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율 레이아웃 찾기

끝없어 보이는 디벨롭의 여정

by 포텐슈

심플이 어렵습니다

북메이킹은 원고가 전부인 줄 알았다. PPT 만들듯 흰 바탕에 맑은 고딕 몇 자 붙이면 되는 줄 알았다. 블로그에 글 올리듯 글과 사진만 배치하면 되는 줄 알았다. 클래스 동기들이 인디자인이라는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걱정에 빠져있을 때도, 나는 호기로웠다. 화려하게 잘 만들 생각이 없었다. 기본에 충실한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 생각은 이랬다.

딱 apple 키노트처럼 심플하게만 만들 거야.

그 이상의 불필요한 노력은 하지 말아야지. 그렇다고 들인 시간에 비례해서 성과가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리에 앉으면 금세 바깥은 어둑해졌다. 한 번 하기로 한 건, 최선을 다하는 내 기질도 있었다. 그런데 일단, 심플하게 만드는 일이, 심플하지는 않다. 과정은 전혀 심플하지 않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블로그나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는 관리자가 미리 글쓰기 좋은 환경을 구축해둔 것이었다. 글만 넣으면, 미리 설정된 보기 좋은 자간과 행간 값으로 출력이 된다. 하지만 독립출판을 하려거든, 그 보기 좋은 자간과 행간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 레이아웃이라는 건, 내가 판형을 바꿀 때마다 그 판형에 맞게 또 바뀐다. 보기 좋은 자간과 행간 수치 찾기, 처절하게 갈등하고 귀찮음을 버텨내야 했던 시기였다.


책 뒤에 사람이 있다. 책 뒤에 에디터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일을 반복하면서 얻은 매뉴얼이나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비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없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과감히 뛰어드는 이유는 그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 패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다행이었다. 출판이 이렇게 진행되는지 전혀 몰랐기에, 이걸 하겠다고 뛰어든 패기 덕에 하고 있다.




이걸 왜 해야 하나

글을 쓰고 다듬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참 행복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더 무의식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 있어 보였다. 그에 비해 편집, 특히 레이아웃 설정은 마치 의미 없어 보이는 노동 같았다. 편집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을 다루는 일은 쉽다. 도구 사용도 간단하다. 레이아웃을 완성하고 나서는, 피피티를 만들듯 보기 좋게 깔끔하게 만들기만 하면 돼서 그 과정도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다만, 반복의 반복. 수정의 수정을 거치면서 이 책에 어울리는 레이아웃 설정하는 과정만큼은 힘들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다. 글만 써서 넘긴 다음, 누군가 대신 편집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판형마다 보기 좋은 레이아웃, 에디터를 만들어주는 알고리즘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완성하는 것에 9, 편집에는 1의 힘을 주려고 했는데 레이아웃 구성하는 데에만 며칠을 소요했다. 힘을 빼고 만들기는커녕 바짝 매달렸다. 결과적으로 9대 1의 힘 배치는 어수룩한 목표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며칠 하다가 내가 찾은 답은, 보여주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프레젠테이션이다. 내가 쓴 글과 그림을 깔끔하게 피티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이 본인이 의도한 대로 가장 잘 배치할 수 있다! 상하좌우 여백을 색다르게 조합해서 좀 더 시원시원하게 환기시킬 수도 있고 그야말로 디자인이다.


'독자가 이 페이지를 펼쳤을 때, 여운은 이 정도 남았으면 좋겠고 여기서는 이런 경험이 펼쳐졌으면 좋겠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편집자의 고뇌가 담긴다.



※ 대강의 순서

1. 판형 설정
2. 레이아웃 설정(상하좌우 여백, 폰트 크기, 자간 및 행간 설정 등)
3. 인디자인을 사용한 공간배치
4. develop*****무한루프



판형 설정

판형은 세 번 바꾸어 B6(127*188) 사이즈에 정착했다. 어떤 크기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우선 책방에 가서 손이 가는 책을 골라보면 된다. 신기하게도 고르다 보면 비슷한 판형만 손에 들려있다. 그게 바로 본인의 판형이다.


※ 마음에 드는 책의 판형을 쉽게 알 수 있다. 인터넷에 책을 검색해서 책 소개란에 쓰여 있는 정보를 얻으면 된다. 예를 들어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검색해보자.

'종의 기원'의 판형




※ 내 판형 변천과정

1차; 200*140mm

2차: 200*132mm

최종: 127*188mm(B6)


처음에는 그림이 같이 실릴 것을 고려해서 조금 시원시원한 사이즈를 골랐다. 200*140 사이즈 크기가 가로세로 비율도 딱 좋다고 생각했는데, 텍스트를 얹으니 듬성듬성 퍼져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레이아웃, 자간 등을 조정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다 책방을 다녀온 뒤에, 내가 보기 편하다고 생각한 책들을 모아놓고 가로세로 비율을 구했는데, 그 평균값이 0.658이었다. 이에 비해 1차 판형의 비율 값은 0.70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판형을 200*132로 수정했다. 0.66의 비율에 맞게.


