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피부색깔=꿀색>

by BAEK Miyoung

이번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편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나도 눈시울을 붉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별 일 아닌 일에도 곧 잘 울곤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예전에 유학을 하면서 엄마 음식이 그리워 실제로 울었던 기억이 떠올라 더욱 눈물이 났다. 프랑스 외곽의 작은 도시. 한국 식료품점은커녕 이렇다 할 아시아 식료품점 조차도 없었다. 번씩 김치나 라면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소포로 받긴 했지만 따뜻한 엄마 밥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엄마밥=엄마가 사랑을 표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처럼, 낯선 땅에 가면 엄마의 밥이, 엄마의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고파지는 법이다.


이번 '배달의 무도'에 나온 선영씨의 사연, 그리고 입양을 가던 '지호'를 보며 이 애니메이션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부색깔=꿀색> 융 헤넨 감독


유학을 정리하고 입국한 날짜가 2013년 11월 6일 이었다. 또렷하게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한국에 있는 부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날짜에 맞춰 입국했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영화제 스태프분이 이미 마중을 나와 계셨다. 나 뿐만 아니라 그날 여러 감독이 입국 예정이라 감독들을 한데 추슬러서 숙소로 안내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비행기 타기 전 얻은 장염과 오랜 비행 여독으로 가지에 붙은 마지막 잎새마냥 공항 밴치에 짜부라져 있었다. 그때,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한 가족이 다른 스텝의 안내를 받으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언뜻 보면 한국인 같지만 언어는 불어를 쓰는 가족. 혹시 그분이 아닐까 했는데 역시 그분이 맞았다. PISAF 개막 초청작인 <피부색깔=꿀색>의 감독님인 '융'감독님.


부모님이 계신 부산이 아닌 부천의 한 관광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 다음날이 영화제의 개막일이었고, 나는 장염으로 여전히 갈대마냥 휘청대고 있었다. 개막작은 보지 말고 그냥 숙소로 들어가 쉴까 망설이는 사이 이미 영화는 시작됐고 나갈 타이밍은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피부색깔=꿀색>을 보게 됐다.

영화는 주인공이자 감독인 '융'이 어릴 때 겪었던 경험담을 엮은 애니메이션 부분과 감독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촬영한 다큐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감정에 많이 치우쳐져 있지 않을까-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놀랍도록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얘기를 풀어간다. 오히려 영화를 다 보고 나자 그 담담한 어조 때문에 더 가슴이 아렸다. '융'은 전쟁 후 한참 한국이 가난에 허덕일 때 벨기에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 시절, 벨기에에 '융'이 살던 마을 안에서도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을 찾아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융'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혹은 그보다 더 짓궂게 자라난다. 그런 개구진 얼굴과는 달리 마음은 늘 자신의 뿌리에서 비롯된 검은 그림자에 발목 잡혀 있다. 방황하고 원망하는 동시에 따뜻한 가족들의 보살핌을 사랑한다. 하지만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마음 따뜻함 속으로 편히 뛰어들 못하게 자꾸만 막아댄다. 융이 입양되고 몇 년 후 한국에서 입양된 여동생은 채 스물이 되기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마을에 있었던 다른 한국 입양인들도 긴 방황 속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온전히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모든 얘기들이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한 내레이션과 함께 영상으로 흘러 지나간다. 영상이 끝나고 나는 울고 싶어 졌다.


감독 '융 헤넨'의 만화를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몇몇 한국 입양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 그들의 눈을 마주했을 때 들었던 복잡 미묘한 마음을 어떻게 서술하려 해도 뚜렷한 단어를 골라내기 어렵다. 호기심? 죄책감? 친숙함? 그 어떤 단어도 분명치가 않고 순간 무척 어지러워지면서 종국에 마음은 슬픔이라는 종착지로 향한다.


왜 당신은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게 됐는가. 떠나온 자는 누구이고 머무는 자는 누구인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대부분은 우리 같은 유학생들에게 호기심과 기대심을 가진 분들이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고, 우리와 친구가 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싶어 한다. 입양된 나라에 대해 그리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다. 그와는 반대로 자신을 버린(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나라에 대해 크게 관심 없거나 되려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들의 경우는 다른 경위가 아니고서야 나 같은 유학생과 만나지기는 매우 어렵다. 언뜻 들은 바로는 프랑스 내에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한다. 그게 전국구의 대규모 모임인지 지역 단위의 소규모 모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모임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며 서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달래는 것 같았다.


한번은 함께 유학하는 친구와 함께 한 입양인 친구로부터 식사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분은 이미 한국을 다녀온 적도 있고 한국에 있는 자신의 가족도 만나 교류하고 있었다. 소박한 상차림에 소박한 얘기들이 오고 가는 평범한 오후. 그러다 문뜩 생각 났다는 듯이 그 친구가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우리 앞에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거기에 장구가 있었는데 내가 별 감흥 없이 장구채를 들고 장구를 몇 번 두드리기 시작하자 그 친구가 핸드폰으로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뭐라도 좋으니 그 '악기'를 연주해 줄 수 없느냐는 부탁과 함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다른 게 당황스러운 게 아니라 내 장구 솜씨가 정말 형편없어 그 친구가 기대하는 그림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던 그 친구의 얼굴이 얼마나 환하게 빛나던지.. 제대로 장구 장단을 쳐주지 못한 게 여태 미안할 만큼, 그 얼굴이 뇌리에 깊이 세겨져 있다.


외국에서 마주한 그들의 얼굴은 누구보다도 나와 내 가족을 닮아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친구가 됐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함께 방과 후 떡볶이를 먹으며 유년의 기억하고 짝사랑에 대한 비밀을 공유할 수도 있었을 그런 친구. 그런 생각을 하면 그들이 낯선 땅에서 스스로 낯선 존재로 살아왔던 매 순간이 그저 애달프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러닝타임이라는 제약 때문에 원작의 이야기를 모두 싣지는 못했다. 애니메이션을 본 후, 다시 원작인 만화책을 사서 봤다. 거기엔 영화에서보다 훨씬 다양하고 깊은 감독의 얘기들이 담겨져 있다.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한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예쁜 포장에 쌓인 이야기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영화를 주의 깊게 봤다면 책을 통해 감독이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간 글과 그림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웹에서 다른 좋은 이미지를 찾지 못해 결국 내가 가진 책을 사진찍어 이곳에 올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땅에 발을 채 딛기도 전에 태어난 나라를 떠나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분명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산다고 해서 그 삶이 반드시 행복해지지는 않듯, 입양을 간다고 해서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저- 행복하기를.

어디서 누군가로부터 나는 태어났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 그들의 삶에 너무 아프게 파고들지 않기를. 우리가 안녕하듯 당신 역시 안녕하기를. 누구보다 넘치는 사랑 속에 자라나기를- 그런 일을 막을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이 힘없는 약한 사람이 소원하고 또 기도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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