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2023년 4월 22일. 오후
드높게 치솟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국제공항 명성에 어울리는 높고 화려한 천장이다. 천장 아래에서는 여행으로 들뜬 마음으로 가볍게 지갑을 열 수 있는 이들이 면세점을 바삐 오가고 있었다. 아마 그들 중 누구도 내가 보고 있는 화려한 천장을, 천장 넘어 보이는 하늘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공항 라운지에서 남편은 부산스럽게 이런저런 샐러드와 음료를 챙겨 내 앞에 세팅하기 시작했다.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입에 무언가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빵과 음료를 조금씩 입에 넣었다.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 탓에 음식 부스러기들이 가슴과 배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언젠가부터 이렇게 45도 각도로 비스듬한 어딘가를 바라보는 게 익숙해졌다. 침실 창문 밖에서 흔들리는 나무들을, 병원 하얀 벽과 언제 생겨났는지 모를 얼룩덜룩한 자국들을, 차밖으로 보이는 박제된 듯한 먼 구름들을 보는, 그런 지루한 시야. 나는 이스탄불 국제공항 라운지, 앉기에도 눕기에도 불편한 의자에 최대한 깊게 몸을 뉘이고 조만간 탑승할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뱃속엔 막 20주를 넘긴 네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다. 임신 5개월. 나는 아직 한껏 부르다기엔 이른 것 같은, 조금은 어정쩡하게 불러온 내 배를 의식적으로 쓰다듬으며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었다.
이스탄불 공항까지 가는 내내 나와 남편은 말이 없었다. 한껏 긴장한 탓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최대한 계획대로 움직이기 위해 남편은 바삐 몸을 움직였다. 나는 그대로 차에 남아 남편을 기다렸다.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비밀 요원처럼 우리 모두 비장했다. 남편은 곧장 항공사 데스크로 뛰어가 제공받기로 한 휠체어를 주차장까지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의 사정을 파악한 항공사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우리의 탑승을 도왔다. 공항 입구부터 게이트까지 최소한의 경로로 통과한 후, 공항 라운지에서 편안하게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공항 라운지까지는 우리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튀르키예 직원이 내 휠체어를 담당했다. 그는 의사가 써준 내 소견서로만 내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며칠 전 소견서를 위해 의사를 찾았을 때, 의사는 소견서 작성을 주저했다. 의사는 나의 한국행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적절한 판단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비행기를 탑승하는 것이 괜찮다는 보장을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우리는 그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해당 산모는 임신 20주차의 산모로, 비행기 탑승에 문제는 없습니다.] 정도의 간략한 문장으로 끝맺는 소견서를 받을 수 있었다. 1년여간 나의 임신과 유산, 그리고 두 번째 임신까지 지켜봐 온 의사는 우리의 한국행이 최선의 선택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소견서의 간략한 문구 탓에 직원은 나를 임신 20주 차라는 이유만으로 휠체어를 타는, 유난 떠는 산모쯤으로 아는 듯했다. 공항 입구부터 휠체어는 거칠게 몰아졌다. 갑자기 멈추거나 장애물에 부딪히는 등 거친 운전이 이어졌다. 급기야 잠시 시야에서 남편이 사라지자 얼른 찾아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이스탄불 공항에는 공항 입구에서부터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다. 검색대에 짐을 올리고 정리하는 사이 남편 역시 나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 게이트를 통과하는 곳에서, 해당 직원이 동료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암호처럼 길게 늘어뜨려진 튀르키예어 문장들 속에서 “Yirmi” 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온 것이다. 그건 ‘20’이라는 숫자를 의미했고, 내 임신 주차를 말하고 있음을 눈치껏 알 수 있었다. 직원과 대화를 나누던 다른 직원들은 나를 보며 자신들의 배를 가리켰다. 그리고 “Baby?” “Pregnant?” 따위의 단어들을 웃으면서 내던졌다. 임신 20주라는 이유로 이런 휠체어를 타는 것이 그다지도 이상했던 걸까. 순간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것 같아 창피하고 화가 났다. 동시에 내 상태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불길처럼 일었다. 나는 지금 나와 뱃속 아이의 건강, 우리 가족의 미래를 걸고 비행기를 타려는 거라고, 이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왔는지 아느냐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들에게 무엇이됐건 자신과 상관없는 남의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 상황이, 내 임신이, 누군가에게 별스럽지 않은 그저 유난으로만 비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행기 탑승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이륙했다. 비행시간은 10시간가량을 버텨야 했다. 나는 좌석을 최대한으로 젖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려 했다. 다행히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큰 출혈이나 병원에 뛰어가야 할 만큼의 이상 증세는 없었다. 그럼에도 비행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이나 여타 응급 상황이 닥칠까 봐 가슴이 다 쿵쾅쿵쾅 뛰었다. 부디 네가 이 여정을 잘 버텨주기를, 비행 내내 배 위에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