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퇴고할 때는 늘 소리 내어 읽는다. 내 목소리, 어조가 닮겼는지는 내가 직접 말로 해보면 된다. 처음엔 일단 생각을 하면서 곧바로 글로 옮긴다. 하나의 글이 완성되었을 때는 직접 읽어보면서 매끄럽게 다듬는다. 하나의 글일 때는 매끄럽다가도, 그 글들을 모아 한 챕터가 되면 또 우둘투둘하다. 그것 역시 다시 또 읽으면서 수정한다. 그렇게 모인 글들이 여러 장으로 구성된 한 권의 원고로 나오고 나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읽으면서 수정한다.
인디자인으로 편집할 때도, 그림과의 배치를 고려해서 또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수정한다.
내 책은 약 300페이지 가까이 된다. 샘플 인쇄는 6번 진행했다. 화면으로 볼 때와 단행본으로 나온 책을 손에 쥐고 읽는 경험은 또 다르다. 샘플 인쇄한 단행본을 가지고 다시 첫 페이지부터 소리 내어 읽는다.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는 처음부터 단숨에, 하루 안에 다 읽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물 흐르듯 문장이 진행되어야 한다. 단번에 불협화음을 내는 구간에서 불편함을 느낄 테니까. 내 목소리로 막힘없이 읽어진다면 그 책은 나와 닮은 책이다.
시원시원한 10포인트
초반에는 업계 스탠다드라는 기준을 알면 좋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의 취향이 드러나고, 이를 따라가게 되므로 스탠다드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진다. 요즘 독립출판에서는 9pt의 작은 글자 크기를 선호한다지만, 나는 나를 닮은 친구들이 작으면 나의 미니미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시원시원한 10pt가 나를 닮았다. 우렁찬 내 목소리를 닮았다.
그림을 넣을래요
책에는 글과 함께 내가 그린 그림도 실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 기획했는데, 후반부에 견적을 내보고 나서는 조금 고민을 했다. 일단, 컬러 인쇄와 흑백 인쇄의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 독립출판의 경우, 소량 제작하기 때문에 더 격차가 크다. 선생님은 가격 고민을 하고 있는 내게, 그림을 빼도 글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실려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아니면 그림을 흑백으로 인쇄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도 주셨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그건 나를 닮지 않았다.
흑백의 그림을 담은 책이거나 글만 존재하는 책이라면,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책이 나를 꼭 닮은 분신이어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와 고민을 담은 만큼, 나 대신 세상을 주유하고 돌아다닐 친구니까. 그런데 그렇게 원가절감을 하겠다고 흑백의 그림을 싣거나 그림을 뺀 책을 내놓고 나면, 내 자식이 아닌 양 거리감이 들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릴 때, 조합하는 색 또한 나다. 그 색을 지워내고 흑과 백으로 재탄생하면 그건 또 내가 아닌 느낌이다. 그 그림의 스케치뿐만 아니라 색 조합까지 포함해 나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더더욱 그림을 아예 뺄 수도 없다.
나는 보통 그림을 먼저 그린 다음에 글을 써왔다. 떠다니는 생각을 일단 그림에 잡아둔 뒤에, 글로 구체화한다. 게다가 나는 그때, 글로 빼곡한 책은 너무나 진지해서 나와는 닮지 않았다고 강하게 여겼다. 그래서 고민 끝에, 사실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내가 감당할 시간을 좀 벌었던 게 아닌가 싶지만, 최종적으로 전면 컬러 인쇄로 결정했다.
혹시 고민을 하고 계시다면, 자신을 닮은 책을 만드는데 큰 가중치를 두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표지 디자인,
손글씨와 손그림
책에서 책 표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책 표지를 보고 첫 장을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책 본문이 읽힐 테니까 말이다. 우리네 눈꺼풀처럼, 그 표지 한 장이 그만큼 무겁다.
기성 출판의 표지는 한눈에 봐도 깔끔하고 예쁘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고급 디자인 기술이 없다. 그럴 땐, 나답게 만들자고 결심한다. 샘플 인쇄를 할 때는 폰트를 사용하기도 하고, 손글씨를 넣기도 했다. 샘플 인쇄의 경우는 표지를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기보다는 금요일 데드라인에 맞춰서 본문을 넘기기 전에, 표지는 만들어야 하니까 후다닥 그려서 넘긴 경우가 태반이다.
일단 손글씨를 사용하게 된 건, 나를 닮은 폰트를 찾지 못해서다. 궁서체도 내가 아니고, 고딕 체도 내가 아니다. 산돌광수도, 직지 고딕도. 그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글씨체는 본인의 손글씨가 아닐까. 이미 존재하는 제품 중에서 딱 떨어지는 상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직접 만들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글씨체 스타일 중에서 단단해 보이는 글씨체로 직접 썼다.
물론 책 표지 디자인도, 손그림이다.
내가 그린 나
내가 그린 나. 표지 그림으로 선정된 건 아니지만, 나를 닮은 이 친구가 내 대신 표지에서 다른 모습으로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