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원에 핀 들꽃 한송이

자세히 보면 예쁘다. 오래도록 사랑스럽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by BAEK Miyoung

그리 멀지 않은 1년 반 전, 2014년 초입 때 이야기다.

아마 그때 대한민국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울림.

그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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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잇고-!! 렛잇고---!!!!!!!

sticker sticker

대한민국에서 한창 겨울왕국이 흥하다 못해 춤추고 있었다. 너도나도 잃어버린 엄마 찾듯 목놓아 부르던 그 노래가 처음엔 너무 좋았다가 어느 순간 부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자리를 뜨고 싶게 만들던, 여러 의미로 마성의 노래였다.

갓 유학에서 돌아와 부모님이 계신 부산에 머물던 나는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청춘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불안감, 미래에 대한 예외 없는 노파심 그리고 내 등을 떠밀듯 다급히 지나가던 한국의 시간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아마 바닥에서 한 30센티 붕떠서 걸어 다녔지 싶다. 흔히들 얘기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를 밥 먹듯 뱉고 삼키며 차츰 이 땅에 발을 잘 내 딛기 위해 애쓰던 시기. 나 역시 렛잇꼬-의 열풍에 휩쓸려 두 번이나 극장을 찾았다.(한번은 2D, 다른 한번은 4D.) 다른 얘기지만 처음 경험해본 4D 영화관은 정말 (미안하게도) 내 취향 밖이었다. 멀미할 듯 흔들리는 의자도 그렇지만 물이 튀거나 뿜어나오는 장면마다 내 앞 좌석에서 마치 침 뱉듯 분사되는 물 때문에 영상에 통 집중이 되질 않았다.(왠지 기분도 나빠진다.)

아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도 픽사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히 클래식한 느낌의 애니메이션도 무척 좋아한다. 웬만하면 장. 단편 가리지 않고 찾아 보는 편이고 몇몇은 DVD로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봤던 겨울왕국은 크게 나쁠 것 없이 재밌게 봤지만 그렇다고 피부로 느껴지던 뜨거운 인기만큼의 어떤 특별한 감흥을 받은 애니메이션은 아니었다.


그 즈음 겨울왕국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가 프랑스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다.


어쩌면 몇몇 키워드로 어느 정도의 그림이 파악되겠지만,

'프랑스 애니메이션', 'No 픽사/No 디즈니/No 드림웤스/어쨌든 No 대형회사'의 타이틀만 보더라도 한국에서 그리 각광받을만한 종류의 영화는 아니었을 거라 여겨진다. 그때 이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영화관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더빙판만 상영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어린 관객을 타깃으로 삼고 있는 탓이 크겠지만 어찌됐건 될 수 있는 한 원작 그대로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수소문 끝에 부산 해운대에 있는 '영화의 전당'에서 원작 그대로 상영하고 있단 정보를 알아냈고 언니 내외와 함께 그리로 향했다.(부산 만세!)


해운대 센텀에 위치한 '영화의 전당'.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곳이며 다양한 장르의 크고 작은 영화들이 1년 내내 상영된다. 밤에 보면 그 야경이 실로 아름답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연말 연초 성수기임에도 영화의 전당 극장이 한산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쾌적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지만 이런 좋은 시설물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맘이 들었다.

애니메이션이 시작되었다. 남들보다는 그나마 안면이 있는 프랑스어가 조심조심 귓가를 노크해왔다. 심드렁한 언니 내외에 비해 나는 바짝 귀를 세운채 관람을 시작했다.

어린 셀레스틴과 친구들

1시간 반 길이의 영화가 끝나고 하나 둘 관객들이 퇴장할 무렵 나는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그. 어. 이. 음... 그러니까 이게 대체 어떤 기분이란 말인가.

아. 그래. 이건 마치-


인공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아주 오랜만에 먹은 느낌.


신선했다.

일순간 머리가 맑아지듯 뚜렷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내가 좋은 애니메이션을 봤다는 사실을.

여태 알음알음 봐왔던 프랑스 애니메이션들이 가끔은 지나치리만큼 사람을 생각의 모퉁이로 몰아넣는 것에 비해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단순하고 쉬운 플롯으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관객의(나의) 눈과 귀를 이끌어 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족할 것도 없었다. 내가 어렴풋이 애니메이션은 이러 이러한걸 갖췄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대부분이 그 안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갓 튀어나온듯한 순수하고 명료한 발상. 깨끗하고 부드럽게 표현된 캐릭터들의 움직임. 캐릭터의 성격에 꼭 들어맞는 배우의 목소리. 온화하고 포근한 색감. 수수하고 편안한 배경과 담백하게 녹아드는 음악.

내가 방금 본 그 영상에 여태껏 내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들고 싶었던 것,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리고자 쫓아갈 것들이 고스란히 놓여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혼자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다행히 울진 않았다.)


뻔뻔하게 음식 좀 달라 조르는 어네스트
간식가게 앞 귀여운 곰 꼬맹이들.

감동에 흠뻑 젖어 영화관을 나서는 와중에 언니 내외에게 애니메이션 어떻게 보았냐 넌지시 물어보았다. 두분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재미있게 본건 아니라고 했다.


몇 번의 재관람을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본 결과, 우선 영화를 보는데 있어 낯선 프랑스어와 억양이 꽤나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영어판으로 개봉되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싶지만 셀레스틴 성우를 맡은 배우의 목소리가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쉽게 가정해볼 순 없다.(찾아보니 셀레스틴 역 더빙을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에드워드와 벨라의 딸 역할을 했던 아역 배우가 했다고.)

또 요즘같이 화려한 눈요기로 가득 찬 영화들 틈에서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화려하게 입힌 CG그래픽도 식스센스급반전도 예쁘고 잘생긴 공주나 왕자도 등장하지 않는다.(쥐와 곰이 있을 뿐) 마치 색색깔 화려한 장미꽃 사이에 힘겹게 돋아난 작은 들꽃 같았달까. 다른 꽃에 비해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도리어 허리를 굽혀 눈을 맞춰야지만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꽃.


그러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에는 두터운 화장을 막 걷어낸 애니메이션 본연의 모습을 보는 듯한 청아함이 있다. 한창 마음의 멀미를 겪고 있던 내게 이 신선하게 불어온 바람은 좋은 자극제인 동시에 위로였다. 어쩌면 다른 이에겐 단점이었을지 모를 것들도 내 눈엔 처음부터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눈으로 빤히 보이는 화면의 화려함을 떠나 누군가를 자극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드는 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일인가. 처음 봤을 때 영상의 빼어남을 질투했고 그 다음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스며드는 영화의 따뜻함에 감탄했다. 훗날 나 역시 이런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볼 수 있게 될까, 걱정하며 한편으로 설레 하며 이후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 나가는 계기가 되어준 게 바로 이 애니메이션이었다.

혼자 봐도, 둘이 봐도, 아이와 함께 봐도 좋은 애니메이션 <어네스트와 셀레스틴>.(다행인지 어떤지 이 애니메이션에는 렛잇꼬같이 중독성 강한 노래는 없다.) 만약 이 글을 읽고 흥미가 돋는다면 꼭 한번 찾아보길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듬직한 곰 어네스트(에르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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