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출판해야 하는가,의 한계선

내가 넘어서야 하는 질문 첫 단추

by 포텐슈

아마 이 글을 읽는 분 대다수는 이 질문의 단계를 이미 넘어섰을 것이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그 분야는 나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북메이킹 클럽 3기에 참여한 첫날부터, 수업이 진행되는 몇 주간, 이 질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왜 출판을 해야 하는가?’






‘북 메이킹(book making)’이라는 말에 꽂혀서 덜컥 시작한 책 만들기


그때 내가 본 광고물에 북메이킹 아니라 독립출판이라고 쓰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책방 매니저의 진입장벽 낮은 네이밍에 감사를 드린다. 이 클래스를 듣지 않았어도 엉성하게라도 내 이야기를 묶긴 했을 것이다.

그 광고물을 보기 몇 주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으로 묶어야겠다.’ 그때는, 기성 출판 단행본의 형태를 생각한 게 아니었다. 제본소에서 묶듯이 나의 이야기를 하나의 형태로 좀 묶어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좋아하는 책방에서 북 메이킹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혼자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예상했던 기간보다 늘어지는 게 보통이다. 어차피 할 마음이 들었다면 일사천리로 해버리자! 는 마음으로 서울로 갔다.


내가 책을 묶고 싶었던 이유는, 그동안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해왔고, 어떤 추세선을 그려내고 있고, 앞으로의 나는 어떤 길을 걷게 될지를 나의 흔적에서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을 썼던 내가 아니라 한 발짝 거리감을 두고서, 모아둔 글에서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 굵직한 추세선을 발견하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경제학에서도 소비자의 드러난 결정에서 선호를 추적하는 ‘현시 선호’라는 개념이 있다. 역추적이다. 나도 내가 발산한 글과 그림에서 내 선호를 알아내려 한다.

내가 어떤 변화의 순간을 보냈는지 기록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흩어진 글들을 모아두지 않으면, 내가 10년, 20년이 지나서 알아볼 수 있을까. 저 그림을 그릴 때, 저 글을 쓸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바라본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변곡점을 그려왔는가
그때 쓴 글과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나는 좀 나아졌을까


단지, 나는 나를 확인하고 싶었다. 빅 히스토리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처럼 나의 삶에서도 패턴을 찾아보고, 나를 조금 분석해보고 싶기도 했다.


목적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일. 내 글과 그림에서 큼직한 추세를 찾는 일이 더 우선이었다. 사실, 이것을 먼저 해결한 뒤에 책을 써야 맞을지도 모른다. 내 순서가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을 만들면서 지금껏 알지 못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지금이나 그때나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도, 써온 글과 그림이 있다면 그 속에서 자신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찾는 일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만들기에 치중한다. making


나를 포함해 총 10명으로 시작된 이 클래스에서,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책을 출판한다는 데에 기대가 한껏 들어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책을 내고 싶었다는 10대 친구부터 60대의 교수님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우리 클래스는,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까지 차곡차곡 쌓여진 팀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소외감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곳, 낯선 곳. 다르고 낯설다고 생각하면서 여기에 앉아 있는 나는 뭘까. 출판하기 싫은 마음에서 질문은 다음으로 번진다.

나를 제외한 저들은 저리도 출판을 하고 싶어 하나.


내가 지금 찾은 답으로는,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은 말이 있어서가 아닐까 정도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출판을 하고 싶지 않은가. 그건 세상에 대고 소리칠 용기가 없어서다. 그리고 그때는 나는 아직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몰랐으니까. 물론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다. 딱 떨어지는 하나의 문장이 없었다. 나도 그걸 알아보기 위해 이 클래스에 참여한 게 아닌가. 클래스가 진행되는 8주간, 내가 써온 글과 그림을 되돌아보고 엮으면서 큰 맥락을 잡아보자는 게 가장 큰 목표니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어쩌면 출판보다 더 큰 과제니까.




정리해보면 이렇다. 내가 책을 만드는 이유는,


1. 그동안 써온 글과 그림을 묶어놓고 싶다


써온 글과 그려온 그림을 책으로 묶으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 때문에 고민했는지 세세하게 남기고 싶다.

