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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phin knows Dec 22. 2022

컬트에 잡혀먹힌 나라

갈까마귀의 눈 5

거의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친한 친구와 교토와 오사카 나라의 각종 역사적 명승지를 돌아봤다. 여러 곳을 봤는데 이상하게도 텅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적인 상징과 온갖 불단들은 여기 저리 많았는데 왜 이렇게 얄팍하고 양식화되어 있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결핍은 과잉을 부른다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그들에게는 불온했던 가톨릭 혹은 크리스트교


1549년, 스페인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하기 시작한 이후 그 서양종교는 일본의 무사와 귀족들 사이에서 먼저 퍼져나갔다. 낯선 문물 특히 조총을 접할수 있는 기회이니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이후 일부 무사 귀족의 종교가 된 가톨릭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임진왜란때 고니시 유키나가란 장수는 우리나라에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쳐들고 침략하기까지 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크리스트교는 사람들이 타락한 마음으로 왜곡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기본적으로 기득권자들에게 '불온'하다. (지금 기득권자들 혹은 중세의 타락한 성직자와 지배층이 주워섬기는 <성서>는 성서의 뜻에 한참이나 멀어져있다. 한마디로 독사의 자식들이 독사의 자식들이 하는 일을 하는 거다.)

특히 위계가 강하고 인습과 억압이 강한 체계에서는 크리스트교 경전은 보면 볼 수록 맘이 안드는 것 투성이었을거다.  성서를 제대로 읽는다면 꽤 많은 부분에서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

수 백년전의 선지자들이 종교를 이익으로 생각한 지도자들을 타락했다 지탄하다가 온갖 고초를 당했다.

집에 집을 지어 가난한 이들이 머물 곳 없게 만드는 투기꾼들을 신이 가만히 두지 않을거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존귀하니 함부로 남녀할것없이 창기나 노예로 만들어 팔아먹는 인간을 지탄했고, 특히 살인하지말고 가난한 자의 재산을 뺏지 마라. 정신 좀 차려라. 너네가 제사음식을 아무리 차려봐야 난 안받을거다. 제발 정의롭게 좀 살아라. 그러지 않으려면 내가 스스로 성전문 닫겠다. 이 메시지가 줄구장창 나오는데 불편하지 않을리가 있었겠는가. 당시 지배층들이 세련된 서양풍 악세사리 정도로 삼기에는 크리스트교는 불쾌하고 날카로운 걸 숨기고 있었다.

 

이 교리와 메시지 탓인지 지도자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종교는 힘없고 돈없는 백성에게 스며들었다. 그 전까지는 꽤 온정적으로 가톨릭을 대하던 지도자들은 그때부터 '박해'를 시작했다. 엔도 슈사꾸의 소설 <침묵>, 영화 <일런스>로 만들어진 작품에서 나오는 각종 고문들이 거기서 등장했다. 지도자들이 가톨릭의 상징물을 자랑스럽게 차용해 장식한 배에 실어 다른 나라에 쓰던 칼과 총. 때가 되니 가톨릭 깃발은 없어도 가톨릭을 진짜로 믿는 자기 나라 백성에 겨누기 시작했다.


절대로 너의 위치를 벗어날 생각을 마라. 세상은 원래 그런거다.


아무리 눌려지냈어도, 매일 무사들에 의해 목이 뎅겅뎅겅 달아나야 하는 힘없는 백성이었어도, 한계에 다다르면 목숨을 내놓게 된다. 어차피 가만히 있다 죽으나 찍 소리라도 내보고 죽으나 같으니까.

결국 세상이 이대로는 안되겠다 라며 봉기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중 하나가 '시마바라의 난'이었다.  


