파견되어 아랍, 터키, 페르시아 문화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지역이 모두 커피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커피와 깊은 관계가 있는 만큼 커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 <커피의 기원과 발전> 이라는 저서도 쓰게 됐겠지요.


갈랑에 따르면 고대 아라비아인들은 커피 콩과 나무를 ‘분(Bunn)’ 이라고 불렀고, 그 콩으로 만든 음료(커피)를 ‘분춤’이라고 불렀다며 아비센나가 커피를 '분'으로 설명한 내용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설탕, 차, 초콜릿처럼 커피의 발견에도 고대 의학자들이 기여했다고 설명합니다.


 유럽인으로서는 독일의 의사이자 식물학자였던 레온하르트 라우볼프(Rauwolff, 1535~1596)가 '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남깁니다. 라우볼프는 1573년 다양한 약초와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 떠난 여행 중 오스만제국의 알레포(현재의 시리아 할라브 지역)에서 커피를 처음 접한 후 오스만투르크인들의 커피 제조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커피는 잉크처럼 검은 음료로 다양한 병, 특히 위에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 이것의 섭취자들은 아침에 돌려쓰는 도자기 잔에 음료를 따라 한 잔씩 마신다. 이것은 물과 분누라는 관목에서 나는 열매로 만들어 진다


1500년대에도 아침에 모닝커피를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죠?

또 원두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까 그 물에 분누라는 열매를 담근다. 분누는 크기, 형태, 빛깔이 두 층의 얇은 껍질에 싸여 있는 월계수 열매와 흡사하다. 현지인들은 이 열매가 인도제국(인도, 인도차이나, 동인도제도)에서 전래됐다고 한다. 그런데 분누의 속을 보면 황색 빛을 띤 낟알이 두 부분으로 갈라져 있고, 효능과 형태, 명칭이 아비센나가 설명한 분춤이나 라시드 아드 알만즈가 설명한 분카와 일치하기 때문에 분누와 분춤이 동일한 열매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고대 아라비아 시절 이후부터 커피 원두(coffee bean)가 분누(bunnu)와 분춤(buncheum), 분카(bunka)로 불렸고, 원두의 형태에 대한 설명 또한 지금과 비슷하다는 것이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1600년대에는 원두의 특성이 보다 자세히 연구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내용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1695년 에드워드 포코크(Edward Pocoke) 박사가 펴낸 <아라비아 의학자가 밝힌 카우히(Kauhi) 음료 혹은 커피와 그 열매의 특성>에는 원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은 예멘에서 자라는 식물로 유대력으로 12월(태양력 2~3월)에 씨를 뿌리고 5월(7~8월) 경에 수확한다. 키는 1 cubit(45~56cm)정도 되고, 줄기의 두께는 엄지손가락만 하다. 흰색 꽃이 지면 작은 땅콩처럼 생긴 열매가 달리는데, 간혹 그 크기가 여느 콩처럼 클 때도 있다. 껍질을 벗기고 속을 보면 두 부분으로 갈라져 있다. 무게감이 있고 황색을 띄는 것이 최상품에 속한다. 1급 열매는 성질이 뜨겁고 2급은 건조하다고 알려져 있다. ‘분’은 차갑고 건조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분’은 쓴맛을 지니고 있는데, 쓴맛이 나는 것은 무엇이든 뜨겁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공을 거친 ‘분’은 뜨겁지만, 본래 그 자체는 차가울 수도 있다. ‘분’은 여름철 콧물과 가래 섞인 기침을 진정시킨다. 또한 폐색증 치료와 이뇨 작용에도 도움이 된다. 이 열매는 지금은 ‘분’이 아닌 ‘코와(kohwah)’라고 불리는데, 말린 열매를 완전히 끓인 것은 지혈에 효과적이고, 염증과 홍역, 피고름 완화에 좋다. 그러나 어지러운 두통을 잃으키고, 체중을 감소시키며, 각성 효과를 일으키는 부작용 또한 있다. 또한 욕구를 감소시키거나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원기를 회복하고 게으름을 쫓기 위해, 또한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코와를 마신다. 코와를 마실 때는 육즙이 풍부한 고기나 피스타치오 열매, 버터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간혹 우유를 타 마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방식이다. 코와가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나무의 재배, 수확 시기와 원두의 모습과 특성, 품질에 대한 연구가 발전해 자세히 기록하기도 했지만, 커피가 ‘분’에서 1600년대에는 ‘코와’로 불렸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또한 커피를 그 자체로 약 또는 약재로서 콧물, 기침, 가래, 폐색증 치료, 이뇨 작용, 염증, 홍역, 지혈, 고름 치료, 원기 회복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에 대해서는 지방이 있는 느끼한 음식(버터, 고기, 우유 등)과 함께 마셨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커피가 쓴 맛이기 때문에 커피의 쓴맛과 음식의 느끼한 맛을 잡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커피가 일찍이 약재로 인식되어 본초학 분야에서 다뤄진 것은 의학자들이 기운을 북돋아 주는 커피를 약처럼 생각한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수가 빚어낸 커피에 대한 의학자들의 노력과 연구가 커피를 확산시키고 지금의 대중 음료로 만든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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