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글을 모아야 한다. 그동안 쓴 글은 에버노트, 네이버 블로그, 아이패드 등 여기저기 산재해있었다. 그림은 갤럭시 노트나 아이패드로 그리는데 대부분 한 폴더에 잘 모아뒀다.
키워드로 분류
각 글의 제목을 큐카드에 하나씩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해시태그를 달아서 각 글의 키워드나 큰 생각들을 적었다. 그다음 키워드 별로 분류해서 넘버(애플의 엑셀)로 정리했다. 단상들로 가득했고, 어쩌다 묵직하게 완성된 글도 있었다.
글의 방향 동기화
어떻게 글의 방향을 진행할지 과정을 기록할 노트도 한 권 마련했다. 시각적으로 표현해내야 정리가 되는지라 문짝 뒤에포스트잇으로 목차를 수형도처럼 붙여뒀다. 목차 구성이 변경될 때마다 포스트잇을 떼서 옮긴다.문짝 동기화.
훈장님 같은 초안
초안은 몇 가지 글을 추려서 모은 뒤, 목차대로 순서 편집을 한 정도였다. 초반에는 책의 방향을 십계명으로 잡았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내게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행동지침. 길을 잃었을 때 유념하기로 다짐한 것들을 모았다. 그런데 나에게 하는 말인데도,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 뭐라도 깨달은 거 마냥 ‘-해야 한다’는 should 화법을 구사하는 글들에 지쳐갔다. 그래서 훈장님 마냥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방향을 틀어 나의 이야기를 더 꺼내기로 했다.
처음 글을 수집할 때, 건드리지 못한 글들이 있었다. 그 글들을 들여다보기로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의 나보다 더 고민이 많았던 그래서 착잡하던 시기의 글을 읽으면 내가 다시 물들어버리진 않을까. 책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 자체로 한계선을 넘어, 세상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고 자부했는데 가라앉는 글을 읽다 가라앉아버릴까 걱정됐다.
생각하던 걱정대로 난 가라앉지 않았고, 글의 방향을 수정한다. 내가 써나갈 글은, 단상 모음집도 아니고, 십계명도 아니다. 과정이 드러나는 글쓰기를 하자. 더 드러내자.
과정이 드러나는 이야기
힘들었을 때, 고민의 시기를 견뎌내고 성공한 사람들의 글을 자주 찾아 읽었다. 그 사람들이 성공한 현재의 이야기보다, 두려움을 벗겨내고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더 중점적으로 봤다. 어떤 고민과 질문을 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내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지 힌트를 얻고 싶었는데 딱 맞는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스토리 책은, 과거는 미화되고 그때의 걱정들은 작게 여겨져서, 글의 비중이 현재의 당찬 모습 묘사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그래프로 치면 1차 함수나 2차 함수의 상승곡선 추세. 그런데 나는 온도에 따른 물의 상태변화 그래프의 평평한 구간처럼, 녹는점 하에서 물과 얼음이 공존하는 순간에 관심이 많았다. 이 구간을 이 그래프처럼 한 발로 꾹꾹 눌러 담는 글은 없을까.
독립서점에서 모범생이었던 사람이 퇴사한 책, 세계로 여정을 떠난 이야기도 만났지만, 나와 꼭 맞는 상황은 아니었다.
분명, 이 책을 집어 드는 사람 또한 성공의 궤를 걷고 있는 사람보다 고민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실패담, 경험담 그리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더 의미 있다고 여겼다.
공부쟁이로서 드는 고민, 앞서 나갔기에 계속 앞서 나가야 해서 궤도를 벗어나기 두려운 친구들에게 내 경험이 힌트가 되도록. 책상에서 벗어나 운동도 해보고, 안 해본 것들을 하며 공간을 넓혔으면 하는 마음. 내가 했던 시도들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책의 구성을 바꿨다. 경험 중심으로 서술하고, 인용이나 주석은 최대한 줄였다.
비교, 상처 주지 않는 글쓰기
책을 출판하기로 마음을 정한 뒤로, 보는 눈이 신경 쓰였다. 갑자기 내 글과 저글을 비교했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주의할 점은 뭘까, 고민이 되어 글쓰기 책을 한 권 찾아봤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글을 인용하는데, 그가 만화를 그릴 때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을 소개한다.
전쟁이나 재해의 희생자를 놀리는 것. 특정 직업을 깔보는 것. 민족이나 국민 그리고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것.
이 글을 읽고, 나는 내 글로 상처 받는 사람이 없도록 다시 또 글을 단속했다.
그리고 내가 현재의 능력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바라는 마음, 그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고통받는 반복적인 패턴의 순환고리를 끊어내기로 다짐한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내 시점은 어디에
고민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왔다. 과거의 시점에서 날 것의 기록을 엮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정리를 할 것인가. 어떤 것이 내게 의미가 있을까.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북 메이킹이라는 말에서 답을 찾았다. 과거의 글을 있는 그대로 내보내는 건 지금 내가 책을 만들겠다고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힘들더라도 전부 새로 써서, 현재의 시점(2019년 3월)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1장에는 나를 분석하는 글을 담고, 2장에는 공간 넓히기를 위한 여러 시도를 담았다. 3장과 4장은 그 이후로 주변과 주어진 삶에 새로운 눈을 갖게 된 현재의 이야기를 넣었다.
압축, 덜어내기
그 뒤로는 계속해서 압축하는 작업을 했다. 반복되는 이야기는 솎아내고, 긴 글로 공간만 차지하는 글들은 한 문단으로만 정리해서 다른 글의 예로 넣었다. 어떻게 하면 더 압축해서 입체적인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책이 입체적이려면 소스가 많아야 함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과거의 순간을 어떻게 상세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순간순간 에버노트에 기록해둔 짧은 단상들 덕에 그 시기를 책 속에서 살려낼 수 있었다.
책 속의 나는 19년 봄에 멈춰져 있다. 세상이 변하듯 나도 그 뒤로 계속 변한다. 원고를 마무리할 무렵의 고민은, '이대로 끝맺어도 되나?'였다. 이 때는 맞다고 생각한 것들이 여전히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훗날 부끄럽진 않을까.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 완성시켜도 되나. 그에 대한 답은 현재 진행형으로 풀어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장편 시리즈 100권의 1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이니, 2권으로 이어가면 된다. 새 글은 새 동이에 담겠다. 지금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