예로니모, 혹은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




아마쿠사 시로라고 알려진 그림(야후 재팬)
히고 국 남반부를 영지로 둔 기리시탄(크리스천) 다이묘 고니시 유키나가의 가신 마스다 요시쓰구(益田好次)의 아들이다.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아마쿠사 제도(天草諸島)의 오야노 섬(大矢野島)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현재 우토시 또는 나가사키 출신이라는 설도 있어, 출생지는 불명확하다. 마스다 가문은 주군이 멸문된후, 로닌의 친분으로 우토에 거주했다고 한다. 아마쿠사 시로는 총명하고 용모가 빼어난 미남으로 전해진다.
고니시 가문의 옛 가신들과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구세주로 옹립되어 신격화된 인물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했다는 전설과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사생아인 도요토미 히데쓰나(豊臣秀綱)라는 설이 널리 펴졌다.
시마바라의 난에서 십자가를 내세워 전투를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막부군의 하라성 총공격에 따른 전화속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또, 사후에 목이 잘려 목은 나가사키 하라 성 오테 문앞에 효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에도 막부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당시 막부군은 아마쿠사 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내통자 야마다 에몬사쿠(山田右衛門作)을 제외한 반란군 모두를 죽인 탓에 깃발 근처에 있던 풍채가 뛰어난 소년의 사체를 아마쿠사 시로로 단정해 목을 배었기 때문에 진짜 아마쿠사 시로의 목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일설에는 막부군에 잡혀있던 시로의 어머니는 아들에 관해서는 모른척하며 "지금쯤 시로는 고니가 되어 로마 가톨릭 신부의 나라로 가고 있겠죠"라고 했지만, 시로의 목을 보여주자 눈물을 흘리며 쓰러졌다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1600년대 지금보다 더 위계질서가 강했고 잔혹했던 일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10대 소년, 무엇보다 혁명가이자 순교자라는 게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저 17세의 순교자 소년을 미디어에서 이상하게 뒤틀린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가톨릭 박해때 순교당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나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혹은 신사참배를 거부하거나 정치적 강압에 의한 배교에 대항해 고문당한 개신교의 성자이며 독립운동가 예를들어 김마리아와 유관순, 안이숙 혹은 주기철이나 손양원 목사를 기억하고 다루는 방식과는 사못 다르다.

1981년작 마계전생에서는 아마쿠사 시로(앞의 십자가를 건 배우)가 온갖 귀신들을 모아 싸움질을 시킨다.

https://www.youtube.com/watch?v=k9onI_HJqSY


나는 일본이 그동안 이 시마바라의 난과 시마바라의 난을 이끈 <일본의 잔 다르크>를 다루는 방식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그 동안 서양이 잔 다르크를 다루는 방식과도 한참 달랐다. 뤽 베송의 영화 잔 다르크에서는 그래도 잔 다르크의 존엄을 지켜줬다고 봤다.

순교자 아마쿠사 시로는 귀신들의 천하제일무도회의 한 <장기말>로 그것도 성스러운 순교자가 아닌 한을 지닌 귀신으로 세상을 망가뜨리길 바라는 형태로 미디어에서 수 십년간 변주해왔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아마쿠사 시로가 악마적인 비술로 다시 태어나 하는 짓은 '복수'였다.

나는 여기에서 그들의 두려움을 읽었다. 온화하고 공정하게 대했다면 복수가 두려울 리 없을 것이다. 복수는 한마디로 '되갚음'이다. 부메랑을 힘껏 던지면 돌아오듯이 소리를 크게 치면 메아리가 그 크기로 돌아오듯. 피해자는 특히 죽어버린 피해자는 그들의 죄의식을 자극하는 거울이었고, 언젠가는 자신이 똑같이 당할까봐 두려워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 피해자가 복수의 맘을 품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메시지가 맘에 안들면 메신저를 공격한다.


그러나 일본 역사를 쭉 살펴보니 그 맥락이 있긴 있었다. 일본도 나름 반란이 일어났거든 그런데 그 반란 사실은 혁명이 매우 잔혹한 방법으로 좌절됐다. 그 수많은 잇키(一揆) 들은 단 한 번도 승리의 기억을 갖지 못한 채 뿌리부터 뽑혀버렸고 그 뿌리를 뽑은 세력은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을 악마화 시키면서 명예와 존엄까지 빼앗아 버렸다.

막부시대 가장 전위적이며 혁명적이었던 크리스트교가 저 나라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야스쿠니에서 벌어지는 행동. 억지로 전쟁터에 동원된 온갖 영혼들을 모아 방석처럼 짜서 달래어 복수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너무도 샤머니즘 같은 행동이 국가가 공인한 방법으로 자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진심으로 종교의 의미를 알고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걸 팔아먹고 모든 걸 도구화 시키며
철저히 힘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힘까지 끌어쓰려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가
만신전 그것도 목적을 위해 더러운 것을 가리지 않는
악한 무당 같았다.