그런데 독립출판은 소량 인쇄고, 나는 전면을 양면 8도 컬러 인쇄를 하고 싶어서 계산해보니 규격 판형이 아닐수록 값이 비쌌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판형을 줄였다.





레이아웃,

develop 이라는 그만 듣고 싶은 말.

레이아웃은 상하좌우 여백, 본문 글자 크기, 자간과 행간 등이다. 이 틀이 완성되면, 블로그에 글을 쓰듯 원고를 붙여 넣기 하면 된다. 대신 블로그는 한 페이지가 스크롤을 내리는 만큼 세로로 길게 이어지지만, 책이라는 매체는 이 장을 채우면 옆장으로 옮겨서 서술해야 한다. 다음 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위해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 챕터의 페이지를 왼쪽 장에서 시작하고 싶은데, 앞 글의 마지막 장이 왼쪽 페이지에서 끝이 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재배치. Develop 뿐이다.

샘플 인쇄를 해봤더니 책 두께가 두꺼워져서 안쪽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답은 레이아웃 수정. Develop 뿐이다. 인쇄해보니 책이 작고 가독성이 떨어져서 판형을 변경하고 싶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레이아웃 수정을 한다. 또 develop.


이 고충을 선생님께 토로하면 답은 역시 develop 뿐이라 하시고, 다음 주에 더 develop을 해서 오라고 하신다. 그 단어가 그만 듣고 싶어 질 만큼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DEVELOP: 여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본문 글자 크기는 몇으로 할 것이며, 또 제목 글자 크기는 어떠할 것이고, 본문의 자간과 행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보기 편하고 가독성이 좋을지를 계속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시행착오의 과정


힘든 과정에 비해 너무 간단히 표현돼서 서럽기만 하다.




샘플 인쇄를 합니다

앞서 책 판형을 골랐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기준이 없으니 또다시 기존의 책들을 들여다본다. 내가 보기 편한 책들을 모아서, 상하좌우 여백을 자로 잰다. 일반적인 책들이 한 페이지에 몇 줄을 담는지 세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일반적인 기준이라는 게 있진 않을까.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기준을 선뜻 알려주진 않았다.


경험을 가진 거인의 어깨에 기댈 수 없어서 나는 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해보는 방법. 해보고 수정하는 develop. 샘플 인쇄다. 그래서 6번을 인쇄했고, 집에서는 간단히 프린터로 출력해서 비교했다.


최종 인쇄를 하기 전에 샘플 인쇄를 꼭 해봐야 한다. 모니터 상에서 본 것과 늘 생뚱맞게 인쇄되기 때문인데, 화면에선 분명히 샤프하고 가독성도 좋았는데 인쇄를 하고 나면 자간이 숭숭 비어있고, 10.5pt와 10.25pt, 10pt, 9pt의 글자크기는 볼 때마다 달라 보이는 식이다.


여러 버전의 레이아웃으로 글을 실은 샘플 인쇄본을 가지고서 주변인들에게 물었다. 어떤 페이지에서 개안의 느낌이 오는지. 눈이 환해지고 읽기 편해지는지.


그리고 샘플 인쇄를 하면서, 본문 내지에 사용할 종이를 테스트해본다. 그림이 들어가기 때문에, 색상이 잘 나오는지, 뒷장에 비치지는 않는지, 종이의 무게가 80g과 100g 중에 어느 쪽이 넘김이 좋은가도 테스트했다. 총 페이지수가 276페이지에 달하기 때문에, 내지를 80g으로 하느냐 100g으로 하느냐에 따라 책 두께가 달라진다. 책이 두꺼워질수록 안쪽 여백을 넓게 설정해야 하고, 그에 따라 레이아웃은 또 변한다. 질감은 100g이 만족스러웠지만, 책의 두께와 무게를 줄이기 위해 80g을 선택했다. 휴대하기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나도 그리고 주변 사람도 보기 좋다고 한 레이아웃을 발견했다! 종이 속에 글이 폭 파묻혀 용지와 일체된 느낌을 든다. 이제 편집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2019년 3월 28일

드디어 최종본 PDF를 인쇄소에 송부했다.

안쪽 여백: 28mm
글자 크기: 10pt
판형: 127*188mm




지금 당신 손에 들려있는 한 제품은, 수많은 디벨롭 develop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고귀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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