그러는 동안 내가 모르던 깊은 나와 더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들을 솎아내고,

조금 정돈된 나에 대한 정리를 하고 싶었다. 묶어놓고 보면 큰 맥락이라는 게 보이기 마련이니까. 제1의 목표.


2. 오늘을 미화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책은, 추후에 미화될 20대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을 할 게 뻔한 노인의 나에게, 미래의 30, 40대의 나에게 이 때는 이런 마음이었다고 알리는 메시지였고, 그때는 네게 큰일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또 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에 이 기록을 보면서, 이 때도 그랬듯이 너는 문제를 또 잘 다룰 것이다, 그렇게 헤쳐나갈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목적이 컸다.





한계선


그러니 내 실수와 속마음을 잘 다듬어서, 좋은 부분만 책에 골라 넣을 수 없다. 절대로! 솔직하게 쓰면 내놓을 수 없으니, 그러니 출판을 할 수 없다.

출판을 하려면, 나를 희석해야 하고 나를 위한 책 한 권만 만든다면 나를 온전히 담을 수 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로 하고, 선생님께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저는 출판을 하지 않고, 책만 만들겠습니다. 제 책장에 꽂아둘 단 한 권의 책을요." 그 후로 나는 그 클래스에서 유일하게 출판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도 저도 아닌 시절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 제1의 목표, 초심이 무엇인가. 솔직하게 나와 직면하는 일을 하고 싶은 거고, 출판을 해야 해서 내게 가면을 씌워야 한다면 출판을 포기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은 결정이다. 후련해졌다.


명료하게 보이지만 고민을 하긴 했다. 책을 2권으로 나눠서 만들까, 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정제된 글만 담긴 출판용 책과 내 책장에 꽂아둘 생생한 기록용 책. 그런데 그렇게 2권의 책에 에너지를 분산하기란 쉽지가 않다. 2권을 만들면 어떨지 생각은 들었어도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다른 분들이 쑥쑥 진도를 뺄 동안, 나는 마무리 지었다고 여겼던, 이 문제의 답을 찾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무의식 중에 출판 문제가 떠오르곤 했다. 그때는 집 근처 도매 문구점에 자주 방문했는데, 그 길을 걷다가 답이 찾아왔다.


내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1명에게만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내가 내 경험을 내보임으로써 이걸로 누군가가 힘을 얻는다면 출판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내보이는 일은 두렵다. 그래도 내가 그은 한계선에서 나는 한 걸음 삐죽 나오게 되는 게 아닐까. 나만이 가지기보다 세상에 내보임으로써 나는 또 하나의 한계선을 넘는다. 나는 출판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낚싯대에 걸어 물에 띄운다. 물리적으로 닿을 수 없는 원거리에 있는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는 연결고리 하나를 얻게 된다. 이 책은 자유롭게 항해를 시작할 테고 나는 그렇게 내 장단에 맞는 친구와 연결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 책은, 그러니까 그 10명 중에, 나는 내가 참 많이 드러나는 글을 썼다. 교육은 이래야 한다,를 주장하는 글에서는 나는 좀 숨을 수 있고, 과학을 소개하는 설명글에서는 더 완벽하게 숨어들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쓰고 싶었기에, 그래야 나를 떠나보낼 수 있었기에, 나의 좋은 점만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아니라, 직면하는 방법으로서 책을 묶기로 했기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글을 내보내기에는 그만큼의 앓이가 필요했다는 게 지금의 회고다.




이제 책을 만드는 이유에 출판하는 이유를 추가한다.


내가 책을 출판하는 이유


1. 한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너라도 나라는 디딤돌을 밟아라.

2. 내게 그어진 한계선을 넘기 위해

3. 내 장단에 맞는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논어 옹여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중도에 그만두는 사람은 스스로 획, 한계선을 그어버리는 것이다.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염구왈, 비불열자지도 역부족야

子曰,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자왈,역부족자 중도이폐 금여획

염구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제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가 말한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중도에 포기를 하고, 이제 너는 스스로 선(획)을 긋는 것이다.


박노해의 시다.

<한계선>

옳은 일을 하다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





내가 생각한 한계선을 뛰어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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