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마귀의 눈 7
⬆️ 오랜만에 삼청공원 근처 카페를 찾았다. 평일이라 조용했다
유행주기가 짧은 나라에 살다보니 10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에 힙플레이스나 핫플레이스가 휙휙 바뀌는걸 경험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근처인데다 무려 청와대가 지척이라 매우 조용한 주택가였던 북촌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DSLR카메라를 들고다니는 힙플레이스 헌터, 당시 싸이월드나 다음카페에 특정장소를 업로딩하던 사람들에게 점령당했다. 집들이 부숴지고 웬만함 카페나 소품점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그 힙플레이스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바로 그 연남동. 2010년대 초반 난 직장을 걸어다닐 수 있는 연남동에서 세를 얻었다. 그렇게 7년동안 내가 살던 그 주택가는 또 엄청 변했다. 원래 연남동은 별 존재감 없었다. 서교동과 동교동 상수동까지가 홍대 범위였고 연희동의 남쪽이라는 지명 그대로 그냥 신촌과 홍대의 중간지점이었다. 뭐 특이점이래봐야 대만 화교들이 다소 사는 곳 혹은 폐선된 기찻길이 있으며 고층아파트 대신 단독주택과 저층빌라가 많은정도?
그러다 상수에서도 밀려난 예술인들이 연남으로 왔다. 그렇게 그들 덕에 사람들 눈과 입에 오르게된 연남은 그대로 점점 힙플이 되고 내가 살던 집 바로 옆집과 동네 구석 어떤 곳은 모 유명 연예인과 유명한 걸로만 유명한 리듬체조선수가 개조한 건물로 바뀌었다. 뭘 그렇게 때려부수고 지어대는 지 하루가 멀다하고 공사소리로 가득했다. 인스타그래머를 위한 곳이 될 준비를 착착 한거다.
그래서 그 연남동엔 게스트하우스와 찻집 소품점이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지고 내가 자주가던 세탁소와 일상에 필요했던 가게들은 결국 회전률좋고 돈되는 밥집과 술집으로 변했다.
이 상황에서 몫을 챙기는 건 그 곳에 원래 사는 사람
혹은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도 아니라 거기에
미리 정보듣고 뭔갈 사서 가정집을 개조할 돈이 있는 사람이다.
원래 동네가 힙해지는건 그 속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에겐
그다지 힙하거나 낭만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고층 아파트가 없고 90년대 단독양옥과 공원이 잘 갖춰져 힙플레이스가 된 동네에 무슨 조합설립하려는 사람들이 전단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동네가치 높여야한다 고층아파트 용적률어쩌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기는 대규모 주거단지로 바꾸기엔 거기에 땅사놓고 건물짓고 가게에서 세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나보다. 고층아파트는 들어설 기미가 없었다.
난 세입자였고 동네가 힙해진 만큼 세가 올라 또 다시 성산동으로 이사갔다.
성미산이 바로 뒤에있고 시끄러워진 연남동에 비해 꽤 맘에 들었던 성산동은 일년이 안되어 또 그 싸이클로 들어갔다.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온갖 리단길 메들리가 그 동네로까지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경기도 모처를 거쳐 그렇게 흘러흘러 부모님 집 근처 절대로 리단길되거나 힙할일 없고 0.1%도 인스타그래머블 하지않은. 무엇보다 접근성 꽤나 후진 곳으로 자릴 잡았다.
다시 찾게된 삼청동은 꽤 차분해져있었다.
얼마나 많은 가게와 소상공인들이 자리잡았다 떠났을까? 코로나 여파도 있었는지 임대가 붙은 빈 가게가 꽤 보였다.
상전벽해의 싸이클을 보통 10년으로 보는데
그 주기가 날이 갈수록 더 짧아지는 것같다.
한 동네가 발견된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고 방송과 sns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렇게 레밍떼처럼 수요가 몰리고 그 레밍들의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가게들이 도전과 명멸을 거듭한다. 그렇게 단물과 쓴물이 오고가면 그 자리에 결국 비슷비슷하게 돈되는 밥집 술집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때 맞춰 재건축이야기 나오고 그러다 대기업 체인 하나 들어오면 힙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공실들만 덩그러니 남는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과 소멸을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서 몇 번 목격한 기분.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