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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an 07. 2021

너와 보냈던 평범했던 하루가 그리운 날

일상의 흔적 124

1월 3일, 눈 쌓인 제주 그 겨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그렇듯'이 당연하지 않다는 건.

제주도 곳곳에 눈이 쌓였다. 갑자기 내린 폭설에 우왕좌왕하던 날이 고작 며칠 전인데 오늘 보는 눈은 그저 반갑다. 겨울을 알리는 것 같아서, 소복소복 땅을 덮고 있는 하얀 눈을 발로 지그시 밟아 본다. 사박사박 눈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돌담을 따라 조금 걸었다.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발밑에 하얀 눈, 공허할 만큼 조용한 길 위에서 생각에 잠겼다. 아무도 없지만 혹시나 해서 얼굴에 꽉 눌러쓴 마스크 사이로 차가운 겨울 공기가 스며든다.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보니 하얗고 깨끗했던 길에 가지런히 발자국이 찍혔다. 괜스레 발자국을 발로 쓱쓱 밀어 지워본다. 하얀 세상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아 공허함이 마음을 채우려고 할 때, 억새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돌담, 하얗게 쌓인 눈, 제주의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모습에 문득 친구가 보고 싶었다. 감성적인 그 친구는 이런 풍경을 참 좋아한다.


친구와는 만남 그 자체가 좋다. 매일 만나도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지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땐 어떻게 하루 종일 붙어서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시간이 당연했으니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코로나 19라는 큰 벽을 앞에 두고 이젠 그런 순간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안다. 평범해서 특별했었던 그날들, 돌이켜보니 우린 '친구'라서 그 모든 순간들이 가능했다.


우린 만나면 시답지 않은, 별거 아닌 이야기로도 하루 종일이 즐거웠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어떤 얘기든 하고 싶었다. 바보 같은 말이 나와도 시시하고 어이없는 농담에도 우린 서로에게 아낌없이 미소를 보냈다. 진짜 그 얘기가 재밌었다기 보단 친구와 보내는 시간 자체가 즐거웠으니까. 유치한 농담을 던지고 먼저 헤헤 웃고는 했다. 그래서 우린 종종 서로가 웃는 모습에 다시 웃음이 터지곤 했다.


어떠한 이야기도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과 얘기하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어떤 바보 같은 말을 해도, 때론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드는 어둠을 이야기해도, 서러움 가득한 징징거림도, 친구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시도한 시시한 농담도. 모든 순간 반짝이는 눈동자로 날 봐주고 '그렇구나, 그랬구나'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


그 친구와 보냈던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하루가 그리웠다. 언젠가 다시 그날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낼 날이 올 테고 그때의 나와 친구도 변함은 없겠지만, 당장은 이룰 수 없는 조금은 먼 미래 같다. 그립지만 초조하거나 불안하진 않다. 언제나 그렇듯 우린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쿵하면 짝할테니까. 우린 서로의 삶에 이미 스며들어 진한 자국을 남겨두었으니까.


언젠가 지인이 내가 말하는 '친구'에 대한 정의를 물었었다.

"특별한 일 없이도 연락하고, 시시하고 어이없는 농담도 거리낌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전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불러요. 이것말고는 어떤 조건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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