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안마시고 게임도 안하고 그냥 일받아서 하는 프리랜서라 혼자서 어디가서 장보거나 근처 등산 혹은 산책하는 거 빼고는 특별하게 누구를 만나거나 접할 일이 없었다. 그냥 아주 일부 업무차 아는 사람 빼놓곤 대부분 십수년 전부터 아는 사람들과 가족들, 내가 생각하기에 안전한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 그 안에서 뺑글뺑글 돌면서 살았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말이다. 특히 온라인에서만 아는 지인이란 내겐 거의 없었다. 검증이 필요했기에.
그러니까 2020년 11월 자정무렵, 내가 경기도 역세권 모처 원룸에 살 때였다.
한참 일을 마치고 저녁먹고 설겆이 하고 등등 잘 준비하고 누웠는데 바깥에서 어떤남자가 소릴지르며 미친듯이 문을 두들기고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당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숨소리도 안내다가 겨우겨우 112에 속삭이듯 신고했다. 그 놈이 그만두고 어디로 가고나서야 경찰분들이 오셨고, 고맙게도 대기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휴대폰 번호를 주시며 혹시 오면 연락하라고. 뜬 눈으로 밤을 샜고 그 놈은 오지 않았다.
성범죄자 알리미 앱을 켰다. 3명 그것도 500미터 반경에 성범죄자가 세 명이었다.
참 깔끔하고 안전해보이는 동네였는데, 심지어 근처에 초등학교까지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어떻게 하지 하고 있는데 친한 여자 동생이 밤에 차를 몰고와서 나를 자기 집에 피신 시켜주고 빈 방이 있다고 집 빼기 전에 미리 와있으라고. 그렇게 뭐 거처를 옮겼다. 서울 모처로.
반년간 그 친구와 그 친구 어머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 지냈다. 고은산과 안산에 자주 올라가 야경을 본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부모님댁 근처, 그것도 걸어서 2분 거리에 집이 나왔고 당장 그 곳으로 이사왔다.
집 들어갈때부터 뺄 때까지 많은 집주인을 만나봤지만 그 동생의 어머니처럼 사람 맘 편하게 해주시는 분은 못봤다. 오랜만에 만난 쿨하면서 따뜻한 어른.
그러나 문제의 그 집주인은 달랐다. 내가 살던 그 집에 보안장치를 단다 어쩐다
알아서 호들갑을 떨었던 집주인은 결국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 집에 남자를 들였고,
이제 안심이라고 했다.
집을 빨리 빼야 하는데 그 양반이 전세값을 엄청 높이 불러서 오래 기다리게 한것도 좀 그랬지만.
어쩌랴. 그 분이 나를 놀라게 하거나 겁준건 아닌데. 어찌보면 그 분도 피해자겠지.
여튼 이 일에 대해 아무도 내게 보상해주지 않았다. 특히 그 놈이 잡히지 않아서...
쓰레기 때문에 괜히 죄없는 경찰 두분만 고생하셨다.
나는 호신용품을 사고 cctv를 사서 달고. 집의 이사비용 전세비용 복비 뭐 그걸 '생존비용'으로 지불했다.
이런 생존비용을 지불할 필요를 전혀 못느끼고 사시는 머리가 꽃밭인 그분들 생각하니
내 목숨값이 그렇게 싸구려는 아니다 싶어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뒤가 쓰다. 영 재미가 없다.
이렇게 살아서... 누구 좋으라고 내가 살아남고 버티는거지?
위의 저 기사와 그 이후 우후죽순으로 나온 침입범죄 기사를 보고 이 일 뿐 아니라 참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참 그러길 바라지 않았는데 주위에 범죄 피해자들이 좀 많았어서.
나도 살아오면서 정말 위험한 순간을 마주한 적이 좀 있어서 말이다.
스토킹,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성폭행과 추행, 살해, 침입, 등등. 이런 피해자가 지인이며 그 목소리를 직접듣고 같이 울고 분노했던 사람은 뭔가 불쾌하지만 분명하게 알게된다. 세상은 더 이상 꽃밭이 아니다. 특히,가폭 피해자를 이전에 내가 살던 다른 자취집에 며칠 보호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 세상은 꼭 백룸 혹은 미스캐토닉 대학이 자리잡고 있으며 꽤나 자주 올드원들이 노니는 아캄 시티 같다.
국뽕 유튜버들이 말하는 치안이 좋아서 외국인이 뿅간 한국은 내가 버티며 살아온 백룸 바깥 어디엔가 존재하는 공간인가보다. 누군가는 그걸 당연하게 누리고 산단다. 그게 디폴트라면 나는 다른 차원의 한국에 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