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분 정도는 아이가 돼보는 것도 괜찮잖아요. <빅 배드 폭스>
애니메이션을 본 후 친구에게 건넨 첫 문장이었다.
지난여름, 나는 프랑스로 향했다. 얇은 통장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팍팍해진 마음을 달래보고자 조금 무리해서 떠난 여정이었다. 삭막함 답답함 그리고 건조한 퍼석함이 한데 어우러진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마음일까. 파리에 도착한 후, 예전에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
이튿날 친구와 파리의 한 수변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다. '파리'라는 걸출한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단조로운 공원이었다. 덕분에 어딜 가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파리에서 그곳만큼은 한산했다. 하늘은 구름으로 꽉 찼고 꿉꿉한 공기는 지표면을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채 점심때가 되기 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늘게 내리던 비는 이내 그칠 듯하다가 다시 강 위로 동그란 호를 그려댔다. 결국 강변에 있는 보트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밥을 먹다가 오는 길에 작은 영화관을 지나쳐 온 것을 기억해냈다. 비는 여전히 그칠 생각이 없고, 우리는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괜찮은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었는데, 제목은 <Le grand méchant Renard>. 예전에 이곳에 포스팅한 적이 있었던 Ernest et Célestine(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제작진이 만든 새로운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런 게 행운이려나!
애니메이션은 좋았다. 아니, 솔직히 내 취향에는 꼭 들어맞은 그야말로 "취향저격". 좋은 것을 경험하고 나면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과연 이 애니메이션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화려한 볼거리에만 스크린의 공간을 내주는 이곳에서, 과연 이다지도 맥없이 착한 영화가 개봉이 될까. 만약 누군가 '개봉한다/안 한다'로 내기를 건다면 나는 '안 한다'에 걸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우연히 웹 서핑을 하다가 낯 잊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애니메이션이 <빅 배드 폭스>라는 타이틀로 올가을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이었다. 기쁜 한편으로 과연 많은 사람들이 찾아볼까, 이런 영화가 다양한 통로로 소개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기까지 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영화 관계자나 홍보 담당자가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총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구성이지만, 캐릭터와 세계관을 공유함으로써 그다지 분리되지 않는 짜임새로 엮어졌다. 첫 번째 게으른 황새를 대신해 아이를 배달해주는 이야기, 두 번째 무서운 여우로 변모하기 위해 세 마리의 아기 병아리를 맡아 키우게 되는 이야기,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산타클로스를 돕는 이야기까지- 하나같이 아기자기함과 순수함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안에 스리슬쩍 냉소와 해학이 꽤나 현실적으로 녹아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넘어지고 깨지고 구르는 1차원적 이야기들과, 한결같이 실수를 자아내는 캐릭터들의 미성숙함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날, 파리의 그 작은 극장 안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던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애니메이션 관람 후, 근처 서점에 들러 원작 만화를 (기어이) 사고야 말았다.
애니메이션은 마치 연기자들이 연극무대에서 극을 올리는듯한 연출로 시작된다. 극장의 평면적인 배경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차 3차원의 입체적인 공간으로 확대되면서 공간의 제약이 일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영화관의 관객들은 각기 다른 세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각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원작 만화를 보면 네모난 틀 안에 장면 장면을 구성하는 일반적인 만화와는 달리, 이야기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질 수 있는 연출을 구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면서 그림과 캐릭터의 터치감뿐 아니라, 이렇게 힘이 들어가지 않은 원작 만화 특유의 자유분방함 역시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원작에서 그려진 캐릭터의 역동적이고 생기발랄한 묘사들이 애니메이션 특유의 생동감이 더해져 스크린 안에서 마음껏 그 매력을 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사각의 스크린 안에서 형식과 공간의 제약을 적절하게 배치해 관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영리함도 돋보였다.
이건 굉장히 개인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겨울, 남들은 한참 '렛잇고'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을 때 나 홀로 어네스트와셀레스틴의 매력에 퐁당 빠져 있었으니까. 처음 이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개봉하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확신을 가졌던 것은, 이 영화는 어떠한 '자극적인 맛'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의 내용이나 이미지 구현에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챌만한 화려한 지점이 없다. 황새가 물고 오는 아기라던가,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을까.(병아리를 키우는 여우 이야기는 색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돈 내고 볼만한 게 아니면 더 이상 극장에 가지 않겠다'는 요즘 사람들의 영화 관람 트렌드, 그리고 몇몇 대형 영화들이 스크린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배급의 형태만 보더라도 이 순박하기 그지없는 영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한국에 없어 보였다. 게다가 그나마 익숙하기라도 한 영어로 이야기되는 애니메이션도 아닌, 프랑스어 영화이다 보니 설사 개봉이 된다고 한들 선택의 여지없이 더빙판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 역시 이 영화의 취약점이 될 게 분명해 보였다.
화려하고 비싼 제작비를 쓴 영화들이 나쁘고 이 애니메이션은 착하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애니메이션을 조금은 적극적으로 찾아봤으면 좋겠는 이유는 그저 보고 나서 기분이 한결 산뜻해지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어떤 흑심 가득한 꿍꿍이나 음모가 도사리고 있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그대로의 캐릭터들이 그곳에 있고, 꾸밈없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그럴싸한 삶의 고뇌나 철학을 논하거나,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지는 않지만 이걸 보는 80분 동안은 잠시 무거운 어른의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아이같이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해본 게 생각보다 오래됐다는 것이 스스로 놀라웠었다.
어른의 시계는 정신없이 돌고 돌아 뒤쫓아오는 시곗바늘에 등 떠밀려 하루를 살아가기 일쑤다. 어찌 보면 하루 동안 만나고 생각해야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고작 그렇고 그런 일들 뿐이라는 게 새삼 고단할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80분 정도는 아이로 머물러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