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독서의 기록 9

by Dolphin knows


작품 속 주인공 예지는 상습적인 친족 성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가 다른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 만든 이른바 ‘가출팸’의 일원이 되고, 성착취를 당한다.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주인공이 강제로 약을 먹은 채 성착취 동영상 제작이나 강간 파티에 동원되는 등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수식을 최소화하고 건조한 문체로 전달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충격적이다. 특히 ‘심심함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성착취 행위를 즐기는 남성과 이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는 여성의 처지가 만들어내는 극적 대조가 인상적이다.


주 작가는 “제도권 바깥의 세계는 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라며 “그곳이야말로 남성이 가해자가 되는 폭력적 구조가 더욱 심해진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 속 사건들이 “대부분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며, 작가가 직접 보지 못한 사건은 크로스체크까지 거쳤다”고 말했다. 10여 년 간 가출 청소년들을 만나 왔다는 주 작가는 이들의 문제 해결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면서도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2OVTQASY6




주원규 작가의 전작인 '메이드 인 강남'. 그 작품이 강남 클럽의 미성년 인신매매와 그 일에 얽힌 소각팀, 해결사 등 각종 카르텔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 작품은 바로 그렇게 거래되는 '가출 소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지난 작품이 건조하게 이 vvip들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조망했다면, 이 작품은 현실 강남에서 일어나는 더러운 인신공양 제사의 '제물'에 목소리를 실어줬다.

디테일이 좀 더 분명해졌고 그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럽다.

아무리 많아봐야 열여덟 살이 넘지 않을 예지. 예지의 친부는 그야말로 쓰레기다.

교육이라든지 의식주라든지 자식이라고 낳아놓고는 신경도 안 쓰고 그 와중에 필리핀 출신 새 아내를 얻어 임신시키고는 툭하면 주먹질이다. 그리고 예지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다.

예지는 여러 번 쉼터로 가서 그곳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돌봄을 받았으나, 쓰레기 같은 친부가

아이를 잃어버린 보통 아버지인 양 연기하며 다시 예지를 집으로 데려가 강간한다.

참다못해, 예지는 가출을 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돈 한 푼 없는 여자아이가 갈 곳은 없다.

그리고 이 아이는 그야말로 의도치 않게 '성판매를 위한 도구'처럼 어른들에게 다뤄진다.

이 소설은 실제 작가가 오랫동안 가출팸 아이들을 도우면서, 그 아이들을 만나고 교류해왔던 신도림이라는 동네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우리가 못 봤던 열악함이 적나라하고 건조하게 묘사돼있다. 이 부분에 나는 작가의 진정성을 봤다. 번쩍이는 신도림의 디큐브시티 그 근방에 있는 구옥 빌라들. 예지와 비슷한 이유로 집을 나온 여자아이들과

가족의 돌봄을 받을 일 없는 남자아이들이 서도 뒤섞여 이름만 반지하인 지하방에서 서로 짐승처럼 물고 뜯고 하면서 산다. 보통은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팔아치우고 수수료를 먹고 여자애들은 더 착취할 건 자기 몸밖에 없어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때론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며 몸을 팔아 연명한다.


또래 여자아이 중 그나마 외모가 나은 축이었던 예지는 속칭 스카우터라는 MD에 의해

끌려가 지하에서 온갖 스너프 비디오와 벗방을 강제로 찍으며 강제 약물 주입 강간 폭력...온갖 짓을 영혼이 박살날 정도로 당한다. 본문을 읽으며 난 이 세탁이라 불리는 과정이 인간성을 잃게 하는 제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너는 사람이 아니라 상품, 물건이라고 각인시키는 것.

소설 속에서 이 아이를 마음껏 이용하는 남자 어른들이 너무도 당연하게들 낄낄거리며 주고받은 말속에 많은 것이 담겨있었다.

작가가 수많은 매체에서도 말했듯이 소설 속에 담은 이야기는 실제 벌어진 일 중 일부다.

지금도 딥웹에 들어가면 이 비슷한 결과물이 떠돌아다닐 걸 생각하니. 구역질이 치밀었다.


이렇게 통과의례를 치르고, 예지는 성형이라는 관문을 거치게 된다.

물론 이 수술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성형외과 의사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후 수술비는

이 아이에게 싹 다 청구됐다. 그 성형외과 의사는 수슬 전 예지를 강간하며 이런 말을 한다.



결혼도 하고, 돈도 벌 만큼 벌고, 골프도 칠 만큼 치고,
외제차도 질러봤는데, 그렇게 죽어라 배운 기술 갖고 씨발,
김치년들 얼굴 뜯어가며 산다는 게. 가질 만큼 가졌는데, 씨발.
그게 안된다고. 그게. 내 나이 마흔도 안 됐는데 말이야. 이게 말이 돼?
따지고 보면 이거 나쁜 짓...... 맞지.
강간이고 성폭력이고 죽어도 싼 짓이지.
그런데 너 말야 그거 알아?
이렇게 하지 않으면 흥분이 되지 않아.
모든 게 지루하고 그저 그래.



참 착하게 보였던 성형외과 의사는 그냥 삶이 지루해서 이 짓을 한다고 당당하게 밝혔고

이후에 클럽 VIP 룸에서 만난 온갖 인간들. 이 아이의 몸을 난도질하고 피를 흘리게 하고 때론 강제 약물을 주입하며 강간했던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작가가 이 소설에 풀어놓은 묘사는 관음증적으로 상상해서 그린 장면이 아니다.

이게 실제보다 순화되었다는 게 너무도 끔찍했다.

보통 기성 문학작품에서 강간을 묘사할 때 일부러 자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주원규의 작품에서는 피해자가 그들의 순간적 즐거움을 위해 어떻게 영혼부터 비참하게 망가지는지 특히

어떻게 고통받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장면을 쓰면서 작가가 PTSD를 겪었을 것 같단 생각까지 들었다.

이미 이 분은 이 끔찍한 과정을 거쳐 결국 그 세계에서 버림받아 몸도 마음도 망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실제로 들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쉽사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예지의 고난은 극으로 달하다가 결국 우연한 기회에 끝나지만

예지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그 VIP들은 뒷구멍으로 다 도망쳤고, 가출팸 애들만 악마화되어

기사에 박제되었다. 이 일은 뭐 놀랄 일도 아니다. 그리고 쓰레기 같은 애비는 여전히 똑같았다는 거,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소설 속 예지에게 준 마지막 탈출 열쇠 같았다.

작가가 이 어린 청소년의 분노와 슬픔을 어떻게 풀어주려 했는지가 보여 맘이 아팠다.



슬프게도 이게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아이가 죽거나 다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 아이들은 '왜 나를 아프게 해요' 라고 물을 새 조차 없이 폭력의 제물이 되고 있다.

돈이 썩어나는 곳에 독버섯 처럼 피어난 특권의식, 자기 외의 모든 것을 도구화 할 수 있다고 믿는

비뚤어진 인간들이 벌이는 이 모든 끔찍한 범죄의 바닥에는 집이 쉴 곳이 될 수 없었던 영혼이 다친 아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을 팔아 한몫을 챙기고, 누구는 이 아이들을 사다 쓰고 죽이고 버리며 자기의 '지루함'을 달랜다.


난 이 소설을 한 명이라도 더 봤으면 좋겠다.

세상에 몸을 팔려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애초에 그 용도로 만들어진 사람은 없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이 로마제국 시대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인격을 제 맘대로 지우고

그 사람을 피 흘리게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며 즐기는 귀족들이 있어선 안된다.


https://youtu.be/Y_4O1SbYf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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