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체체파리의 비법>

읽어봐요 싸이파이 10

by Dolphin knows
우리는 이빨도 없는 종족이에요.
We're a toothless race


보통 디스토피아를 그릴 때 일단 살고 있는 환경 자체가 비참하게 변한 경우를 많이 보여준다.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온 사방에 먼지가 가득하고 농사도 되지 않아 미국 경제가 팍 쪼그라든 경우, 혹은 기후위기 때문에 온 세상이 얼어버린 상태를 그린 <투모로우>나 <설국열차>. 아니면 외계인이 이미 지구를 침공해서 인간을 숙주로 삼는 다양한 영화와 소설들. 그리고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매트릭스> 같은 작품들은. 인류 전체가 성별 상관없이 동일한 고통을 겪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아주 신기하고도 어찌 보면 익숙한 상황을 연출해낸다. 오로지 여자들만이 살해당하고 사냥당하는 세상 말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이유도 없이 죽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페미사이드.

처음엔 특정지역에서 갑자기 여자들만 죽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해 빠른속도로 전 세계로 번져간다.

앨런이라는 생물학자는 사람들에게 수면병을 옮기는 체체파리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의 아내 앤은 점점 자기를 조여들어오는 상황을 편지로 이야기하고, 앨런은 다양한 보고서와 통신을 통해 여성 살해에 대한 다양한 연구보고를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앨런은 그 해충 구제에 대해 계속 연구를 한다. 살충제는 해충뿐 아니라, 해충과 우리가 공유하는 환경 자체를 해칠 수 있으므로 해충의 약한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연구하던 끝에

'번식'부분을 건드리기로 한다.

백만 번이나 물리고 베인 대가로
그는 줄기파리 번식주기의 약한 고리를 찾아냈다.


이 해충의 생식이상과 인간의 생식이상이 이 소설 속에는 병렬적으로 진행되며 이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속에 단단한 논리를 쌓는다.


모든 종은 아니라도 많은 종에서 공격 행동이 먼저 나타나고, 적절한 신호가 주어지면 그것이 교미 행동으로 바뀐다.(예: 세 갈래 가시고기와 유럽 울새). 억제 신호가 없으면 수컷의 호전적 반응이 계속되어 암컷은 공격을 받거나 쫓겨난다. 그러므로 현재 위기의 원인은 고등 영장류의 전환 혹은 유인 기능 실패를 초래하는 물질, 아마도 바이러스나 효소 수준의 물질로 추측함이 적절하겠다. 이러한 기능 장애는 짝짓기 행동의 실패가 공격적/약탈적인 반응으로 바뀌거나 이어지는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적으로 흥분하면 공격만 하게 되고, 흥분을 일으키는 대상의 파괴를 통해서만 흥분을 해소하게 된다는 것이다. 관련하여 정확히 이런 상태가 흔한 남성 기능 이상으로 일어나며, 그런 경우 성적 욕망에 대한 응답으로, 또한 성적 욕망의 완성으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점을 언급해주는 것이 좋겠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체체파리의 비법>



이 페미사이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남편이 아내를 딸을 혹은 이웃을 지인을 혹은 <아담의 아들들>이란 단체는 지나가는 여자가 보이기만 하면 비참하게 여기저기 칼로 난자해 죽여놓고는 행복해한다.

그렇게 여자들의 시체가 지구에 쌓여가고 여자들은 머리를 자르고 몸을 가리고 페미사이드를 피해 난민이 되거나 숨어 지낸다.

여자들의 시체가 끊이질 않으니 장례식장에서는 더 이상 여자의 시체를 받지 않기도 한다.

포세트 장례식장

애석한 일이지만
저희는 더 이상 여성 시신을 받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에게도 그 병이 발병한 것을 알게 된 앨런은 자기 아내와 딸을 보호하기 위해 피하려고 하지만 결국 친 딸을 살해하게 되고 아내 앤은 도망친다.

앤은 도피생활을 하며 살해위협 앞에서는 자기의 학위도 지식도 아무것도 소용없음을 알고

사냥터에 내몰린 '이빨 없는 짐승'인 자기의 처지를 한탄한다.

