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독서의 기록 8
어릴 때 읽었던 셜록 홈스 전집. 왜 세계 3대 탐정(포와로, 홈즈, 브라운 신부) 중 가장 유명한 지 알 만했다.
일단 템빨이 무척 좋았다. 키도 훌쩍 크고 온갖 운동도 잘하는 데다 매우 특징적인 몇 개의 아이템, 사냥 모자, 케이프 코트, 파이프 담배와 돋보기. 100미터 밖에서 봐도 아 홈즈구나 싶다.
그리고 가끔 신경질적으로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뇌를 굴릴 때 쓰는 안락의자까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 갖다 놔도 위의 아이템을 몇 개 놓거나 변주하면 긴 설명 필요 없이 바로 내러티브를 만들 수 있으니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등장하고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성격적 결함은 좀 참아주기 힘들다. 아주 나쁘진 않지만 읽다 보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 그래 셜록 이 자식아 너 잘났다'라고 욕을 하고 싶을 정도.
셜록 홈즈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처럼 논리를 차곡차곡 쌓아올려 가장 안전한 곳에서 사실을 잘 조합하는 탐정과는 정 반대 성향이라 온갖 군데에 설치고 다니는 스타일이다. 워낙 신체조건이 좋고 무술도 해댔대니까 뭐. 여하튼 지가 아무리 잘나봐야 격투기 선수나 살수가 아니라 그저 제도권 밖의 직업인 '탐정'이기에
의사인 왓슨이 치료해 주고 뒷수습해 주는데도 자기보다 배운 사람인 왓슨(왓슨이 2살이나 많다고! 인마. 형이라고 부르진 못할망정)을 겨우 추리 못한다고 꼽준다. 특히, 결국 범인의 사법처리와 온갖 몸 고생 다하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얕잡아 보는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탐정으로서는 멋지지만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강박증으로 둘둘 쌓인 포와로 아저씨는 이 홈즈에 비하면 아주 귀엽고 호감인 편일 정도. 적어도 포와로 아저씨는 매우 정중하고 어이 털릴 때도 일단 스스로 가라앉히고 대화를 한다. 무엇보다 잘난 척을 해도 귀엽게 한다. '내 작은 회색 세포가' 할 때마다 귀여워서 터져벌임. 그리고 가끔 자기가 키운 호박을 자랑할 때는 더...
그래서, 이 브라운 신부님을 만나기 전까진 나의 최애는 벨기에 할아버지 에르큘 포와로나 역시 벨기에 출신 메그래 경감이었다.
브라운 신부는 매우 특이하다. 거의 외모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신부이고 신체조건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사실 탐정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어느 프로에서 봤는데 정보기관 요원은 007제임스 본드처럼 잘생기고 멋있고 정장을 쫙 빼입은 한마디로 '눈에 띄는 사람'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맞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작가 체스터턴이 브라운 신부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가장 친했던 신부님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신부님은 쾌활하고 사교적이며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나, 작가는 사건에 스며들어야 하는 관찰, 탐구자의 특성상 외모적으로 너무 눈에 띄면 안 되었기에 브라운 신부를 특징 없고 소박한 외모로 구상했고. 이게 전체 소설의 논리에 너무도 잘 맞아들었다.
보통의 탐정소설이 살인이나 사기 트릭 사건이 나고 그걸 탐방, 관찰하고 재조립하며 때론 그 사이에 끼어들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휙 떠난다면. 이 브라운 신부는 사건 안에 직접 스며들었다 때가 되면 관찰, 탐구자로 포지션을 바꾸고 사건이 일어난 원인과 그 사람의 마음에까지 접근한다.
그리고 추리나 수사 관련 소설상 중간에 반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은 어느 정도 잘 가름이 되는데, <브라운 신부>시리즈에서는 그게 묘하게 뒤섞이거나 전체적으로 확 뒤집힌다.