<일본회의의 정체>라는 책이 말하는 것



아오키 오사무가 쓴 일본회의의 정체는 출간 당시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네임드 지식인들도 이 책을 읽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논픽션은 현재 일본 우익들이 저지르는 각종 역사 지우기와 세계가 공인한 '역사의 피해자'인 우리나라에 하는 짓거리들을 폭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혼합 사이비 종교단체 '생장의 집'에서 출발한 '일본회의'의 실체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놀라웠던 건 아 정말 정교분리가 안되는 건가 싶었다.

세상 어느 나라보다 인간이며 시간이며 심지어 종교까지 상품화하는 나라인데 이상하게도 그 가운데 묘한 종교단체가 메인스트림 정치를 주무르고 있었다.


이들의 뿌리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종교심’이다.
일반인의 감각으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심어진 ‘종교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바뀌지 않고 바꿀 수조차 없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건 신경 쓰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믿는 바를 향해 오직 직진할 뿐이다.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30일, 대표적인 우파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하면서 결성된 조직이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1974년 우파계 종교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됐고,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정·재계, 학계, 종교계 우파가 총결집해 만들었다.그 이름조차 평이한 ‘일본회의’는 현재 가장 강력한 로비 단체로, 그들의 목표를 정의하자면 국수주의적이고 역사수정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가장 중시하여 열성을 다해온 주제는 ①천황, 황실, 천황제의 수호와 그 숭배 ②현행 헌법과 그로 상징되는 전후체제의 타파 ③애국적인 교육의 추진 ④전통적인 가족관의 고집 ⑤자학적인 역사관의 부정 등 5가지다. 이 주제는 일본회의 인사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것이어서, 이를 침해하거나 경시하는 정책과 언동은 때때로 과민할 정도의 반응을 일으킨다. 이들의 뿌리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종교심’이다.일반인의 감각으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심어진 ‘종교심’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바뀌지 않고 바꿀 수조차 없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건 신경 쓰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믿는 바를 향해 오직 직진할 뿐이다.그래서 강하다. 그래서 굽히지 않는다. 그래서 끈질기다. 그것은 확실히 끈기 있고 인내심 강한 활동의 근원이 되었고, 일본회의와 같은 조직을 육성하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그 운동의 저변에는 뿌리 뽑기 어려운 컬트성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중



지독하게 뒤틀린 괴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논리적으로 납득불가. 그리고 길게 보면 자국에 절대 이익이 되지 않고 다수의 국민들이 희생되는 결정을 너무도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저 나라 정치인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모 정치단체와 잔류 친일파들이 생각나 입이 썼다.

나름 일본이 개혁적이며 뜨거웠던 60년대, 그리고 전공투가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었을 때 그 반대편에 생장의 집이 있었다. 반공우익 청년들은 그렇게 흡수가 됐고 지금 그들은 일본회의라는 것을 만들어 영원한 정당인 자민당의 요직에 앉게 됐다. 전공투는 조폭과 손잡은 정치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혔고 그 이후는 뭐 영영집권영집권(잠깐 간 나오토의 민주당이 승리했으나 그놈의 원전 책임을 뒤집어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인 억겁의 고인 물 자민당은 국민들의 뇌를 빼려고 별짓을 다했고 결국 성공했다.


책을 다 읽고. 그것도 일본에 대한 책을 읽고는 한숨이 나왔다. 우리나라 생각이 나서.

미친놈들도 보통 미친놈들이 아닌 것들이랑 상대해야 하는구나. 저들은 정말 우리나라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구나라고 말이다.


종교의 본래의미와는 너무도 먼 짓을 하면서 종교에 누구보다 집작하는 저 병.

저 병은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안된다. 철학이 부재한 나라. 인권의식이 부재한 나라. 4대 종교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할 정도로 영적 분위기가 혼란하며 그 더러운 분위기가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는 나라라서 온갖 미신이 판치고, 절대로 세계에 유익이 될만한 정상적인 결정을 못 하는데. 누가 저 거대한 흐름에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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