비참하게 그야말로 몸을 숨기며 연명하고 살던 앤은 결국 어떤 <하얀 존재>를 마주치게 되는데,

결국 이 모든 일이 인간을 해충으로 보고 효과적으로 이 지구에서 몰아내려는 외계인의 음모임을 알게된다. 그렇게 놀라고 절망한다.




아주 덤덤하게 그려낸 이 처연한 세계는 슬프게도 낯설지 않다.

최근 전쟁에서 임신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살해당했고 작년만 해도 김태현이라는 살인자 때문에

세 모녀가 한 날 한시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혹은 어머니가 있는 집에서 전 남자 친구에게 살해당하고, 또는 남편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진행하던 중에 친정아버지 앞에서 일본도로 전남편에게 살해당하거나 뭐... 하루에 한 번 꼴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별 살해, 신변 보호 중 살해.

지인에게서 살해, 형제에게서 살해, 아들로부터 살해 등등.

이런 뉴스를 보다 보면, 정말 그러지 않길 바랐는데

지인이 그런 일을 당한 걸 목격하면 세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더 이상 뭘 바라지도 않게 되고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이 뇌를 꽉 채운다.

이 일은 결코 당연한 일도 필연적인 일도 아니다.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그러나 비일비재하기에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가끔은 그 생각을 한다.


나라가 여자들을 보호하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비상 알약 하나씩 공급해주면 좋겠다.
죽음이야 공평하니 적어도
쓰레기들에게 살해당하기 전에
존엄을 지킬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http://www.headlinejeju.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6188

https://youtu.be/5t3Tjrf8rfQ

드니 무퀘게 박사와 판지병원 그곳에서 치유받고 있는 전쟁 강간 폭력범죄 이야기를 담은 다큐 <기쁨의 도시> 깔끔하게 리뷰해주신 분이 있어 링크를 올려봤다.


201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콩고 민주공화국 의사 드니 무퀘게(63)는
5일(현지시간) "무력 분쟁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매일매일을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세계 모든 나라의 여성들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20년 가까이 여성과 어린 소녀들,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목격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상을 통해 전 세계가 당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무관심을 거부한다는 말을
전 세계의 생존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고 언급했다.

또 "우리는 세상이 더 이상 당신들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왜냐하면 인류의 생존은 여성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



콩고 내전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그 사상자의 중심에는 여자들이 있었다.

수많은 여자들이 끔찍하게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 강간당하고 크게 다친 여성 무엇보다 자식 앞에서 그런 일을 당한 여성들은 '남편의 수치'가 되었으므로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드니 무퀘게 박사는 뜻있는 분들과 '기쁨의 도시'라는 곳을 만들의 여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 지금까지 5만 명의 여성을 치료해 왔다.

이 분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전쟁에서 다른 편을 가장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은 바로 '여성'을 공격하는 거라고.

아이와 여성 둘 다 공격하고 가정을 박살을 내버려야. 효과적으로 힘을 뺄 수 있다고.

다른 편을 해충처럼 여긴다면 이것만큼 유효한 방법이 없다.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버리는 거다.


그 말은 '여성의 안전과 생존이 한 공동체 나아가
한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키를 쥐고 있음을 반증한다.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는 자신의 본명 앨리스 브래들리 셸든 대신 남자 이름을 써야 했다.

당시 미국의 사회환경이 그래서 편견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아 그랬다고 하지만

난 이게 안전의 문제도 전혀 없지 않다고 본다.

이 소설로 <네뷸러>상을 받고 그야말로 싸이파이계의 기린아로 올라 선 작가는 1942년에 군에 입대해 공군 조종사와 정보원으로 일하다가 1950년대에는 CIA 정보원을 지냈다.

이후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작가의 이력과 경험은 이 소설의 서술 스타일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사건 보고서 같기도 하고 또 다른 부분은 생물학 연구 결과지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안에 흐르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아이러니를 살펴보면 문학적 미학과 성취가 또렷하다.


이 작품은 2006년 미국 드라마 <마스터스 오브 호러>의 한 에피소드로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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