첫 에피소드인 푸른 십자가에서 잡아야 할 악한으로 나온 '프랑보'가 브라운 신부의 기지로 뛰어난 경찰인 '발랑탱'에게 잡히고 나서 나중에는 브라운 신부의 설득으로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에피소드는 매우 매력 있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죗값을 치른 프랑보는 그가 가진 온갖 재능을 그대로 살려 브라운 신부의 파트너이자 탐정으로 온갖 사건에 함께한다. 답이 없어 보이는 인간의 갱생에 대한 희망.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이건 성직자 말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브라운 신부의 특징이고.
사실 가장 충격받고 매력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첫 에피소드에서 <브라운 신부>의 힌트를 잘 알아듣고 도둑 프랑보를 잡아넣었던 훌륭한 경찰 '발랑탱'이 정치적인 이유와 본임의 신념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자살하는 대목이었다.
처음에 '발랑탱'이 등장할 때, 아 이젠 발랑탱이 브라운 신부와 파트너십을 맺겠구나 싶었는데, 발랑탱이 자살하고 프랑보가 함께 하다니... 충격과 동시에 매혹되었다.
체스터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나는 언제나 그를 인용하며, 그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품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에드거 앨런 포를 능가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브라운 신부의 매력은 욕을 할 때 드러난다. 욕도 그냥 하지 않는다. 자기 멱살을 잡는 이에게 아주 성경 구절 예를 들어 <불이 꺼지지 않는 못과 유황>등으로 시원하게 응대하고, 자기 형을 살해한 걸 들킨 목사가 탑 꼭대기에서 자살하려 하자," 아 거긴 지옥으로 가는 쪽인데요?"라며 아주 심드렁하게 그러나 충분히 알아먹게 해준다. 정중하면서 기독교 문화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 하나하나가 어떻게 먹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는 소리다.
신부는 그저 고요하고 조용하게만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온갖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나 성당이고 인생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그저 배부른 돼지처럼 만족스러웠다면 영적인 것을 추구하지도 않았겠지. 인간은 그렇게 본래적으로 숭고하진 않은 존재다. 무엇보다 정신적이며 인격적인 결함이 모인 사람들이 부딪쳐서 불협화음을 내는 곳도 교회 혹은 성당이다.
그 아수라장에서 수많은 사람의 고해를 들어왔던 사람이므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 그 한계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브라운 신부의 장점은 누구보다 입이 무겁고 자기과시가 없다는 점. 범인을 바로 경찰에 넘겨 처단하거나 심리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범인들 스스로 자기의 죄를 자백할 기회를 준다.
어떤 이는 바로 자수하지만 어떤 이는 그래놓고는 그냥 나 몰라라. 그러나 불타는 의협심으로 그 부분까지 개입하진 않는 게 이 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사람의 한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므로 기대가 없었을 것이고, 기대가 없기에 불쌍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 같다. 그 대단해 보이는 재산이나 대단한 술수 아래에 있는 열등감과 시기심 자기혐오 등을 꿰뚫어 보고 있는 브라운 신부가 존재감 뿜뿜하는 다른 탐정들보다 사실 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묘사'에 있다. 다른 추리소설이 사건중심으로 가거나 일본작가 '모리무라 세이치'의 밀실 추리소설의 경우 사건의 장소를 구조도 중심으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만 묘사하는데
체스터턴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꼭 그림이 그려지는 것같다. 특히 <잘못된 모양>이라는 단편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과 집을 실제로 누가 구현한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회화적인 묘사가 뛰어나다. 알고보다 작가 체스터턴이 미술을 전공했다고 하더라. 아 그래서 그랬구나 싶다.
고요하지만 막 고상한 척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 유연하게 잘 스며들며, 소박하지만 매서운 눈과 두뇌 신념을 지닌 이 브라운 신부를 세상에 내놓은 체스터턴에게 나의 최애 작가인 '보르헤스'가 극찬을 한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